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7:17 백세에 아이 낳는 것은 예사였지 않습니까?

조회 수 746 추천 수 19 2009.10.29 22: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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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에 아이 낳는 것은 예사였지 않습니까?


[질문]


성경문답 게시판 #172번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언제 죽었나요?”에 대한 답 중에 데라가 아브람을 130세에 낳았다면 후에 어찌해서 하나님께 "100세 된 사람이 어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었을까 생각되는데 답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답변]

흔히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면에까지 아주 예리하게 묵상하셨습니다. 아비 데라가 자신을 130세에 낳았다면 아들 아브람도 백세에 아이 낳는 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닙니다. 당시로선 아주 보편적인 일일 텐데 왜 하나님께 그런 반문을 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창17:17) 거기다 하나님 앞에 웃으면서 그분의 약속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웠으니 아주 불경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앞뒤가 모순되어 보이는 표현은 더더욱 성경이 기록한 바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자의적(恣意的) 해석으로 왜곡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한계를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문자적 해석에 집착해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는 아닙니다. 행간의 의미를 상식적 논리적으로 추론해야 하며 당시의 여러 상황도 감안해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목적과 전체 구성도 함께 따져 봐야만 합니다. 요컨대 성경이 정작 말하고자 의도한 바를 정확히 따져서 그 범위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따져선 이 경우는 분명 모순처럼 보입니다. 당시로선 아주 노년에 아이를 낳았고 특별히 자기 아버지에게서 실례를 보았는데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아브람이 그렇게 심중에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경이 그렇게 기록해야만 하는 즉, 따로 말하고자 의도한 바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아브람은 아내 사라에게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樂)이 있으리요.”(창18:11,12) 사라는 이미 폐경기를 지났고 둘 다 늙어서 성관계를 거의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약속에 대해 웃은 사라를 하나님은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14절)고 야단치셨습니다. 그들 부부에게서 출산은 실제로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에서 이 사건을 들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정의를 설명하면서 사래의 태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7-22)

아브람은 사라를 통해 이미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았기에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그럼 그냥 단순히 그렇다고 아뢰면 되지 구태여 “백세 된 자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성경이 말하고자 의도하는 바는 바로 그런 의문이 생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후대 사람으로 헷갈리게 만드는 아주 난해한 내용을 기록하려는 목적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역사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거짓이나 오류가 전혀 없습니다. 아브람은 실제로 백세에 아이를 낳는 것은 아주 비정상적인 일이며 하나님의 기적적 개입이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한 세대 만에 이렇게 상황이 바뀐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 또한 성경 안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 되리라 하시니라.”(창6:3) 하나님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6:5,6) 노아의 홍수로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심판 후에 인간의 수명은 길어야 일백 이십년으로 줄 것이라고 계획하셨습니다.  

창세기의 노아 전 족보(5장)와 후의 족보(11:10-32)를 상호 비교해 보십시오. 그 수명이 점차 주는 것이 여실히 나타납니다. 또 노아 후에는 분명히 삼십대 초반에 아이를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라만 특별히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흘과 하란을 낳았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도 데라는 이미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즉 아브람 당대에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훨씬 짧아졌고, 출산은 삼십 전후부터 시작되었고, 여자 나이 구십 이전에 경수가 끊겨서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벌써 보편화 된 일입니다. 데라만 해도 특별한 케이스였는데 그 후 백년이 더 흘렀으니까 아브람 때는 임신과 출산 시기는 오늘날과 거의 같아졌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거꾸로 왜 데라의 경우만 당시로서도 아주 늦은 70 세에 아이를 낳기 시작했는지 여부입니다. 또 모든 정황상 아브람도 아비가 130 세에야 겨우 막내로 태어 낳았어야만 했던 이유입니다.

이는 물론 하나님이 당신의 절대적 주권으로 하신 일입니다. 우리로선 그 구체적 사정을 잘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 이를 정확히 해석할만한 연관된 구절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근접한 유추가 가능한 것은 믿음의 조상이 이 땅에 태어남에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적 차원에서 사단의 방해가 엄청나게 심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의적 추측이 아니라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해석입니다.

우선 아브람의 외아들 이삭의 출생부터 그렇지 않습니까? 또 야곱이 장자권을 차지하고,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기근에서 구원을 얻고,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애굽에서 사백년 간 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과정들이 그 사실을 입증하지 않습니까? 모세가 출생할 때의 상황도 그렇지 않습니까? 결정적으로는 예수님의 탄생을 전후하여 흑암의 세력을 대표하는 헤롯 일당이 얼마나 집요하게 방해 했습니까? 우리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엄청난 희생을 바쳤고 믿기 전 사단의 집요한 훼방을 성령님의 권능으로 물리쳐 주시어 구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돌려야 합니다.    

아브람은 아내의 경수가 끊겼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 그대로 믿어서 우리 모든 믿는 후손의 선조가 반드시 되었어야만 했습니다. 사단의 어떤 방해도 하나님의 계획을 비록 지체는 시켜도 변경 중지시킬 수는 결코 없었습니다. 그 지체도 믿음의 후손들이 온전한 믿음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하나님이 묵인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은 실제로 성경이 기록한바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절대 생길 수 없으며 또 그것을 기록한 성경도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10/27/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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