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3:4,5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조회 수 809 추천 수 27 2010.08.18 18:01:25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질문]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라고 되어 있는데 모든 자랑은 사랑이 아닌지요 ? 자기부모의 훌륭한 점이나 필요할 때 자기 PR을 위해 또는 자기 자식의 훌륭한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이것도 사랑이 아닌가요? 자랑하지 않는다는 헬라 원어가 무슨 뜻인지? 자랑의 범위가 어디까지가 사랑이 아닌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성내지 아니하며"도 영어성경에는 not easily angered(NIV)로 나왔는데 더 좋은 설명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답변]

자랑하는 대상


조금 특이하게도 질문자님께선 예사로 지나치는 부분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 같습니다. 먼저 확실히 해둘 것은 고전13:4-7의 사랑에 관한 설명은 사랑하고 있는, 꼭 남녀 간이 아니라도, 당사자들 간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반면에 질문자님이 문의하신 경우는 사랑하는 상대방이 아니라 제 삼자 앞에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부모의 훌륭한 점이나 필요할 때 자기 PR을 위해 또는 자기 자식의 훌륭한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라는 의미가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밖에 나가선 얼마든지 자식 자랑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과 직접 상대하면서 자기 잘난 것을 자랑하지는 않으며 또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물론 부모가 자식의 잘난 것을 자식 앞에서 자랑하는 경우는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온 ‘격려’ 내지 ‘칭찬’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를 남들 앞에 자랑할 수 있지만 부모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자식이 부모 앞에서 부모를 자랑할 수 있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 내지 ‘존경’의 표시일 뿐입니다.

자기 PR은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데 성경에 “자기를 사랑하라”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아담이 범한 원죄의 본질이 바로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습니까? 물론 신자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또 그 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자신을 아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반드시 주님 안에서 바꿔진 자신의 소속, 신분, 위치, 특권, 기업 등을 사랑해야하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면에서 자기를 사랑해선 안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남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은 사랑의 연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자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 불순물이 섞이지 않아야 하며, 자랑도 불순한 의도 없이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PR도 회사의 면접시험 같이 피치 못할 경우는 당연히 해야 하되 솔직하고도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자랑할 것

그럼에도 엄격히 따지면 제 삼자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자랑하는 것도 사실은 신자가 행할 덕목은 아닙니다. 자랑한다고 해서 굳이 죄가 되거나 나쁜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권장하는 선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자랑의 기본적인 뜻이 바로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한 측면을, 또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여 좋은 면을 드러내어 뽐내는 것이지 않습니까? 신자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비록 자기 부모, 자식,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울지라도 그 모두도 그분이 주신 것이지 않습니까? 일반인도 자기 부모는 몰라도 배우자나 자식을 자랑하는 것은 팔불출(八不出) 즉, 못난 짓이라고 간주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선 아무리 자랑해도 흠이 되지 않을 만한 일마저 신자는 오직 주님께만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도무지 자격이 없는 자기에게 긍휼과 사랑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신 것입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분명 남들보다 우월한 요소를 갖고 있어도 그조차 하나님께 받은 것이지 스스로의 실력으로 이뤄낸 것이 아닙니다. 또 아무리 좋은 일을 달성해도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입니다. 순전히 자기 노력으로만 쟁취한 것이라면 혹시 자랑해도 되지만 은혜로 얻은 것을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신자가 된 것부터 그러하지 않습니까?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4:2)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1:8,9)

또 스스로는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든 이를 동등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선 사람끼리 잘나고 못난 것은 절대 없습니다. 각자가 다르게 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사와 재능이 각기 다를 뿐입니다. 같은 조건 하에서 더 뛰어나야 자랑이 성립되지 서로 다른 사람끼리 자랑이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컨대 남자가 여자와 비교해 힘자랑하는 바보는 없는 법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의 은사를 서로 뽐내는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엄격히 경고했습니다. “주께서 오시기까지는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고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자랑은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고전4:6)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4:7)

따라서 신자는 오직 하나님과 그분이 하시는 일만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롬15:17)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 교회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고전1:31)하되,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3:21)고 말했습니다.  
  
이미 말한 대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나 자식을 남들 앞에서 진정한 겸손과 함께 자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자랑이 아니라 단순히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셈입니다. 반면에 인간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자식과 부모를 사랑하면서 남들 앞에 그들을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또 자기 능력으로 세상에서의 영달과 형통을 추구하는 중에 달성한 업적을 자랑해선 더더욱 안 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진짜 자랑해도 될 만한 사람, 사물, 사건조차 신자에겐 모두 다 주님의 은혜이므로 주님께만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을 죽이며 남을 살리는 한 알의 썩어 없어지는 밀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주변 모든 사람과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만 겸비하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는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으로만 대해야 합니다.  

자랑과 사랑

이런 기본적인 이해를 갖고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란 뜻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자랑의 헬라 원어의 뜻은 스스로 뽐내며 자기 과시를 하는 것입니다. 남이 인정하든 안 하든 자기도취에 빠져서, 심지어 자기 허물은 가리고, 자꾸 남 앞에 자신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고무풍선처럼 부풀린다는 뉘앙스를 지닙니다.  

따라서 부모자식과 부부와 성도와 혹은 일반인과의 어떤 관계에서도, 혹시 불신자 상대는 자랑을 하더라도, 신자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선 상대를 하나님이 비교 경쟁의 상대로 붙여 준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서로 기능과 역할이 다를 뿐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연합하여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아름답고 거룩하게 이루어나가는 동역자로 삼아야 합니다.

