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뒤에 드러나는 사명은 각자각자

조회 수 1053 추천 수 68 2007.05.01 03:08:13
신앙론 > 기독교 >  
성서조선이 전하는 복음  
| 現代文보기 | 原文보기 |     성서조선 第 76 號 (1935年 5月)  
  
‘성서조선’이 전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복음이라고 할 만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아닌가?

성서조선의 필자들은 개인적 신비한 체험을 말하거나 글로 쓰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성서조선에는 선다 싱(Sundar Singh) 이나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같은 신비주의적 소식이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차라리 그 이름들 까지도 멀리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들을 무시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며, 내 것만이 옳다고 자랑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성서조선의 어쩔 수 없는 경향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우리가 믿는다.   독특하고 신비로운 황홀경을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을.   전무후무한 새로운 진리를 찾아내지 않아도 되는 것을.   평평한 대로를 걷는 것처럼, 현대의 당연한 과학적 교양을 받았다는 청년이라면, 통상적인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능히 기독교의 심오한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평탄하고 담백하고 당연한 도리를 성서조선은 전달하고자 했다.   물론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는 말은 맞다.   그러나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인하여 거듭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환장하는 것은 쓸데없이 해롭기만 할 따름이다.   종교를 논하는 자들 가운데 스스로 거듭났다는 곡예사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우리는 비록 기독교의 가장 심오한 경지에 들어서지 못한다 해도 좋다.   차라리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타고난 이성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도덕적 양심을 포기하고는 살 수 없는 자이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 한다. (고린도후서 4:2).   이것이 가장 평범한 길이다.

성서조선의 필자들은 신학을 논평할 줄 모른다.   일전에 신학교 출신이 집필할 때에도 신학적 논설을 즐겨 하지 않았거니와, 지금의 필자들은 그 주필을 비롯해서 모두 다 신학에는 인연이 없다.

그래서인지 칼 바르트(Karl Barth) 신학이 전 세계를 휩쓴 지도 꽤 오래인 이때까지도 바르트의 신학을 한 번도 지상에 소개할 여백이 없었다.   이 역시 신학의 무용을 주창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성서조선의 영역이 아닌 까닭이다.

성서조선은 성서 그 자체를 깊이 음미하고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도들의 신앙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면 충분한 줄로 여긴다.   새로울 것도 없이 2천 년 전의 기록 그대로에서 영혼의 양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그러나 성서조선의 내용을 유치하다, 천박하다고 멸시하기는 우리의 친근한 우인이 먼저 시작하였다.   또 교권자들은 본지의 외모만 보고서 위험하게 여기며 또 질투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시작하여 영남 지방을 위시하여 온 조선의 교권자 사이에 파급되었다.

성서조선을 강단 위에서 소개한 목사는 이단자로 몰렸다.   구독하던 신도는 교회에서 축출되었다.   본지에서 위안을 얻던 환자는 병상에서 핍박받았다.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답답한 심정은 꽤 오랫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조선을 위해서는 차라리 성서조선이 없는 것이 좋지 않을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는 가운데 이제 나환자들이 전하는 소식을 들으니, 우리를 괴롭게 하던 의혹의 구름은 산산이 흩어졌다.   신학자가 멸시하려거든 하라.   교권자가 핍박하려거든 하라.

죽음 앞에 선 나환자가 읽고서 기쁨을 얻고 하나님을 찬송한다.   이러한 글들이 성서조선 안에 가득하다 할진대, 그것이 복음이다.   죽음을 이기는 소식을 천국의 복음이 아니라고 할 이가 누구냐.

기독교계의 여론이야 어찌 되었든지 신경쓰지 않는다.   고통의 극, 슬픔의 끝에 놓인 형제 자매가 성서조선으로 인하여 함께 주 그리스도를 송영한다고 하니, 성서조선 발행자로서의 양심의 평정을 비로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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