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2;13 어떤 여호와 이레를 믿는가?

조회 수 598 추천 수 15 2009.09.09 00: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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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호와 이레를 믿는가?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창2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보기 위해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마지막 칼을 들고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는 말씀을 하늘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사방을 살펴본즉 이삭 대신 번제할 어린 양을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 놓았음을 발견하고 그 땅을 “여호와 이레”(하나님이 준비하심)라고 명명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별칭 중에서도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 이레”는 신자들에게 큰 힘이 되는 이름입니다. 신자가 정말 곤혹스럽고 어려운 경우에는 하나님이 미리 그 해결책과 피할 길을 준비 해놓으십니다. 그러다보니 신자들은 자칫 자기들이 가는 앞길에 하나님은 신자보다 앞서 가서 모든 장애물을 미리 다 제거하여 붉은 카펫을 깔아 놓고 기다리실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관념과 인식은 인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지구상에서 태양계의 자전과 공전의 법칙에 제한 받는 피조물인 인간에게만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밀려  갑니다. 그 특정한 시간의 법칙 안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인간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엄연히 구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묶여 사는 인간으로선 미래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경우는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셨고 그것들의 주인이자 또 그것을 초월해 계신 분입니다. 그렇다고 시간과 공간과는 아무 연관이 없이 다른 차원에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태양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데 8분이 걸립니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8분 전의 태양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발은 지구에 다른 한 발은 태양에 닿는 아주 큰 거인이 있다면 지구와 태양을 동시에 다 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8분 전 모습이었던 태양이 그 거인에게는 항상 현재의 태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거인과도 도저히 비교되지 않습니다. 광대한 우주 전체를 창조하시고 그 중심에서 우주만물의 운행을 직접 통괄하고 계십니다. 우주 전체를 항상 현재로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구 같은 작은 별, 또 그 위에 사는 인간들의 경우는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까지 한 번에 다 보입니다. 여의도 광장을 가로지르는 개미는 그 광장이 얼마나 큰지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안 가보고는 모르지만 63빌딩 위에서 그 개미와 여의도 광장을 한 눈에 보는 자는 그 개미의 앞날을 훤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참 뜻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 전부를 다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미 우리를 어떻게 이끄실지 전 일생에 대한 계획을 다 세워놓고 그렇게 이끌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 이레를 마치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큰 거인이 신자가 가는 길을 먼저 가서 모든 불행을 차단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뿐 아니라 신자 한 명의 일생마저도 다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신자의 앞날에 좋은 일만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니라 힘든 환난도 함께 준비해 놓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그 준비된 고난 뒤에도 또 다른 그분만의 일을 준비해 놓으시고 계실 것은 그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환언하면 인간의 눈에는 100% 절망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뒤의 역전을 보시고 계시며, 아니 다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100% 형통 같아 보일지라도 그 뒤의 실패도 알고 계십니다. 아니 일부러 그런 실패를 겪게 하십니다. 물론 그 실패 뒤에는 또 다른 그분만의 일을 준비해 놓고 계시는 것도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합니다.

따라서 “여호와 이레”를 신자가 기도하면 어려운 일이 미리 술술 풀려가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단순히 해석하고 적용하면 신앙상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신다고 했는데 왜 내 앞날에는 이런 불행만 일어나는가? 그것도 내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분명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다 알아서 준비해 주시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가 여호와의 산에 서 있어야만 여호와 이레를 맛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백세에 난 외아들이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했습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것은 그에게는 차라리 자기더러 죽으라는 말씀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의 주저도 없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 여호와의 산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믿음의 정상에 서있었습니다.

단순히 그가 착하고 의로워져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순종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과 그 외아들 이삭을 향한 온전한 계획을 갖고 있기에 이런 일을 명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내 앞길을 형통케 해놓았을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내 앞에 어떤 환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조차 하나님의 계획이며 또 그 환난 뒤에는 당신만의 또 다른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고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는 만약 하나님이 이삭을 데려가더라도 또 다른 이삭을 주시던지 아니면 이삭을 부활시켜서라도 자기의 후손을 하늘의 뭇별 같이 많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리라는 믿음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로선 아내의 경수는 끊어지고 자신마저 임신 가능성이 전무(全無)한 100%의 절망에서 100%의 희망으로 바꿔주신 하나님을 확실하게 체험했습니다. 또 그간의 믿음의 여정 가운데 자기 뜻과 계획을 따르다 비록 많은 실수가 있었어도 하나님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당신의 일을 자기를 통해 진행시켰음을  철두철미하게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이 이삭일 가능성마저도 인정하고 순종했습니다.  이삭을 데려간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또 다른 영광이 반드시 드러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희생양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삭에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고 영원까지 준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일생을 거룩하게 간섭하고 계시는 너무나 큰 손길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미래가 완전히 하나님의 의로운 손 안에 있음을 확신한 것입니다. 비록 그 미래가 인간인 자신에게는 여전히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는 인간의 괴로움 뒤에 나타날 하나님의 소망을 보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소망 뒤에 인간의 실패가 있을 가능성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시점에선 자신의 형통 여부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자신보다 귀한 아들이 죽더라도, 오직 하나님의 소망만 간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자가 열심히 기도하였더니 앞날이 술술 잘 풀리더라는 의미는 여호와 이레에 없습니다. 아무리 신자라도 여의도 광장을 기어가는 개미와 같은 모습으로 일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신자 개미라고 그 앞에 진홍 카펫이 깔려 있지 않습니다. 단지 63 빌딩 위에 자기 가는 길을 다 지켜보시는, 아니 비록 험한 장애를 곳곳에 마련해 놓았지만 미리 그 길을 다 계획해 놓고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있음을 확신하기에 장애 뒤의 소망을 품고 가는 개미일 따름입니다.

불신자 개미는 한 번이라도 장애가 나타나면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르기에 그 때마다 자기 힘을 전부 다 쏟아 붇고는 지치고 고된 행군을 합니다. 현실적, 외형적으로 걸어가는 길은 둘 다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개미는 의심과 불만과 낙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시쳇말로 죽지 못해 걸어가고, 다른 한 개미는 확신과 기쁨과 소망을 품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지금 당신이 믿는 여호와 이레는 어떤 하나님입니까? 기도만 하면 당장 눈앞에 있는 바위가 터져 나가고 그 앞에 주홍 카펫이 죽 깔리리라 기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비록 지금 내가 환난 가운데 있더라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어서 영원까지 보장되며 우주의 중심에 계시는 하나님에게까지 이어지는 인생길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5/3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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