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그 죄에 싸여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죄를 인정하기를 꺼려합니다.

죄를 말하면 우선 거부감이 생기고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죄에 대한 설교는 인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이 부분을 마지 못해

하게 되고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대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까닭은 바로 자신들이 그 죄에 싸여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서 떳떳하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약점이 되어 있고 자신의 약점을 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죄가 하나님 사이에 원수가 되고 마귀의 발판이 된다는 사실은 잘 알면서도

그 죄를 이기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에 죄를 두려워하고 그 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마치 목욕하지 않은 사람이 더러운 몸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그 죄는 굳어져 ‘쓴 뿌리’가 됩니다. 이것은 마귀의 저주를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고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근본이 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애써서 외면하려고 합니다.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죄에 상당하는 노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레위기는 죄에 따라서 치러야 할 제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그 제물의 값을 정하여 돈으로 치를 것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에 따라서 그리고 남녀노소 성별과 연령에 따라서 신분에 따라서 치러야 할 값이 다르게

정해져 있고 그 값을 매기는 일을 제사장이 합니다.



돈으로 환산하여 치르는 일(레 27장)은 세겔로 정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는 노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그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은 곧 돈이며, 노동입니다. 회개의 시간과 강도에 따라서 그 죄가 처리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27장에 기록된 돈으로 환산하는 예 중에 남자의 경우 은 오십 세겔인데 이는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1세겔이 4드라크마이며, 1드라크마는 노동자의 일당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오십 세겔은 200일의 일당이므로 5만원으로 치면 1천만원 상당이 됩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에 해당하는 값을 정하게 되는데 이런 기준에 따라서 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죄를 치러야 하는 노동의 강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기도라는 회개를 통해서 치러져야 할 시간과 열정을 의미합니다.




노동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몸에 땀이 흐릅니다.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 죄에 대한 값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며, 노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처리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애쓰고 힘쓰고 있습니까? 응답 받는 기도를 위해서

우리는 끈질긴 기도를 하고 여러 가지 부담을 지는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죄의 처리를 위한 기도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고 하지요.

죄를 고백하면 무조건 처리 되었다고 여깁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어리석음이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이 됩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하지만 그 용서는 하나님만이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면 즉각적으로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의무가 하나님에게는 없습니다.

다윗은 죄가 용서되고 가리워지는 사람의 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시 32:1).

우리가 죄가 처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죄가 처리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죄가 처리되면 그 사실을 우리는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엄청난 감격이 몰려옵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격으로 인해서 온 몸이 요동칩니다.

그리고 죄가 용서되면 그에 따른 권리가 회복되고 직무가 다시 힘을 얻게 됩니다.

죄로 인해서 약화되었거나 정지되었던 기능들이 다시 회복되고 그 효과가 들어납니다.

죄의 용서는 상실된 권위와 직무가 회복되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이어서

우리는 육신으로 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환경이 변하고 주님과의 친밀함이 회복되며,

능력이 다시 생기며, 죄의 유혹이 사라지고 마귀의 저주가 거두어집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게 되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가 솟아납니다. 영안이 뜨여져서

전에 보지 못하던 영적 세계를 보게 되고, 지식과 지혜가 넘쳐나며, 은혜가 다시 되살아납니다.

입에 권위가 붙어 기도의 응답이 신속해지며, 죄를 미워하게 되고 이기는 힘이 생겨 담대해집니다.



그러나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늘 마음에 찔림이 생기고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말할 힘이 없어집니다. 적당히 타협하게 되고 죄와 맞서는 용기가 없어서 늘 주춤하게 되며,

주저하며, 그런 죄를 짓는 사람을 보면 그냥 넘기며 못 본 채 하게 됩니다.

자신도 그런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합리화하려고 하고 그들을 편들게 됩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그 죄를 죄라고 보지 않고 관습이라고 말합니다. 관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죄를 타당한 것으로 여겨 그 죄로 인해서 오는 양심의 부담을 벗어나려는 '자기 방어'입니다.


