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스꽝스런(?) 마지막 질문

조회 수 346 추천 수 11 2011.11.04 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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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스꽝스런(?) 마지막 질문


[질문]


넷째 질문은 정말 우스운데 .... 하나님은 무소불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어떻게 인간이전에 나타나셨을까요? 언뜻 이런 의아심이 생겼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체를 인간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저도 웃깁니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질문으로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답변]

먼저 아실 것은 질문의 주제와는 직접 연관이 없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정답이 분명히 있습니다. 본 홈페이지의 왼쪽 “변증의 동산”을 클릭하면 “믿지 않는 형제에게”라는 사이트가 나옵니다. 그 사이트의 #16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거기다 달걀은 자라서 닭이 되고, 닭은 달걀을 낳는 것 같은 관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절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인간이 먼저라면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 또 인간은 우연히 이 땅에 진화로 탄생했다가 아주 고급한 단계로 발전한 후에 종교를 통해 가상의 신을 만들어 섬긴다는 뜻이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그 신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며 인간 공상의 산물일 뿐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진화를 인정하는 자는 아예 하나님을 논할 자격도 필요도 없긴 하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큰 착각 가운데 하나는 과학이 발달하다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선 인간이 듣고 보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개미 기어가는 것처럼 아주 작은 소리나,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한 후에 나는 굉음은 도무지 들을 수 없습니다. 전자를 들을 수 있으면 잠을 못잘 것이며, 후자를 듣게 되면 고막이 터져 죽을 것입니다. 눈으로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보면 당장 장님이 될 것입니다. 보고 듣는 것에서부터 한계가 있는데 어찌 모든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자전하면 그 소리 또한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태양계는 물론 은하계, 나아가 온 우주의 별들이 움직일 때에 나는 소리는 수학적 계산은 물론 상상조차 초월할 규모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에서 당신께서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이 당신을 찬양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서 그 모든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만약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당신을 찬양할 것이라고(눅19:40) 말씀하신 것이 단지 상징적 비유적 묘사만이 아닙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가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19:1-4)

인간은 듣고 보는 것에만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출생과 죽음을 스스로 전혀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인생을 통제하는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생이 태어나자마자 세상은 먼저 있었습니다. 최초 인간 아담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의 출현이 진화라면 하나님과 아무 연관이 없고 그분은 실재(實在)조차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창조가 옳다면 인간이 갖는 모든 제약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피조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보다 먼저 계셨다는 절대적 진리가 성립됩니다.

진화론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생명도 탄생하고 인간까지 진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로 아미노산 단세포가 생기는 그 우연의 확률은  몇 십억 분의 일에 불과합니다. 또 그 단세포가 모여서 세포군을 만들고 세포군이 조직을 이루고 장기가 생기며 완전한 한 종(種)의 생물이 되는데 까지는 전 우주를 매우고도 남는 숫자의 확률이 필요합니다.

수학적으로 따지면 몇 십억 분의 일의 확률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최소한 확률이 1/2이 되어야 그나마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蓋然性)이 있는 것입니다. 진화의 확률은 그 자체로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사실을 과학자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스스로 자기 인생과 이 땅의 주인이 되어서 제 멋대로 하고 싶은 완악함과 불경건으로 인해 끝까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과학을 버리고 오히려 무신론 내지 진화론이라는 신앙, 정확히 말하면 맹신 혹은 미신에 빠진 것입니다. 범인보다 훨씬 똑똑한 과학자들이 이러는 것은 사탄에게 그 영이 미혹되었다는 성경의 진술 외에는 그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어떻게 인간보다 먼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창조 이전에는 무엇을 하셨을까?”, “하나님이 있기 이전에는 어떤 존재가 있었을까?” 등등의 질문과 의아심은 한마디로 줄이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을까?”입니다. 그럼 그 존재는 또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류(類)의 질문을 범주의 오류(category mistake)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그 총각의 부인이 어디 있지?”와 같이 말이 안 되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총각이란 말 자체가 결혼하지 않은 자이기에 부인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로 세상을 창조한 자입니다. 그 하나님을 창조할 존재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범주를 벗어났기에 아예 질문으로 성립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창1:1) 인간더러 이 사실을 믿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제1 교리로 삼고 믿어야 한다는 부연 설명도 없습니다. 거기다 창조 이전에 대해선 전혀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인간이 지각, 인지, 분석, 이해할 수 있는 범주는 창조 이후의 세계뿐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모든 인간은 태어나선 자기가 속한 시공간의 범주 안에 모든 사고와 행동이 제한되지 않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당한 것 같은 고난에 대해 욥이 하나님께 그 이유라도 알자고 대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눈에 보이는 피조 세계의 이치도 모르면서 당신의 섭리에 대해 가타부타 따지지 말라고 경책하셨습니다.(욥기38-41장) 비유컨대 하나님은 개미 움직이는 소리나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도 못 듣는 까닭이 대체 무엇인지 네가 아느냐고 욥에게 되물은 것입니다. 욥은 당연히 단 하나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사실은 하늘의 영계에서 하나님과 사단이 내기한, 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지만,  결과였습니다. 그런 사정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설명해 줄 이유도 필요도 없으며, 또 온전한 사정을 가르쳐 주어도 욥으로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그것도 이미 살펴봤듯이 아주 제한된 물질계에 대해서도 아직 다 알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역사에 대해 따질 수는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창세기 1:1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 이전의 세계 즉, 영적인 차원의 역사는 인간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문자께서 의식은 못했겠지만, 이미 질문 가운데 정답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불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인데 어떻게 인간이전에 나타나셨을까요?” 바로 무소불위하고 전지전능하시기에 인간 이전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다 알 수 있다면 이미 그분은 신앙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실험실의 분석 대상이 아니라 오직 모든 피조물의, 특별히 인간의 감사, 기도, 경배, 찬양을 세세토록 받으실 유일한 분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시131편)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자신이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은 아예 알려고 혹은 시행하려 힘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에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하나님 품안에 내려놓음으로써 심령에 고요와 평온을 얻는다고 합니다. 또 그러는 것이 여호와를 바라보는 것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구원 이후의 모든 신자가 평생토록 믿음으로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10/2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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