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3:5 십자가 지우개

조회 수 640 추천 수 41 2009.09.19 21:04:06
십자가 지우개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고전13:5)


본문의 일차적인 뜻은 상대에 대해 어떤 종류의 나쁜 생각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 싫어하거나 미워해선 사랑이 아님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또 상대에게 조종, 위계, 사기를 치려해서도 안 됩니다. 손해, 부담, 상처를 주는 일을 궁리해선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러나 악한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에 대해 가능한 모든 좋은 것을 생각해서 실천해야 참사랑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악한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구태여 사랑이라고 말한 까닭은 원어적인 특별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한 것”의 헬라 원어 kakos에는 채무를 뜻하는 Debit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상대와 있었던 안 좋았던 일, 상처를 주고받은 일, 무시당하거나 자존심 상한 일, 손해 본 일 등을 언젠가는 앙갚음하려고 두고두고 되씹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면 겉으로는 용납해 준 것처럼 해놓고 뒤로는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어도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장부에 남아 있는 상대에 대한 모든 빚을 완전히 지우라는 뜻입니다.    

회계장부 상에 빚으로 기록해 놓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목적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복수하여 내가 당한 만큼 톡톡히 갚아 주리라는 뜻입니다. 현실적 대응책이 불가능하다면 내 마음의 저주라도 절대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불편한 관계가 자주 오래가면 Black List에 올려버립니다. 말하자면 회수 불가능한 빚으로 간주하여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히 상종 못할 인간 취급을 하여 자기의 기대나 관심의 대상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립니다. 차라리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되돌릴 가능성이라도 있습니다. 무관심이야말로 분노나 저주 대신 사랑의 완전 반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인할 때에 닭이 울었고 예수님이 그를 그윽이 쳐다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똑 같이 세 번 물었습니다. 그럼 예수님도 부채로 기억했다가 일종의 앙갚음을 한 것입니까?

물론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인지라 아무리 본인이 그러리라 예언을 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면  섭섭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음속에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이 땅의 어느 누구에게도 반드시 받아내어야 할 빚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 당신의 죽음으로 대신 갚아야 할 모든 인간의 빚만 잔뜩 지고 오셨습니다. 자기를 매단 사람들마저도 하나님께 용서해주기를 빌었지 않습니까?

베드로에게 한 세 번의 질문도 당신의 섭섭함을 풀어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반대로. 그의 마음에 남아 있는 죄책감, 부끄러움, 자괴감등을 씻어주려는 뜻이었습니다. 그것들이 계속 앙금으로 남아 있으면 그와의 관계가 절대 온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부어주셔서 당신의 사도로 삼기 전에 참 사랑의 관계로 회복시키려는 뜻이었습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받으려고 남겨둔 모든 채권을 완전히 탕감해 주는 작업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가해자의 모든 잘못을 십자가에 지고 죽은 것같이 그 채권을 하나님께 갚아야 할 채무로 바꾸는 싸움입니다. 받아내야 할 것을 오히려 그저 줌으로써 받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가 아니고는 사랑은커녕 용서도 할 수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앙금은 예수님의 나를 향한 사랑마저 가로막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마음의 모든 부채를 십자가 지우개로 지우십시오.
  
9/1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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