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 vs 세리
예수님께서는 매우 대조적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적인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것을 좋아했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행위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순결한 동기가 아닙니다.
육(flesh)이 영적인 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보여주기 바쁘게 됩니다.
세리는 유대인이었지만 자기 민족을 배신하고 돈을 벌기 위해
로마에 굴복했기 때문에 동족에게 매국노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왔을 때를 보십시오.
세리는 그 마음 중심에는 깊은 통회함과 후회함이 있었습니다.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눅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확신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내 안에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세리는 자신에 대해서 자기 확신이 전혀 없었습니다.
여러분, 자기 집착에 있어서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에게 감동하고, 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자기도취에서 벗어나야 하나님과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세리와 같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나에게만 초점을 맞춘 기도를 해보신 적 있습니까?
“왜 기도가 아무데도 안가고 그냥 나한테 머물러 있지?”라는 생각도 해보셨죠?
본문의 세리는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하늘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진실로 후회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18:13)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오십시오.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의미합니다.
세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왔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입은 것입니다.
스스로가 못마땅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겸손’입니다.
(눅18:14)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스스로를 향한 확신을 버려야, 하나님께만 확신을 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이 가장 최고이자 가장 풍요로운 삶입니다.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육이 영적인 척 하는 것,
자기확신, 자기사랑, 자기자랑, 자기도취, 자기감동....
무수한 자기, 자기, 자기...
제 이야기 같습니다.
곰곰히 묵상하며 기도하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