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한 벗 한나집사와 우리 가족은 마치 한 가족처럼 지내왔다. 남편과 시부님이 미국분이셨지만 그들은 늘 자신은 50%는 한국인이라 이야기 하였다. 그만큼 한국 정서에 젖어 살고 있었다. 부인을 그리고 며느리를 너무도 사랑하여 주었기에 그런 맘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심지어 우리집에 놀러와도 주방에서 반찬가지 나르는 일이며 소소한 잔심부름까지도 콧노래 부르며 즐겨 행하던 한나집사의 남편이였다. 김치를 담글 때도 여자들 곁에서 떠나질 못하고 그 커다란 키의 미국 사람이 그 큰 손으로 고추가루도 뿌려주고 소금도 넣어주며 무엇을 도와 주려나 싶어 주방을 떠나질 못하던 한나 집사의 남편이 오늘은 많이 생각이 난다.
한나집사 남편의 죽음은 벗의 남편 죽음 이상의 아픔이였다. 우리 가족의 죽음처럼 놀라고 아프고 슬프고 그리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항복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주 무능한 사람, 한 순간 입김 한번 후욱 하니 불면 그냥 모든 것 다 놓고 하나님 앞에 부름받아 올라 갈 수 밖엔 없는 존재임을 절감할 수 밖엔 없는 급작스런 죽음이였다. 그리고 사십일 후, 한나집사의 시부님의 죽음 앞에선 정말 아무것도, 사람은 아무것도 아님을 처절하리만치 깨닫고 항복하고 또 항복하고 말았다. 너무도 크시고 너무도 크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무릎을 꿇을 수 밖엔 없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연약함은 바람 부는 사막의 한 알의 모래정도도 안됨을 알게되었다.
내 삶에 가장 커다란 소망 하나 있다면 어서 어서 사랑하는 주님이 계신 그 곳에 가는 일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맘의 기쁨이 새록 새록 생기는 것은 바로 우리 주님을 만날 날이 가까와짐이기에 그러한 것 같다. 하지만 속히 가면 참 좋겠는 그곳이지만 또 주님이 이 곳에서 할 일이 있다시면 감사함으로 기다리는 순종이 더 귀한 순종임을 깨닫는다. 생명과 사망을 주장하시는 그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한 알의 먼지가 되어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티끌같은 존재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음에 매일 매 순간 감사하고, 물론 어서 주님 품에 안기는 그 일이 갈급한 소망이지만 이 곳에서의 남은 시간들도 주님의 기쁨이 되어 드림의 순종을 말씀으로 더 배우고 더 익혀가길 소원한다. 그렇게나 크신 분이 이렇게나 작은 먼지와 같은 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시어 모진 고난 대신 받으시며 죽으시고 우릴 구원해 주신 그 은총은 나즈막히 읊조리는 나의 노래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읊조리는 나의 노래이다. 예수님은 나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