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5:2,3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조회 수 492 추천 수 22 2009.09.08 23: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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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창15:2,3)


믿음에는 영웅이나 천재가 따로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신앙 위인들 중 인격적, 도덕적, 영적 결점 없이 완벽했던 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알다시피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부터 그랬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미움을 살 정도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강직하게 살았지만 핍박이 올까 두려워했고 또 하나님이 그를 위로했지만 그가 보인 반응 또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절)고 약속했습니다. 그럼 마땅히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죄로 찌든 세상 사람과 달리 거룩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증거하겠습니다.”라고 응답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당장에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라고 받을 복이 무엇인지부터 따졌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분석도 하지 않고 마지막의 상급을 주겠다는 말에만 정신이 번쩍 든 셈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그가 믿음의 조상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습과 너무 흡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받아들입니다. 전체 문맥과 상관없이 복, 은혜, 사랑, 능력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낼 것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지금 하나님 말씀의 초점은 아브람더러 두려워 말라는 데에 있고 그 이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고 지극히 크신 상급이 되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흑암의 세력에도 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나는 너의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지 “너에게 나의 큰 상급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모든 믿는 자의 방패이자 큰 상급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세상만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분에게 속하지 않는 것 하나 없으며 그분의 통치를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것 또한 하나 없습니다.  

말하자면 아브람이 두려워했던 세상 사람들도 그분의 주관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 주었는데 불신자들의 훼방을 끝까지 수수방관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더 실감나게 말하면 하나님 당신이 그의 상급이라면 세상의 전부를 이미 다 받은 셈입니다. 세상 모두가 그의 소유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에게 횡과 종으로 행하며 눈에 보이는 땅 전부를 주겠다고 이미 약속했지(창13:14-17) 않습니까?

그의 믿음의 후손인 오늘날의 신자에게도 그 약속은 똑 같은 권능으로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응하지 않고 땅에 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흔히들 신자는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천하와도 바꿀 수 없기에 이미 천하를 능가하는 복을 소유한 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진짜 방패요 그분이 바로 상급임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다른 말로 그분에게서 따로 받을 복을 구태여 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해도 이 확신 안에 거하며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사실은 복을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급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반발한 셈입니다. 자신은 무자하니 더 이상 상급을 받아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복을 물려 줄 자녀가 없는데 따로 복을 더 받을 필요가 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속자는 자기 집에서 길리운 엘리에셀이 될 것이라고 감히 하나님 앞에 대고 선언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평생소원 내지 한(恨)을 하나님 앞에 반발조로 토로한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는 그에게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낯선 땅에서 시기와 핍박을 받으며 살고 있어 도 이제 방패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두려워 말라는 위로와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부족한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아니 하나님을 상급으로 물려줄 자식이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입고 있습니다. 탐욕과 죄악의 잔재가 심령 깊숙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소원 내지 욕심 편향적으로 붙듭니다. 하나님에게 무례하고 불신에 찬 반응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떤 경우가 되었든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소망이었든, 욕심이었던, 원한이었든,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었든, 심지어 그분에 대한 반발과 분노였든 상관없습니다. 믿음을 믿음답게 지탱해주는 근본은 믿음을 절대 버리지 않겠다는 각오와 의지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실수, 실패, 잘못하고 심지어 유혹과 시험에 넘어져 죄악을 범해도 좋습니다. 대신에 그분에게 자신의 심령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그분과의 관계만은 절대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야 합니다.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이자 위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보다 신령하거나 거룩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성정이 우리와 똑 같았습니다. 그가 우리보다 나았던 점은 오직 하나 항상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심지어 따질 것은 따졌다는 것뿐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이 우리보다 많았던 것입니다. 항상 그분 앞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비록 허물과 잘못을 자주 범했어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태에 있든 무조건 당신과 동행하자는 것뿐입니다. 신자를 신령하고 거룩하게 해주는 것은 당신이지 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근본 목적이지 않습니까? 지금도 아브람이 당신의 말씀을 제 멋대로 해석하고 심지어 반발까지 했음에도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굳건하게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단 한 치의 짜증이나 꾸중을 섞지 않고 다시 상기시켜 주셨지 않습니까?

요컨대 오늘날 우리도 내게 무엇을 주시려나이까라는 요구가 항상 입에 붙어 있어도, 정말 쉬지 말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며 하늘에 있는 신령한 것으로 쉬지 않고 채워 주신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드물게 그러나 거룩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넘어지고 쓰러진 모습이라도 그분을 항상 만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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