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분명히 이르시기를,
"사람은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돌이켜(회개/회심)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 : 3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 : 5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 : 21 )
위의 예수님 말씀은 아주 심풀하면서도 단순한 것입니다.
사람이 못지킬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운 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죄와의 동침을 은근히 즐기며 진실로 회개하려 하지 않고,
세상을 좇아 돈을 사랑하며 부와 출세를 위해 달음질 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무겁고 지키기에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철저히 회개하고 거듭나 변화되면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좇아 살아갑니다.
항상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이 주신 계명을 즐거워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행합니다.
그 사람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능력주시어 이끄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기를,
성령으로 거듭나는 변화없이 습관적으로 교회의식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요한 계시록 3 : 1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한복음 3 : 6 )
즉,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적으로 새 생명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디도서 3 : 5 )
즉, 하나님의 은혜로 씻김과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 : 13)
예수님께서 자신이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어
그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철저히 깨닫고 회개시켜 주시고
성령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본성을 새로 빚으시어 거듭나게 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자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어
그 사람을 성화시켜 나갑니다.
성화는 우리가 생을 마감할때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자라납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성화의 정도가 차이납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남은 성화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고
인생의 여정동안 "성화의 과정"을 겪습니다.
여기서 거듭남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인간 어느 누구도 우리를 거듭나게 하지 못합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해당되는 것으로써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가 거듭나고 거듭나지 못하였는지를 정확히
구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알곡과 쭉정이로 구분되는 것이고
양과 염소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이 성령으로 회개하고 있을때
"자신의 본성이 심히 부패해 있음을 깨닫고
자신은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마땅한 죄인임이 인식되면서
굵은 눈물과 콧물을 펑펑 쏟으며 철저히 회개하고 거듭나는 체험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물론 각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각자 서로 다른 성품과 성향과 기질에 따라서
각 사람이 받는 하나님으로부터 "회개의 은혜"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룩하신 성령께서 허물과 죄로 뒤덮힌 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들춰내면서
죄를 깨닫고 회개시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거룩한 빛이 우리의 어두운 본성을 밝게 비추는데
어떻게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을 받고도 사람이 철저히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 성자 하나님으로써
사람의 육신을 입고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위에 빛으로 오신
우리의 구세주,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시어
인류, 즉 나의 모든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진정한 믿음이고,
부활은 거듭남의 전형적인 모형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 후서 5 : 17 )
입술로 믿음 고백한다고 모두 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야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남이란 알기 쉽게 비유로 말씀드리면
"애벌레가 어두운 땅속에서 기어다니는 생활을 마치고
성충이 되는 매미나 나비로 변신하는 변태의 과정과 흡사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이 이르시기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 : 14 )
이것은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받는 자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아니면 거듭나지 못하였는가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 집니다.
사람은 누구든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남은 우리들에게 절체절명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는 거듭남의 필요성과 본질을 너무나 왜곡시켜 왔습니다.
대부분 교인들은 로마서 10장 10절의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입술의 시인은 곧 거듭남을 체험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또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을 시커멓게 달구는 구원파라는 이단은
입술의 고백 이후 자신은 거듭남을 체험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범하는 죄는 죄가 아니고,
자신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강조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어떤 이들은 세례 받은 것이 곧 거듭난 것이고,
그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회심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거듭남과 회심의 본뜻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곧 영적으로 새 생명이 주어진 것인데
어떻게 새 생명이 오랫동안 죽은 것처럼 활동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오늘날 대부분 한국 교회내에서
양들을 향한 "거듭남의 설교"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믿음을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고
만사형통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부자된다는 번영신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노를 발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은 사라지고
오직 축복의 예수님만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가슴을 찢고 애통해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라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십니다.
여러분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항상 영적으로 선한싸움을 지속합니다.
날마다 죄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며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항상 조심합니다.
혹여 부정한 생각이 떠오르기만 해도 심히 괴로워하고
곧바로 주님께 통회 자복하고 회개하며 고침받기를 간구합니다.
그는 점도없고 흠도없이 주님의 보혈로 온전히 깨끗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 사람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그렇게 소망을 주시고
주님의 성품을 닮도록 인도하시고 이끄십니다.
바로 성화, 즉 거룩함입니다.
여러분들,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거듭남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17세기 영국의 유명한 스테판 차녹 목사님이 들려주는 거듭남에 대한
일부내용을 인용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첨부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스테판 차녹 목사님이 저술하신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 와 "거듭남의 본질"인 책을 구입하셔서
읽으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1. 우리는 왜 거듭나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반드시 거듭나야 하는 근거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제시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 : 6 )
성경에서 육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 전체를 의미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의 본성은 자만심, 자기 신뢰, 자기 사랑,
그리고 자기 고집인 이기적인 자아로 부패해 있습니다.
