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령관님의 전무후무한 능력과 권위

조회 수 1261 추천 수 56 2007.01.28 07:48:51
                                         사도바울의  외침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것이요 또그가운데선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

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불쌍한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

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김교신                                                 부활    

  
복음서를 읽어 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전히 패배한 일생을 산 동정할 말한 한 청년이 있었던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수의 삼십세 이전의 행적은 복음서에도 상세하게 나오지 않으니 그만두더라도, 삼십세 이후의 공생애만 관찰해 보라.

예수의 교훈은 학자들의 것과 달라서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는 기적을 많이 행하였지만 그런 것들은 그 고향사람들과 당세의 학자 종교가들의 찬양을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조롱과 멸시의 구실이 되었다.

우선 예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막 6:2~3)


또 당시의 중앙 종교계에서는 “네가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행하며,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 (마 21:23) 고 캐고 따지며 비난하다가 나중에 십자가에 달고서는 “저가 다른 사람은 구원하였으나 제 몸은 구원치 못하는 자라” 고 조롱하였다.

친척과 벗으로부터는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였고 (막 3:21), 고향사람들의 무시함도 마찬가지였고, 중앙 교계의 조롱이 또한 이러하였거니와, 예수의 언행에 취한 듯이 따라 다니던 제자들은 어떠하였던가?

4천 혹은 5천의 군중이 호수의 이편에서 저편까지 침식을 잊고 쫓아다닌 일이 없지 않았으나, 이런 무리들은 이른바 ‘이적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오, 떡을 먹고 배부른 맛에 따라 다니는 자들’ 이었으니 말할 바가 못 된다.

3년을 두고 특별 지도를 받은 12사도가 있었으나 그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배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겟세마네 기도에서도 깨어 지키는 자 하나도 없었고, 적에게 잡힌 다음에는 애오라지 베드로 하나가 멀리 따라가기에 예수의 흔적이 이 땅에 무엇인가 남을 듯 하였으나 이 역시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차례 예수를 부인하고 자기를 위하여 도망가 버렸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엘리 엘리…’ 라고 하나님과의 교섭 이외의 온갖 지상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말았다.


예수는 당대의 대가에게 배워서 이력서를 수식할 만한 학문도 없었다. 당대 중앙 교계의 승인을 얻을 만한 종교적 권위를 받은 것도 없었다.

고향에 돌아오면 그 평가가 ‘일개 목수’ 에 지나지 못하였다. 사회에 나가서는 부러워할 만한 슬기로운 제자를 길러 낸 업적도 없다.

후세에 자랑할 만한 철학적 사상의 체계를 남긴 것도 없이 30여 세의 한창 나이의 청년으로 요절해 버렸다. 과연 요절하였다고 우리는 말한다.

행여나 예수에게도 공자나 석가처럼 70이상의 수명을 살았거나, 하다못해 독배를 마실 때의 소크라테스만큼이라도 살기만 하였더라도 인간 된 입장에서 볼 만한 성공을 후세에 남겼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볼 때, 예수는 과연 요절이요, 실패요, 허무하게 없어진 것이었다.

예수의 생존기간 특히 그 공생애 3년간은 마치 쇠 몽둥이를 돌에 칠 때의 섬광 같은 모습이었으나 섬광은 섬광이었다. 섬광이 지나간 다음에는 아무 건더기도 잡을 수 없다.

예수의 십자가 이후에는 예수의 친척도, 벗도, 고향도, 사상체계도, 제자도, 사도도, 아무 것도 없었고, 다만 남은 것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는 슬픔과 설움의 소리만이 공기를 진동시키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예수는 죽어 없어진 것이오, 기독교는 유산된 태아처럼 햇빛을 보기 전에 영원히 박멸당하고 말았다.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패배한 일생이 있었다면 예수의 일생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처럼 완전히 패배해서 없어졌던 예수와 기독교가 유사 이래의 최대 영웅이라는 나폴레온으로 하여금 헬레나 섬의 유배지에서 나사렛 사람 예수의 날로 날로 더욱 번성해가는 절대승리를 찬탄하여 마지 못 하게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였다는 사실 외에는 설명할 열쇠가 없는 만고의 수수께끼다.

