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10-12 교회 안의 의로운 자

조회 수 540 추천 수 14 2009.10.13 12: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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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의로운 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13:10-12)


성경은 신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시종일관 믿음의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창12:1, 15:6 롬4:3, 약2:21-23) 반면에 그의 조카 롯은 의로운 사람이라고만 말합니다.(벧전2:7,8) 롯에게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신앙은 있었습니다. 부모 역할을 대신하는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며 여호와 신앙을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단을 쌓을 때에 그 곁에 있었습니다.(창12:7,13:1-4) 그런데도 성경이 그렇게 구분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분문에서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롯이 요단 동편 땅을 선택할 때에 처음에는 조금 사양했겠지만 어쨌든 자기 판단으로만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도성 소돔이 가깝다고 해서 잘못된 결정은 아닙니다. 목축을 하는데 물과 초장이 풍부한 곳을 택하는 것은 아주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그 판단 자체만으로는 비난 받을 바가 못 됩니다.

바꿔 말해 롯이 처음부터 소돔에 들어가서 타락하려 마음먹은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본문 설명대로 분명히 처음에는 평지 성읍들 즉, 들판 내지는 조그만 촌락에 머무르다가 차츰 장막을 옮겨서 소돔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신은 세상 죄악과 쾌락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입니다. 최소한 대도시 생활이 주는 안락과 편리함과는 상관없이 오직 생업인 목축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다짐한 것입니다.

실제로 소돔을 멸망시키러 온 천사들을 대접했던 행적이 바로 그런 의로움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불쌍한 나그네를 도우려는 선한 마음이 분명 있었습니다. 또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전2:8)는 성경 증언대로 소돔의 악행들을 보면서 의분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인생은 큰 불행으로 결말지어졌습니다. 주변 종족들의 전쟁에 휘말려 포로 신세가 되었고, 생활 근거지였던 도시와 소유했던 가산이 완전 몰락했고, 아내와 사위들을 잃었고, 급기야 비록 만취한 상태였지만 두 딸과 근친상간의 죄까지 범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소돔에 들어갔다고 괘씸해서 벌준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소돔에서, 조카를 염려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하나님이 고려해 주신 것이 첫째 이유였지만, 죽음에서 건짐을 얻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른 결과를 졌던 것뿐입니다.
      
롯의 근본적 잘못은 바로 자신의 힘으로 쾌락과 죄악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했던 교만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수 있다고 큰 소리 쳤지만 결국은 소돔 사람들과 함께 유유상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그들만큼 죄악으로 타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죄악이 얼마나 인간을 꼼작 못하게 묶어버리는 큰 세력인지 그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죄를 가볍게 보다가 큰 코 다친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실체가 사실은 아주 사소한 죄의 유혹에도 그대로 깨져 버리는 유리알 같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악의 세력에 점령당해 실제로는 그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롯과 비슷한 영적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가뭄으로 기근이 닥치자 곡물이 풍부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순전히 자의적 판단으로 자기 생명을 걸며 마누라를 팔아먹는 도박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과 아내를 보호해주었을 뿐 아니라 거부(巨富)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정말 놀랍고도 신비한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걸었으니 얼마나 그분의 은혜가 생생하게 체감되었겠습니까? 그래서 땅의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사실은 그 선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교회 안에서 믿음의 사람과 의로운 사람의 차이가 명확해졌습니다. 착하게 사느냐 않느냐, 구제를 많이 하느냐 않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스스로 죄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와 자기 스스로는 죄를 이길 수 없으니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하나님을 얼마나 더 강하게 의지하느냐 않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죄를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모든 일들도 자기가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자입니다. 또 자기가 일을 잘 해치울 수 있으니까 항상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일이 이뤄내는 결과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현재 진행되는 사역의 업적을 중시하며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웁니다. 물론 그 주장은 도덕적, 종교적으로 의롭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놀랍고도 신기한 간섭이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과 인내가 전혀 부족합니다.

의로운 사람은 도덕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특징 같지만 사실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하는 것 즉, 하나님에게 자신의 장래를 온전히 내어 맡기지 못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롭고 오묘한 권능과 은총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생 만사를 오직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주관하신다는 진리마저 온전히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연히 자기는 남들보다 월등 의롭고 지혜로우므로 자기 판단에 착오가 생길 리 없으며 그 앞길을 가로막을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어려움이 생기면 그나마 기본적인 믿음은 있으니까 하나님께 현재 눈앞에 닥친 일만 해결해달라고 매달릴 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즉, 당신만의 뜻이 있어 환난도 허락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러는 것은 그분을 잠시 능력만 빌려주는 도우미로 전락시키는 꼴입니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록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도 필연적으로 현실의 풍부와 안일이 인생의 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롭게 살려는 것 자체에도 자신부터 살찌우며 내세우려는 동기가 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따질 것은 도덕적 종교적으로 선한지 의로운지가 아닙니다. 일단 교회에 나왔다면 모두가 선하고 의롭게 살려 노력하는 자, 최소한 그렇게 결단한 자입니다. 문제는 목사를 비롯해 모든 신자가 온전히 그렇게 살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치 않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자가 신자이며, 믿고 난 이후에 오히려 주님의 은혜가 더 절실합니다.

사람이 가장 하기 힘든 일이 바로 죄를 극복하여 선해지고 의로워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그 부분에서 스스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다른 어떤 일인들 못할 게 있겠습니까? 그러니 교회 안에서조차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다 분쟁을 유발하며 급기야 하나님의 왕국을 갈라놓지 않습니까? 그들도 처음 교회 생활을 시작할 때는 롯처럼 성실하고 의롭게 섬겨 정말 영혼을 살찌울 물과 초장이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자신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다 차츰 자기 의로움이 앞서면서 결국은 소돔 즉, 분쟁의 소용돌이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신자가 평생을 두고 목표로 삼을 것은 의로운 사람보다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갈고 닦느니 자기 의는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추해서 오직 예수님의 의로만 덧입혀 달라고 매달려야 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낮아지고 깨어져서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영적 성숙의 증거는 당신이 얼마나 깨끗한가가 아니라 당신이 얼마나 깨끗하지 못한지를 제대로 인식하는데 있다.”는 필립 얀시의 말은 너무나 정확한 지적입니다. 또 정말로 영적으로 성숙한 즉, 주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아는 자는 자연히 그렇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이 단지 자기 연약함만 절감해서 기도해 문제를 해결 받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죄 때문에 연약해질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기에 죄 문제부터 기도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10/13/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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