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지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보면 도저히 성경에 있어야 할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미련하거나 약할 리가 절대 없습니다. 인간과 비교할 정도는 더더욱 아닙니다. 역으로 따지면 인간이 미련하고 약하기 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일단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인정만 해도 그분은 전지전능한 절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히 그분이 미련하거나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어리석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간들은 공공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겨우 이것도 하나 못해 주시는가? 왜 저런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도록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나 같으면 절대 저렇게 하지 않고 당연히 이렇게 할 텐데...”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대자연을 바라볼 때는 시각이 다릅니다. 그랜드케년이나 이과수 폭포를 보고 그 위용에 입을 벌리지 않는 자 없으며 잠시나마 하나님이든 조물주든 각자 나름대로 절대자를 머리에 떠올리고 잠시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둥 번개만 쳐도 까닭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약하다고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
반면에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관련해선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세상만사를 주관하더라도 인간끼리 일어나는 일의 일차적인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끼리 잘못해놓고는 하나님이 미련하다고 뒤집어씌우는 꼴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피조세계가 함께 부패해져 땅은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습니다. 땅을 거룩하게 다스려야 할 권세를 받은 인간이 오히려 땅에 속박되는 신세로 변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죄악을 향해 피 흘리면서 달려가기 바쁠 만큼 타락했습니다. 그런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는 더럽고 추한 쓰레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두고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렘17:9)이라고 정확하게 평가했습니다. 그리고선 바로 “누가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마음이 거짓되고 부패한 줄도 모를 만큼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거짓되다는 말은 남을 잘 속인다(deceitful)는 뜻입니다. 그 거짓에 자신마저 속아 넘어가 심지어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엄청난 착각을 하는 단계에까지 간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붙잡혀 있다는 너무나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역설이긴 하지만 진짜 한심한 일은 정작 따로 있습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을 아예 인정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치우려 합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기 지혜로만 인생을 살기에 이뤄내는 것이라고는 오직 실패와 허무뿐입니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모순을 그나마 자신들의 허물 내지 무능함이라고는 간주합니다. 자기 실력을 쌓아서 모든 것을 스스로 이겨내려 합니다. 심지어 누구 탓할 필요 없이 전부 자기 업보라고 까지 말합니다.
반면에 신자는 범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일은 도저히 완전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 같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해가 안 되면 당연히 그분의 신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지 그분이 미련해 보이다니 도대체 말이 됩니까? 그분의 전지전능을 믿는 신자들이 그분 탓이라는 불평을 더 많이 하다니 말입니다.
하나님의 신비 대신에 미련함부터 먼저 떠올리는 신자의 마음 상태는 도대체 어떻게 된 까닭입니까? 여전히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 하는 것입니까? 둘 다 아닙니다. 자기가 세운 계획을 그분의 능력만 빌려서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말겠다고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유독 자기와 연관된 일에만, 그것도 아주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하나님이 어리석어 보인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남들에게 불의의 환난이 임하면 어떻게 권면합니까?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잖아요? 반드시 합력하여 선으로 바꿔주실 꺼에요. 상상도 못하는 은혜를 당신의 방법과 때에 풍성하게 베푸실 테니까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인내하세요.”
그러나 정작 자기에게 환난이 생기면 하나님은 한 없이 미련하고 너무나 미약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이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때에 따라 더 강해지거나 더 약해지기라도 합니까? 능력과 지혜에 있어서 변화나 가감이 있다면 이미 전지전능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기 문제에서만은 그렇게 여겨지는 까닭은 사실은 본인의 지혜 아니 믿음이 들쭉날쭉한 것뿐입니다.
믿음은 간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구태여 아주 엄숙하고도 경건하게 믿으려고 열심히 노력할 필요 없습니다. 그분의 그분다움 중에 가장 중요한 특성이 무엇입니까? 인간과 가장 크게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지전능성 아닙니까? 그리고 그 전지전능은 절대로 변함이 없지 않습니까? 그 사실만 제대로 인정해도 온전한 믿음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믿음의 첫출발조차 안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변명은 항상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 꿰뚫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 제쳐두고 이것 하나만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어디가 덧납니까? 내가 그래도 나쁜 짓 하지 않고 교회 생활 성실하게 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런 변명이 평생에 딱 한 두 번이라면 어쩌면 하나님도 양보하시고 우리 계획대로 해 주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변명이 기도할 때마다 매번 나오니 탈입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청산유수처럼 기도하고 성경구절 암송 잘하며 헌금 많이 하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심지어 이웃의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간절히 기도해주는 것과도 관계없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관련된 일에서 하나님이 미련하고 약해 보이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해 낼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길도 일차적으로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어떤 일이 진행되어 가는 중에 알아챌 정도로 우리 모두는 결코 신령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계획과 소원을 하나님께 일일이 다 간구하되 단지 끝까지 고집하겠다는 생각만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신비가 분명히 있다는 것은 최소한 확신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간단한 것 아닙니까?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신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믿음, 아니 최소한의 지혜입니다. 다른 말로 믿음이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상하게 나에게만은 그렇지 않다고 여겨지는 마음을 버려 나가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알고 있거나 하겠다고 각오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삶에 적용되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지식이지 지혜가 아닙니다. 또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이상하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하기보다는 바로 내 계획부터 내려놓아야 합니다. 당신은 신자로서 최소한의 지혜와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7/1/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