첫째로 목자가 없을 때의 양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던 제자와 사도들이 열흘이 못 지나서 예루살렘에 집결하여 솔로몬 행각에서 외치며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가한가 결단하라” 고 관헌의 제지에까지 항거하는 신념에 찬 사람들로 변화한다는 것은 큰 사변이 없이는 생길 수 없는 것이 이치이다.

사변이란 무엇인가? 즉 예수의 부활을 목도한 사변이었다.

또한 스데반의 순교를 마땅하게 여겼고, 모든 예수의 무리를 박멸하기에 쾌감을 가지면서 동분서주하던 사울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당시 문화세계의 수도인 로마에까지 묶인 죄수의 몸으로 끌려 다니기를 자원하게 된 데는 일대변혁이 일지 않고는 안 될 일이다.

일대변혁이란 즉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목도한 체험이었다.


생전의 예수는 학파도 없었고 문벌도 없었고, 사회와 항쟁할 만한 단체도조직함이 없었고 후사를 의탁할 만한 제자도 양성한 것이 없이 30 청년으로 요절하여 일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도중에서 아침이슬과 같이 철저히 패배하였다.

그러던 예수가 십자가 이후 불과 한 세기에 벌써 당시의 모든 문명세계 로마제국을 정복하였고, 20세기인 지금에는 전세계에 군림하여 일찍이 예수 자신이 예언한 대로 ‘만왕의 왕’ 으로 영계를 통치하게 되었으니, 이는 부활이라는 열쇠가 아니고는 해명할 수 없는 만고의 비밀이다.


    

박신                          총사령관님을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역할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이자 모든 신자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자신이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사회 어디에서든지 또 필요하다면 선교사가 되어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자기가 하는 일이나 전문적인 사역을 통해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또 그러면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신자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의 평행 구절에선 그 권세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가 매직 파워를 가진 슈퍼맨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했지 “믿는 자들은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은 그것을 소유한 자가 시행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자전거 타기, 수영, 언어 같이 한 번 배우면 평생을 두고 잊어버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표적은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 의해 특별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나님이 초자연적 간섭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미 소유하고 있어서 언제든 포켓에서 꺼내어 쓸 수 있는 능력과는 다르기에 “따른다”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말한 대로 믿는 자에게만 나타나며 그것도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으로 초대하고 이미 믿은 자에게는 그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상 명령과 함께 표적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전도할 때에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실제 오지의 선교 현장에선 많은 표적이 따릅니다. 사단이 그때까지 자기 노예로 부리던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이 들어오는 것이 두려워 자기 모든 능력을 동원해 갖은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선 더 큰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사단과 맞서 당당하게 싸우기만 하면 그 권세가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위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했는데도 권세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단과 사람과 죄악에 져서 넘어질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습니다.

물론 표적은 항상 나타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필요와 뜻에 의해서만 드러난다는 것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권세가 끝 날까지, 땅 끝까지 함께 한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으므로 언제 어디서든 그 권세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태와 마가가 기록한 내용이 서로 상충되는 결과가 됩니다. 아니면 우리 믿음에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둘 다 아닌 것 같아 신자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럼 제 삼의 원인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이 거짓말 하셨거나 신자가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선 표적을 능력으로 오해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수호신처럼 신자가 무슨 일을 해도 지켜주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와 항상 함께 하는 예수님의 권세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마16:19) 권세를 말합니다. 또 다시 신자가 자신의 문제를 기도하여 응답받는 능력을 말하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 앞에 예수님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역으로 말해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인 것입니다. 음부에 붙잡혀 있는 영혼을 구해내는 권세입니다.