따라서 타고난 본성이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든 사람은 죄 아래 갇혀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로마서 3 : 10, 11)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 : 12 )
죄의 육체로 태어난 인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일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사람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나라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새로운 생명, 새로운 본성, 새로운 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즉, 사람은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 외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고,
신생이라는 길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 안으로 들어갈 문이 전혀 없습니다.
거듭남이 없으면 절대로 구원이 없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천하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성령으로 인해 거듭나는 것 외에는
우리가 구원 얻을 수 있는 다른 길이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로 부패한 인간의 본성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2.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개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것은 모순적이며 믿을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오직 성령이 역사하시는 그 능력을 친히 맛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영혼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실체나 기능들을 아예 제거하거나
없애 버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거듭남이란 촛대를 부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촛대 위에 새로운 초를
세우는 것이고,
의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에 새로운 성향을 불어놓는 것입니다.
또한 거듭남이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이성, 그리고 이해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올곧아 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간 속에 있는 나쁜 조각들을 깎아 내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으십니다.
그래서 여전히 그 사람은 그대로 입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나 엄청나게 커서 그 영혼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으며 부활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전의 옷이 해져서 새 헝겊으로 꿰매는 것이 아니라
이전 것을 완전히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수선하는 것이 아니라 새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지 수선된 피조물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변화입니다.
거듭나게 되면 죄의 기질이 벗겨지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정서로 바뀝니다.
이전에 사랑했던 것들을 혐오하게 되고
이전에 혐오했던 것들을 이제는 사랑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그 분만을 바라 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싫증을 내곤 하였지만,
이제는 죄를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싫증이 납니다.
이전에는 죄와의 동침을 은근히 즐겼지만,
이제는 죄를 혐오하고 죄의 정욕과 욕심을 죽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늑대가 양이 되는 것과 같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심령이 새로워 지고 의지에는 고집스러움 대신에 부드러움이,
교만함 대신에 겸손함이 들어서게 됩니다.
마음과 행실에는 더러움 대신에 순결함이 들어서고 행실은 깨끗해 집니다.
성품은 그리스도를 닮게되고 마음은 청결하고 거룩해 집니다.
거듭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는 세상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 행합니다.
전에는 육체의 일들을 마음에 두었지만,
이제는 영을 좇는 자가 되어 영의 일들을 마음에 둡니다.
전에는 그리스도를 쓰레기 더미 옆에 놓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숨겨진 보화로 간주하고 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배설물처럼 여깁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이고 접붙힘된 자입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거듭난 자도 때로는 죄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본성이 죄를 거부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겨 나갑니다.
그리고 거듭난 자라고 완벽한 인간은 아닙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으로 새롭게 된 본성이 서로 거슬러 싸우며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는 달리 죄의 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본성과 성향과 언행을 늘 거룩함에 지향을 둡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이라고 부패함에서 완전한 순결로 껑충 뛰어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빛이 어둠을 쫓아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듯이
신적인 성품이 새로운 피조물 안에서 자라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날 때에 은혜의 모든 본질적인 요소들이 형성되지만,
그 이후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성숙되어 가야 합니다.
거듭남은 바로 성화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고 자신이 정말 성령으로 거듭났는지를 확인해 보십시요.
만일 거듭남을 확신하지 못하시면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고
거듭남에 대해서 최초로 말씀하신 예수님께 거듭남을 간절한 기도로 구하십시요.
예수님께서는 진심으로 거듭남을 구하는 사람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을 얻을 때까지 예수님으로 하여금 쉬지 못하시도록
끝까지 부르짖고 간구하십시요.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머지않아 예수님이 당신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잊지말것은 먼저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에게는 아무런 은혜도 베풀지 않으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고난은 인간들의 이기적인 자아, 교만을 꺽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고난은 나의 유익이라,
내가 고난을 통해 주의 율례를 배우나이다"
지금 심히 고난을 받고 계신분들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십시요.
하나님께서 님을 사랑하시어 고난을 통해 연단되어
정금같은 믿음의 소유자로 키워 마침내 구원하시기 위한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인지하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요.
그런 자가 또 쉬었다가 교회 나가면 다시 또 신앙고백을 시키고..
신앙고백이 구원의 근거라고 가르침 받았고 그렇게 알고 있었지요.
그럼 몇번이나 신앙고백하는 자들은 그렇게나 많이 구원받은 것이고
확실하게 구원받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드랬습니다,
아무도 낙망치 말고 거듭남을 소원하며 기도하도록 상세히
말씀하여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