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드러나지 않은 모습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위선은 연약함과는 다른 것입니다.
연약함은 진리를 믿고 행하려 하나
연약하여 쓰러지는 경우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이 항상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선은 자기 스스로 진리라고 믿지 않으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거짓으로 겉의 모습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이고
거짓의 아들이며, 마귀의 종입니다.
오늘날 교회 가운데에는 스스로 하나님을
누구보다 경외한다고 여기는 자들이 많습니다.
예배할 때 하나님이 가장 존귀함을 누리셔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높임을 받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칭송을 받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겸손의 덕을 실천하기 위해
큰 자가 소자를 섬기며 남을 나보다 더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은
스스로 높임 받기 좋아하는 분이고,
섬김을 받기를 좋아하는 분이라고 하면서
왜 사람들 앞에서는 높임을 받으려 하면 안되고
다른 사람을 높여야 하고, 섬김을 받으려 하면 안되고
다른 사람을 오히려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들에게,
사람들에게 말하는 선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어떻게 다른가를 물으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주셨기에
높임을 받으려하고, 칭송을 받으려하고,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합당하고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겸손은 피조물의 한계로 말미암는
연약함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일 뿐입니다.
겸손을 진리로 믿지 않는 이러한 자들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겨본 경험이 없기에
결코 겸손의 높음과 영광을 알지 못하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섬겨본 경험이 없기에
결코 섬김의 기쁨과 감격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과 겸손이 절대적 진리라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야 말로 겸손의 왕이시며,
우리를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것이 가장 존귀한 것이고,
섬기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란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가장 높으십니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과 겸손의 도가
절대적 진리임을 믿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여러분을 자신보다 존귀히 여기셔서
생명을 다해 모든 영광과 명예를 버리고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8)
주님은 섬기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눅12:37)
주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만 섬기려 오신 것이 아니고
재림 이 후에도 영원히 우리를 섬기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단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