또 그런 기도를 하고 전도하고 있는 신자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권세입니다. 잠시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악에 빠져있어도 기도하면 흑암의 권세를 이겨내고 거룩하게 해주십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현실의 경제적 궁핍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본인의 영적인 성결과 성숙을 전제로 들어주기도 안 들어주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권세란 신자가 흔히 생각하듯 인간이 도저히 해내지 못하는 어렵고 큰일을 해치우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신자로 사단을 이기도록 하는 능력인데 이 또한 힘으로 사단을 이기게 해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유컨대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게 하는 것이 한쪽에선 예수님이 다른 쪽에서 사단이 그 귀신을 붙들고 줄 당기기 시합을 하다가 예수님이 더 힘이 세어 귀신을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5,16) 신자에게 함께하는 예수님의 권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바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이자, 하늘과 땅의 다른 모든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두고 사단과 예수님이 힘겨루기 하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 귀신들린 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자기 종으로 부려먹을 욕심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을 언제 어디서든 이기는 이유는 그 능력으로도 아예 비교가 되지 않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귀신들린 자의 영혼마저 예수님이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주로 시인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자 음부를 이기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사단에게 이길지 질지는 이미 선택과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사단에 대한 승리는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를 찾아서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는 믿음만으로는 안 됩니다. 비유하자면 신자는 예수님을 믿어 자신의 주로 영접하는 순간 음부를 이기는 열쇠를 받아 포켓에 넣어 놓았습니다. 표적이 아니라 능력이 되었습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을 꺼내 쓰는 일이 귀찮고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완전히 잠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신자가 되어서도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니까 자신의 문제만은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이 결핍된 채로는 아직 포켓에서 열쇠를 끄집어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신자는 모릅니다. 자기 포켓에 열쇠가 있으니 당연히 열리겠거니 생각한 것입니다. 그 열쇠를 포켓에서 꺼내어 직접 열쇠 구멍에 끼우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기도는 사실 그렇지 않으니 당연히 표적이나 능력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고전13;2) 했습니다. 또 요한 사도도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요일4:18)고 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 때에도 틀림없이 어떤 축사를, 말하자면 기도의 형식은 취했을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과 제자들의 축사에 차이점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고상하고 심오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까? 열심과 정성과 심지어 믿음의 차이입니까?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의 영혼을 정말 사랑했고 제자들은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권세를 갖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포켓에는 전지전능한 권세가 항상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그것을 끄집어내어 쓰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분의 사랑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가 그분의 권세에 동참할 수 있는 길도 결국 그분의 사랑 안에 잠기는 길 뿐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시 주님이 나를 영원토록 사랑해주셔서 기도만 하면 나를 형통케 해주실 것이라는 분홍빛 환상에 젖어 들어선 안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음부에 붙들린 모든 불쌍한 영혼을 구원해 내는 사랑입니다. 신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고 또 그럴 때에 당신의 권세가 함께 할 것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신자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순간 영원토록 주님의 사랑 안에 이미 잠겨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따로 자신을 위해 받을 사랑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 사랑을 주위에 나눠주어야 합니다. 정말로 주위에 미혹된 영혼과 심지어 잠시 죄악에 빠진 자신마저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까이 여겨야 합니다.

지금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런 사랑이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도 힘이 더 세다고 확신하십니까? 흔히들 모성애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끼리도 그러할찐대 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의존하려 하지 않고 자꾸 그 능력만 그것도 무조건 무엇이든 해줄 것 같은 능력에만 목을 매달고 있습니까?

능력에 사랑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능력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십시오.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았고 그 권세를 열심히 쓰고자 하는 소망과 열정이 있는 자신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천하에 정말로 두려울 것 하나 없을 것이며 이루지 못할 “사랑의 일”이라고는 하나 없을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 !!!!!!!!!!!!!!
하나님 !!!!!!!!!!!!!!!!!!!!!!!!!!!!!!!!!!!!!!!!!!!!!!!!!!!!!!!!!!!!!!!!!!!!!!!!!!!!!!
저희들이 전투에 임할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희들에게 충만하게 공급해주소서 !!!!!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국중후

2007.01.28 16:33:36
*.147.129.7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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