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4:7,8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성

조회 수 777 추천 수 31 2010.02.09 18:41:02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성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4:7,8)


간혹 구약에는 십자가 복음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죄인을 사랑하는 하나님 대신에 율법적이고 심판만 하는 두려운 하나님만 나타난다고들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이 이스라엘의 역사책은 당연히 아닐뿐더러,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대한 예언만 곳곳에, 그것도 묵시적으로 숨겨놓은 책도 아닙니다.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시25:11)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103:12,13)

죄지은 대로 심판하지 않고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인해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자식처럼 용서하시는 분이야 말로 바로 십자가의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이 외에도 구약에는 복음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본문 또한 직접적으로는 기독교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면서 간접적으로는 복음도 가득 담고 있는 구절입니다.  

먼저 기도할 때마다 여호와께서 가까이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진중에 함께 거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회막에서 직접 만나주셨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시어 인생만사를 당신의 뜻에 따라 주도하시며 특별히 당신 백성을 더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다른 말로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인간이 죽은 이후에 생전의 공과만 심사하여 심판을 내리는 분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얼마든지 생전에 구원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오히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언제 어디서나 신자와 함께 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울면 그분이 함께 울고, 신자가 웃으면 그분이 함께 웃으십니다. 당연히 그분이 울면 신자도 울고, 그분이 웃으면 신자도 웃게 됩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죽음 넘어 멀리 있는 분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분입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처럼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 백성에게 주신 계명에 도덕적 우월성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방 나그네 과부 고아를 압제하지 말며(출22:21,22), 가난한 자와 타국인을 위해 추수할 때 일부를 남기라고 합니다.(레19:9,10) 또 여자를 상속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민36장) 심지어 원수를 갚지 말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도 했습니다.(레19:18)

열거한 예들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내용들입니다. 우상 숭배를 철저하게 금하는 영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 윤리적 측면에서도 다른 종족의 여타 종교와는 비교가 안 되게 뛰어났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예수님이 재해석하여 가르치고 또 몸소 실천하여서 완성하기 이전에 이미 완벽한 공의에 기초하여 주어졌던 것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의 이 두 가지 특징을 문자 그대로 신앙의 기초로 삼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특성대로 믿는데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의아해집니까? 문제가 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가까이 있어서 기도 응답에 능한 하나님으로만 인식하는 것입니다. 또 신앙을 도덕적 우월성을 실천하는 것에만 중심을 맞추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기에 기독교를 믿기로 한 것입니다. 기독교식으로 기도하면 이적 같은 은혜가 가장 많이 일어나니까 믿기로 하고, 또 기독교가 도덕적으로 가장 우수하게 가르치니까 그대로 따르기로 하는 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 기독교를 믿은 것이지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을 온전히 신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 두 특성은 기독교 고유의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자체적으로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에게선 반드시 이런 두 특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언제 어디서나 신자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지 이단종파들처럼 결코 기독교라는 종교나 교회나 전통과 관습이 그분보다 앞장설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 신앙은 영원토록 살아계시는 하나님 그분과 그 아들에 대해 더 깊이 알아나가는 모습이어야만 합니다.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선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죄와 사단과 사망의 노예가 되어서 신음하는 인간을 구원하러 직접 이 땅에 비천한 몸으로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에 찌든 인간이 가장 절실하고도 우선적으로 깨달아야 할 그분의 특성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절대적 사랑과 절대적 공의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기독교의 두 근본적 특성도 바로 그 사랑과 공의를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꿔 말해 신자가 신앙의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기도하여 문제 해결 받는 것과 도덕적 선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둘 다 아주 중요하고 너무나 소중한 신앙의 실천 덕목입니다. 매사에 쉬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여야 하고 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기독교의 두드러진 특성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귀한 기도와 선행도 예수님을 알아나감으로써 자연적이고도 필연적인 반응으로 따라 나와야 합니다. 그 자체가 신앙을 가진 최종 목표가 되거나 의무적 종교 행위가 되는 것은 오히려 금기 사항입니다.

자연적 반응이란 어쩔 수 없이 저절로, 더 정확하게는, 반드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결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 앞에 절로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게 되며, 또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그분 속에 있고 그분 또한 우리 속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포도나무 가지요 우리는 가지로 그분께 붙어 있기만 해도 그분의 열매가 맺힙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선 절로 열매 맺지 못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1-23)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과 하나이듯이 신구약 성경도 하나입니다. 구약에도 십자가 복음의 사랑은 넘치도록 나타나며, 신약에도 여호와의 공의는 충분히 드러납니다. 우리 신앙은 기독교의 우월적 특성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겸비해져서 그분의 참 생명을 붙드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요컨대 속에서 날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자하는 열망이 솟구쳐야 하며, 말씀과 기도에 능하여 그분을 알아나갈수록 세상에서 밀알로 썩고자 하는 열망도 동시에 솟구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정확히는 예수 믿는 신앙의 가장 두드러진 두 특성인 것입니다. 지금 현재 내가 갖는 신앙의 실체를 이 두 열망으로 대변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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