이중 인격자가 되어 있는가?

조회 수 271 추천 수 30 2011.02.04 20: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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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격자가 되어 있는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레6:25)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제물을 바치며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죄의 삯은 죽음이기에 핏 값으로만 갚을 수 있음을 뜻하며, 특별히 장차 드려질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예표한 것입니다. 제사장, 족장, 회중, 평민이 범죄 했을 때마다 각기 제사의 세부규정이 달랐지만 공통적이며 필수적인 절차가 하나 있었습니다. 희생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범죄한 자의 죄를 전가(轉嫁)시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범죄한 사람이 죽어 마땅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죄를 몽땅 옮겨 받은 동물이 대신 죽는 것입니다.  

안수의 의미를 따져보면 죄인의 죄가 몽땅 옮겨졌기에 제물은 죄 덩어리가 된 셈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지극히 거룩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냥 거룩한 정도가 아니라 최고 최상의 거룩입니다. 동물이지만 인간 주인을 대신해서 희생했기 때문입니까? 죄를 씻는 역할을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까? 율법의 규정대로 잘 지켜졌기 때문입니까?

그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 따로 구별되어서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당사자 죄인은 물론, 제물도, 바치는 제사장도 거룩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율법의 규정을 그대로 준수했다고 해서 특별히 거룩해지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피조물도 거룩할 수 없으며 거룩은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만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기에 그분께 바쳐진 제물도 거룩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거룩해지고 그분과 함께 하지 않으면 거룩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12:30)하면서 당신을 말로 거역하는 죄만은 절대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 성령이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할 것인데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라고 했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는 것입니다.

언뜻 예수님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신 것 같습니까? 원죄 중에 잉태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할 마음도, 제대로 찾아 갈 능력도 없었습니다. 아무 흠 없는 온전한 제물로서 당신께서 십자가에 바쳐져야만 우리 죄가 그분께 전가 되고, 우리 또한 그분과 함께 지극히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인정하듯 우리는 결코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진정으로 믿고서, 다른 말로 우리가 지극히 추하고 더럽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하나님의 긍휼만 바라고 엎드리면 우리를 지극히 거룩한 존재로 받아주십니다. 성경은 그래서 예수님 그분이 바로 복음이며(롬1:2-5), 그 안에 들어온 신자더러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사”는 상징적으로 예배드리는 행위로도 번역될 수 있지만 바쳐진 제물(sacrifice) 자체를 뜻합니다. “산 제사”(a living sacifice)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항상 예배드리는 자세로 살라” 즉, 신자답게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 이전에 “죽어 마땅한 지극히 더러웠던 내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지극히 거룩한 제물로 바뀌어 열납되어졌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는 뜻이 더 우선입니다.

살아 있는 제물이라고 해서 가진 모든 것을 바치며 순교를 소망하며 살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단 한순간도 누락이나 부족함 없이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있으므로 이미 지극히 거룩한 제물이 되었음을, 더 정확히는 그분이 나를 지금도 그렇게 대우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자로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행위를 하기 이전에 복음 안에 자신의 바뀐 신분과 특권을 한 순간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위해 일을 하기 이전에 그분이 나를 대하는 근본 원리를 제대로 인식한 바탕에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그래서 무엇보다 주님이 나에게 과연 어떤 존재인지 성경 말씀을 통해 항상 묵상, 숙고, 숙지해 나가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도한 내용에 비추어서 어떻게 주님이 세밀하게 내 삶에 간섭, 인도, 주관하시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또 그 깨달은 것을 성경의 절대적 진리와 대조, 검토, 확인해 봐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았던 일이라도 자신이 처한 여건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님의 관점에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자연만 보고서도 그분의 절대적 은혜와 권능을 발견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즉, 범사가 그분의 은혜 없이 된 것이 하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때로는 현실의 환난과 질병과 문제들로 그 은혜가 잘 이해되지 않고 너무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자기 심령을 희미하게나마 비춰지는 십자가 광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자신의 성품에서 더러움과 추함의 비늘도 하나씩 벗겨져 나감을 실제로 확인해야 합니다. 또 자기에게 비춰진 십자가 광채가 아무리 가늘었다 해도 그 한줄기로 자신의 심령 전체가 훤히 밝아짐부터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강과 위로가 그 동안 자신을 누르고 있던 불안, 초조, 염려를 완전히 제거해 줌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밖에 있는 어렵고도 고달픈 일들은 여전히 미결인 채로 남아 있어도 그로 인했던 중압감이 차츰 새털처럼 가벼워져야 합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알아갈수록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적합하고 오묘한 방식으로 당신의 당신다우심을 반드시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그 일은 말씀과 기도로만 달성될 수 있음을 확신 아니, 실천되어지고 있어야 합니다. 믿은 후에도 골고다 십자가에 자신이 거룩한 희생 제물로 항상 달려있다는 진정한 고백이 모든 일의 전제가 되어야함도 물론입니다.  

이렇게 복음 안에 더 깊이 잠기게 된 결과는 반드시 주일 예배에 그대로 드러나야  합니다. 주일 성수가 기독교인의 습관적 의무가 절대 아닙니다. 지난 주간 동안 주님과 실제로 교제한 결과 그분의 지극히 거룩함을 조금이라도 맛보아 알았기에 너무나 마땅히, 아니 자연스럽게 그분께 진정으로 항복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주일 예배에서도 우리는 지극히 거룩한 희생으로 바쳐져야 합니다. 지난 주간의 죄부터 순전한 마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예배의 경건한 의식을 순전히 따르고 최선을 다해 헌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가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되어졌다고 주님께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만 바라는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도 부귀영화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하나님만의 전혀 다른 은혜와 권능을 맛보고 누리고 있음이 감사의 열매로 바쳐져야 합니다.

혹시 지난 주간 그러지 못했다면 그 방해 되는 요소를 생각나는 대로 십자가에 다시 죽여야 합니다. 이 또한 단순히 도덕적, 종교적 회개로 그쳐선 안 됩니다. 이미 영단번의 완전한 제물로 바쳐진 주님의 은혜 안으로 내어던져야 합니다. 내가 여전히 지극히 더럽고 추한 죄 덩어리이지만 십자가를 거쳐 지극히 거룩한 의인으로 바뀌었음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신약 예배도 구약 속죄제의 연장이 되지 않으면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모든 예배에 오직 십자가 복음이 증거되어져야, 최소한 내포되어야만 합니다. 참석자 모두가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이미 되어있다는 확신과 체험의 바탕에서만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아버지로 대하는 것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열의와 세기로 그분이 우리를 자녀로 대우해주고 있음을 하나씩 깨달아가는 것이 신앙이며, 그 깨달을 때마다 그분 앞에 진정으로 무릎 꿇는 것이 산 제사입니다.

요컨대 예수 안에선 더러운 죄인이자 거룩한 의인인 이중인격을 가져야만 참 신자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복음적 이중인격자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기독교인은 위선자라는 통상적 비난에 아직도 전전긍긍하고 있습니까?

2/4/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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