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교인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의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3-27)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내면 반 이상은 해결된 셈입니다. 원인을 모르면 대책을 아예 세울 수 없고 또 원인을 틀리게 분석해도 대책까지 엉뚱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쟁으로 지샌 고린도 교회에 대해 바울이 지체론(肢體論)으로 권면한 것도 그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입니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고전3:3,4) 분쟁의 결과는 교인들이 바울과 아볼로에게 속한 자라고 나뉜 것인데 사람을 따라 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사람을 따라 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육신에 속했기 때문인데 심지어 그런 자를 두고 “사람이 아니리요”라고 단언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아는 백성임에도 육신에 속한 세상 사람처럼 행동해 교회 안에서마저 분쟁을 야기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하나님 대신 사람을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죄인인 인간을, 아무리 사도라도 여전히 죄인이므로, 절대 숭배 대상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체한 어떤 숭배 대상도, 비록 존경받을 만한 위대한 인물이라도,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 숭배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으니까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공연을 앞두고 단원들과 리허설을 하는 도중에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주연 독창자에게 건설적인 비평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해 화를 내면서 “내가 이 공연의 스타입니다.”라고 반발했습니다. 그러자 토스카니니는 단호하게 “이 공연에는 스타가 없습니다.”라고 응수했습니다.
스타는 본인이 부단히 노력하거나 추종자들이 만들어 주어서 생깁니다. 고린도 교회가 사람을 따라 행한 것은, 후자에 해당되겠지만, 스타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선 스타가 있어선 결코 안 됩니다. 성삼위 하나님을 빼고는 말입니다. 바울이 본인은 단지 심고 아볼로도 물 준 것뿐이지만 오직 자라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말한 까닭입니다.
그 말의 의미가 단순히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독창자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실제 일을 하시는 이도 오직 당신뿐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바울이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어도 하나님이 황충을 보내고 비를 제 때에 내리지 않으면 시들어 죽거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씨앗이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열매가 없거나 죽정이 열매를 맺으면 심지 않느니 못합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든 교회의 스타들이 오해하는 측면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앞에서 말한 대로 일단 인간 스타가 생기면, 인간을 두고 숭배하거나 그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맹종하는 경우로 단순히 존경받거나 칭찬 받는 경우는 다름, 이미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지 않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크게 드러냈다고 착각합니다.
두 번째는 교회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이뤄내고자 하는 열매가 어떤 성격인지 잘 모릅니다. 이는 의외로 많은 선의의 사역자도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절대적이고도 당연한 원칙은 제쳐두고, 반드시 지체간의 팀워크로 이뤄지지만 그 팀워크로 이루고자 하는 열매도 사실은 팀워크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다른 말로 사랑의 하나님이 교회 안의 지체들끼리 서로 사랑하게 해서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결과 또한 어떤 외형적 실적이 아니라 여전히 지체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오페라단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열매는 전제적으로 수준 높고도 조화된 작품이지 주연 독창자 혼자서 아리아 몇 곡 잘 불렀다고 성공할 수는 결코 없지 않습니까?
만약 스타가 혼자서 독창을 하면 지체 간에 서로 사랑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됩니다. 담임 목사가 다른 사역자들이나 교인들더러 무조건 자기 하는 대로 따라 오라고만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체들이 아직 미숙하여서 여러 시행착오가 생겨도 과감하게 그들에게 일을 맡겨야 합니다. 교회는 일로서 일을 이뤄내는 것이 결코 그 존재이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반드시 사랑으로서 사랑을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각기 다른 은사와 재능을 주셨습니다. 당신께서 성도 각자와 개인적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모든 성도가 그분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그분께로부터 이미 받은 것입니다. 또 교회의 모든 지체의 재능과 특성은 각기 달라서 다른 지체가 절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모든 지체들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해, 특별히 교회를 향해 의도적으로 고안해 놓은 장치입니다. 스타를 만들지 말고 서로 사랑하도록 말입니다.
물론 성도도 아직 연약한지라 참 사랑이 이뤄지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서로 권면, 인도, 희생, 수고, 협력하는 긍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비방, 시기, 질투, 분노, 충돌하는 부정적 측면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며 이루어야 할 열매도 사랑이라는 것만 확신하면 부정적 측면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역의 열매를 가시적 실적으로 맺고자하면 부정적 측면은 오히려 증폭 됩니다. 아무리 화려한 업적을 이루어도 지체간의 사랑은 무너지고 분쟁만 부산물로 남습니다.
또 .팀워크는 수고를 줄이고 효용을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아니 팀워크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 자체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교회 사역의 궁극적 목표는 재삼재사 말하건대 일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자질이 뛰어난 자신이 나서야만 일이 된다고 믿으면 스타는 생깁니다. 그러나 가려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의뿐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하나님은 지체 간에 나눠지는 진실한 사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몸인 교회가 거창하게 이뤄낸 일은 그런 결과가 아닌 한에는 받지 않습니다. 요컨대 교회에서 모든 지체가, 특별히 담임 목사가 스타가 되려는 의도를 완전히 빼버릴 때에 나타나는 결과는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역이라도 실적 대신에 지체 간의 사랑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면 더더욱 놀라운 열매가 나타납니다.
엄밀히 따져 교회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랑으로 하나 되자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지체 간에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사랑하자가 맞습니다. 그러면 만들어내는 것도 당연히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할수록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맺어내는 열매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죄도 지을수록 더 커지듯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맺어내는 열매도 죄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인간을 서로 사랑하는 존재로 만들었는데 죄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시기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 원래 형상대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면 바울이 말한 대로 교인은 되어도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9/5/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