이 시기를 지나가 버리면 그 죄는 악습이 되고 쓴 뿌리가 되어 우리를 괴롭게 하는

불행의 근원이 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삭막한 신앙생활을 하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죄의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힘을 얻지 못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고

능력을 얻지 못하고 무늬만 그리스도인일 뿐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걱정들로 가득하며 그들의 삶의 태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음성은커녕 인도하심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마지못해서 교회에 나갑니다.




죽어서 지옥에 가기는 싫고 천당에는 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나가는데

그 일이 죽을 맛입니다.



주일에 한 번 교회에 앉아있는 시간이 오금이 쑤시고 온몸이 뒤틀리며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가련한 일입니까?

죄를 처리하지 못하면 기쁨도 즐거움도 사라집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자신의 삶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관념적으로만 믿습니다.

종교적 형식으로 일관하는 배경에는 죄의 처리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회개하지 않고는 절대로 천국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없음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회개한 사람이 얻을 영적 축복에 대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회개하면 죄의 멍에가 끊어지고, 질병이 고침을 받으며, 삶이 부요해지고, 마음에 평안이 깃들며,

주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며, 권능을 받아 죄를 이기는 힘을 얻습니다.



죄의 회개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하였을 때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이것은 제가 누누이 언급하는 ‘맛보기 판’입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며 이 맛을 본 사람은 이후 힘들고 어려운 영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 천국의 맛을 본 그 기억으로 거칠고 힘든 영적 여정을 걸어가야 하며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늘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은 경우에는

반드시 피나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 영에 주님이 용서해주셨다는 강한 느낌이 넘쳐나기까지

해야만 합니다. 용서를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재를 쓰고, 옷을 찢으며, 거름더미 위에 올라 회개했습니다.

이처럼 회개는 어려운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죄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지를 안다면 다시는 죄를 지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결해야 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이 죄를 짓고 회개하는 일보다는 더욱 쉬운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적당한 수준에서 죄를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고 맙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가지 특권을 상실한 채로 살아갑니다.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죄를 이기는 힘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이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 양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다수의 이런 무지함과 게으름 때문에 우리의 죄를 적당한 수준에서 덮어두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허락하시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허락하실 때 사무엘의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삼상 8:6).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으며,

백성들이 사무엘의 통치를 거부한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불순종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고 우리의 요구가 다 올바른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자신의 죄가 처리되지 않으면 그 부분에 취약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없으며, 그와 같은 죄를 지은 사람을 도울 수도 없게 됩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의 경우 성도들이 죄와 연관된 문제로 상담하려고 오는 경우

그 문제를 다룰 자격이 없으므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성도는 문제로 고통을 당하지만 목회자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도록 권유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런 목회자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고 다른 곳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죄가 처리되지 않으면 마귀는 떠나지 않으며 계속 괴롭게 할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처리는 영적 사역은 물론이거니와 영적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필수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죄를 적당히 다루려고 합니다.

주님이 용서해주실 때까지 하지 않고 적당하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용서는 주님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주님 이외에는 누구도 죄를 용서해줄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용서를 구해야 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수준에 이를때까지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이므로 육신의 안목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영적 회개는 우리 안에 있는 죄를 용서받은 증거를 얻기까지 해야 합니다.

이것은 때로는 지루하고 힘든 노동이 됩니다.

특히 영적으로 성장했거나 직임을 얻은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생략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무기력하고 은혜가 넘치지 못한 배경에는 아직도 처리되지 못한

죄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높은 장벽입니다.

이 장벽을 철거하지 않겠습니까?





임화평

2011.11.15 15:59:32
*.92.53.162

죄를 죄로 알지못하는 이 무뎌진 마음을 어찌해야 하나요?
더욱 더 기가막히는것은 나는 꽤 착한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있는 이 착각은
어찌해야 하나요?
진정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이 장벽을 철거하고 싶습니다!!

사라의 웃음

2011.11.15 23:41:47
*.172.59.236

저도요.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높은 장벽을 철거하고 싶습니다.
그 철옹성 같은 장막을 이젠 철거하고 싶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김승겸

2011.11.16 17:05:49
*.227.210.21

좋은 글 감사합니다.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죄가 얼미니 악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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