상대에게 자기 잘난 것을 과시해선 당연히 안 되지만 역으로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상대의 자랑할 것만 보고 사랑해선 안 됩니다. 아무 자랑할 것이 없어도 즉, 약점과 허물과 잘못한 점이 있어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쁜 점만 있고 자신에게 줄곧 피해를 끼쳐도 사랑해야 합니다. 아니 그런 점이 있기에 오히려 더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랑은 반드시 자기가 잘났다는 전제 하에 나옵니다. 비록 자랑하는 본인이 구체적으로 인식을 못해도 필연적으로 상대가 자기보다 못났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참 사랑은 생길 수 없습니다. 상대를 자기보다 낫게, 최소한 동등하게 여기지 않고는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사랑을 설명하면서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포용과 인내를 세 번이나 강조한 것입니다. 어떤 허물도 용서하되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 같은 잘못을 반복해도 품어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눅6:32)라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자기에게 잘못한 자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주라고(마18:22) 가르쳤습니다.        

본문에 쓰인 사랑의 원어도 신적인 사랑인 “아가페”가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말로는 다 같이 사랑이지만 영어만 해도 이 사랑을 love로는 그 의미를 다 나타낼 수 없어서 KJV의 경우는 Charity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사랑은 관용, 포용을 넘어서 긍휼과 자비의 뜻까지 내포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상처, 고난, 허물, 죄악 가운데 있어도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시며 사랑했습니다. 그분은 결코 당신을 앞에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자기도취에 빠져 과장, 과시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사53:1)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또 온갖 멸시와 핍박을 당하면서도 우리의 질고와  허물과 죄악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당신이 죽음으로써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런 온전한 사랑 안에는 자랑이 개입될 여지라고는 전무합니다. 신자라면 그런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렇게 사랑하라고 표현하지 않고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만 설명했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아주 힘들지 몰라도 무엇이 참사랑인지 확실하게 알라는 것입니다. 불신자 시절과는 전혀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이 말씀을 서로 은사를 뽐내는 잘못을 범한 고린도 교인들을 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아무리 방언, 신유, 영분별 등 초자연적이고 신령한 은사를 받았더라도 그것을 뽐내면 울리는 꽹과리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자랑이 앞서는 이유도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고 또 교회의 덕을 세우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내지 아니하며(not easily angered)란?

신자가 성을 낸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분노의 감정을 준 것은 잘못 된 일에 대해서 분히 여기고 고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죄, 사단, 사망과 그 부작용에 대해선 당연히 화를 내고 대적하며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바꾸었다고 성전의 장사치와 환전상을 불같이 화를 내며 쫓아내었지 않습니까? 부정과 불의를 보고도 분개하는 감정이 안 생기면 오히려 신자가 아닙니다. 또 아무리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라도 확실한 잘못을 범하면, 심지어 자기에게 아무 손해가 미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화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 잘못한 “일”에 대한 분노로만 그치지 않고 화를 계속 품고서 “상대”를 저주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용서하기는커녕 앙심을 품고서 복수하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설령 허물과 잘못이 있어도, 심지어 자신에게 온갖 피해를 입혀도 끝까지 인내하고 포용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대신에 사단은 신자가 화를 내는 순간 분노에 계속 사로잡히게 하려고 농간을 부립니다. 또 다른 죄를 유발케 하고 사람 사이를 완전히 이간질 시켜서 원수로 만들려고 모든 음흉한 술수를 다 동원합니다. 신자는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자꾸 분노의 늪에 빠져 다른 생각이 안 나려고 할 때는 곧바로 사단의 흉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최대한 빨리 그 분을 삭이어야, 특별히 용서하고 사랑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본문의 성낸다는 원어는 “쉽게 (남을) 자극시키다, 휘젓다, 분개하게 만들다, 경멸하다.” 등의 뜻으로 이런 성경 원리를 뒷받침 해줍니다. 우선 신자라도 화를 낼 수는 있지만 너무 쉽게 내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낸다는 것은 이미 분노가 몸에 밴 습관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상대 잘못을 줄곧 용서 못하고 있거나 상대방을 아예 미워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에도 그냥 화를 폭발시키는 것입니다. 사랑과는 정반대의 상태입니다.

나아가 단순히 혼자 화를 내거나 못 참는 정도를 넘어서 상대로 화내게 만들되 아주 쉽고도 자주 그렇게 한다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조금만 틈이 보이면 완전히 멸시하여 그 인격에 모독을 주며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인도 분을 삭이지 못한데다 상대마저 자극했으니 남은 일이라곤 서로에게 죄 짓는 것뿐이지 않겠습니까?

신자는 상대에게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문제가 될 만한 큰 잘못이 확실히 있을 때에 한해서, 진정으로 상대를 안타까이 여기고 또 그것을 고쳐 더 나아지기 위한 목적으로만 온유하고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분을 처리하여야 합니다. 상대로 하여금 진심으로 납득시켜서 기꺼이 고칠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이 또한 역으로 말해 설령 상대가 나를 자꾸 화나게 자극해도 쉽게 성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래 참으라고 되풀이 강조했지 않습니까? 예컨대 교회 안에서 아무리 작은 허물과 잘못도 절대 눈감아 주지 않고 일일이 따지며 뜯어 고치겠다고 덤비는 것은 사랑은커녕 정의도 아닌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자의 자랑은 주님의 일에만, 반면에 분노는 사단의 일에만 해당됩니다. 또 사랑은 어떤 이라도 끝까지 주님의 심장을 갖고서 대하는 것입니다.

8/9/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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