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3:1,2 교회가 행사위주로 변한 이유

조회 수 392 추천 수 5 2009.09.20 00:25:56
교회가 행사위주로 변한 이유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3;1,2)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는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이단의 사기와 궤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심지어 성령을 받은 신자마저 잠시 미혹되어 교회 내의 분란의 단초가 되어 왔습니다. 그 일차적 잘못은 거짓 교사들에게 있지만 그에 넘어가는 교인들의 잘못 또한 큽니다. 만약 교회와 교인들이 참 복음 위에 굳건하게 서있다면 이단이 끼어들 틈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바로 참 복음으로 인도하고 가르쳐서 그 은혜와 권능이 신자의 삶에 실제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일단 교회로 출석 시켜 기존의 교회 문화에 적응만 시키면 마치 할 일을 다 한 양 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대한 임무 태만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와 필요로 해서 교회로 자의반타의반 출석은 했지만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하거나, 들어도 단순히 객관적 교리로 받아들여 앵무새처럼 따라 외우게만 해선 여전히 다른 복음의 일종일 뿐입니다.

교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바울 사도는 한 마디로 “어리석도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지식(knowledge)의 보유량이 적다거나 지성적 능력(IQ)이 모자란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주 정상적 지적 수준과 능력을 갖고도 제대로 할용 하지 못해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참 복음과 다른 복음의 차이를 조금만 생각해 봐도 쉽게 분별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 분별할 수 있는 근거로 두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눈앞에 밝히 보인다고 합니다. 율법대로 따라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꼭 그것도 스스로 죽으실 이유가 전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 또 성령을 받은 것이 어떤 율법의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므로 즉 신자 쪽의 자격, 조건, 공적, 능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구원은 믿음의 통로를 따라 거저 받은 은혜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령을 받은 신자마저 이런 눈에 빤히 보이는 꾐마저 분별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정말로 부족한 것 같이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뭔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것같이 생각된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해야만 안심하고 만족하는 습성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었든 옛 습성입니다. 그래서 구원마저 스스로 뭔가를 해서 기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죄책감을 씻기 위해 반드시 자신이 회개, 고행, 수양, 선행 같은 공적을 쌓아야지 아무 하는 일 없이 용서 받으려니 왠지 모르게 계속 뒤가 켕겼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광채가 신자의 영혼에 비취지 못하게 막아서는 것은 속에 남아 있는 옛사람입니다. 사단은 당연히 그 옛사람에게만 힘을 불어넣어줍니다. 자꾸만 신자로 하여금 이제 예수를 알게 되었으니 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최소한 노력하면 아주 더 의로워질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자기라는 존재 자체가 태생적으로 너무나 더럽고 추한 죄인이라는 의식을 자꾸 희석시킵니다.

죄를 자기 스스로 범한 잘못된 행위에만 국한시켰던 옛 사고방식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 행위를 고치고 선행으로 보상하라고 부추깁니다. 옛사람을 다 죽일 필요는 없고 그 중에 좋은 점은 계속 살려나가자고 합니다. 드러내놓고 그리스도가 부족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좋은 게 좋으니 그리스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꾑니다. 예수보다 그 좋은 일이 앞서게 만듭니다. 말로는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면서 실제로는 이것저것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이단들의 전형적 수법이지 않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옛사람이 단순히 악하고 추한 죄 된 행위나 부끄러운 습관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려는 것입니다. 그 높아지는데 하나님이 도움이 되면 아주 뜨겁고도 열심히 믿고 따릅니다. 그러나 만약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가차 없이, 정확히 말하면 두려워서 그렇게까지는 잘 못하고 아주 교묘하게 하나님 이름을 겉으로는 내세우면서 자기가 의로워지도록 만드는 스스로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방식입니다.

옛 사람의 생명력은 여전히 자기 속에 있는 자기의 것이라 너무나 끈질겨 정말로 죽이기 힘듭니다. 마치 비한방울 내리지 않아도 잘 자라는 가시 돋은 선인장 같습니다. 인간의 피폐하고도 황무한 영혼의 사막에도 옛사람은 여전히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시를 잔뜩 돋우고선 말입니다. 사단은 그 가시에 날을 돋우게 만들려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믿음과 동시에 성령을 내주케 하신 이유는 그런 사단의 시도를 막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신자가 평생 동안 치러야 할 신앙의 싸움이 바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그 가시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기도와 말씀이라는 칼을 들고 잘라나가야 합니다.

요컨대 뭔가 예수님만으로 부족하고 내가 나서서 어떤 일이라도, 그것도 아주 도덕적으로 선하고 종교적으로 그럴싸한 일을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싹을 완전히 잘라 없애야 합니다. 신자들이 이 싸움을 등한히 하는 순간 교회 내에는 각종 이단들이 꽈리를 틀 여지가 생기고 사단에게 놀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고도 안타깝게도 메마른 영혼들이 그 꾐에 더 잘 넘어갑니다. 선한 일은 당장 눈에 경건해보이기 때문이며 또 그래서 맨 아래부터 맨 위까지 몽땅 속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교회들이 복음 전파보다 행사 위주로 변한 숨겨진 원인입니다. 모두가 빠듯한 생활에 영혼마저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더더욱 십자가만 붙들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바울이 떠나니까 갈라디아 교회가 그렇게 속히 참 복음을 떠났지 않습니까?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며칠 잠잠하니까, 그것도 하나님을 만나러 간 줄 빤히 알면서도 홍해의 기적까지 체험한 이스라엘이 스스로 개발한 종교 놀음에 완전히 빠져들었지 않습니까? 빤히 알고도 빤히 넘어가니까 어리석은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영혼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눈에 안 보이는 싸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성령의 인도를 놓치면 옛사람이 자꾸 되살아나고 그러면 빤한 싸움에 지는 너무나 어리석은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예수 없는 인간은 한없이 어리석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 항상 “내가 열심히 믿었는데도, 그렇게 뜨겁게 기도하고 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말씀을 읽었는데도 아직도 왜 이 모양이지?”라고 한탄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성령님도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 순간에도 사단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더욱 십자가 복음의 은혜에 비추어 자신이 어떤 존재였다가 지금 어떤 신분이 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정말로 앞으로는 내가 한번 잘해 봐야지”라고 어금니를 꽉 무는 순간 이미 그 싸움은 진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해서 자신을 내세우거나 최소한 깨끗케 되어보겠다는 시도는 아무리 의로워 보여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제거되면 가장 추악한 것으로 돌변합니다. 세상에선 그 반대이지만 신자와 교회에선 그렇습니다. 아직도 죄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 자가,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스스로 행하는 것은 여전히 죄에 찌든 추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로운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십자가를 통과한 것뿐입니다. 신자마저 자기의 가장 의로운 부분까지 부인하며 예수님의 은혜만 붙드는 싸움에 나태해지는 순간 사단의 마수에 자동으로 빠지게 됩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만든 철학, 도덕, 종교적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인간 눈에 보이도록 세우신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귀 있는 자가 아니면 보고도 못 믿는 영적 진리입니다.

5/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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