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작은 교회 섬길 때의 일이다. 성도 수는 얼마되진 않았지만 참 가족처럼 따스히 서로 서로 기대며 지냈다. 어느 싯점 거의 모든 성도들이 환경의 어려움으로 기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얼굴만 쳐다봐도 괴로움이 잔뜩 묻어있어 어떤 위로의 말도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궁리끝에 우리 한번 모여서 실컷 울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보았다 . 모두들 그거 너무 좋겠다고 대답을 하였다. 가뜩이나 상황이 울고 싶은데 너무도 잘되었다며 이참에 단체로 통곡을 해보자며 좋아라 하는 것이였다.
유학생 부부의 물질문제, 남편의 급작스런 실직으로 어찌 살아야할지 막막한 성도, 가족들은 한국에 있는데 갈 수가 없는 처지에 있던 성도 그리고 사기당한 나. 둥그렇게 모여앉아 속에 있는 아픔들을 모두 쏟아내기 시작했다. 서로 자기가 최고로 아픈 듯 자신이 제일로 불행한 듯 울며 불며 아픔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가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였다. 한가지 문제로 이어지는 상한 감정, 또 이어지는 다른 이웃들에게 끼치게된 피해, 그래서 또 생기게 된 미안스럼,... 고리 고리가 연결되며 끝이 없이 이어지는 고통들의 고리 고리들...
많은 시간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신의 형편을 다 토해놓고 나선 정말 신기한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자신의 고통이 가장 쉬운 고통이라고 동시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였다. 오히려 이웃의 아픔에 더 맘이 짜안하고 안스럽게 느껴진다며 서로를 위로하게 되었다.
그 일 이후로 우리에겐 유행어가 생겨났다. "고통스러러우십니까? 잘 가시는 것입니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랍니다" 이렇게 서로 서로 위로하는 시간들 자주 갖게 되었다. 우리의 삶의 여러모양의 아픔과 고통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너무도 오묘하신 사랑을 알아가는데 사용되는 귀한 교재임을 우리는 점점 더 깨달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