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예수는 없다 질문5

조회 수 928 추천 수 17 2012.05.11 18:42:11
누차 말씀드렸고 또 바로 앞 답변에서도 언급했듯이, 제 설명 혹은 답변의 바탕이 되는 범주와 님께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바탕이 서로 조금 다르기에 제 답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내용의 질문 혹은 코멘트를 반복해서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의 핵심요지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 구원에는 삼 단계 칭의, 성화, 영화가 있는데  
- 칭의(구원, 영생, 중생, 회심, 첫 사랑, 예수 믿게 되는 것 등으로 표현됨)를 얻는 믿음은 하나님이 성령의 간섭으로 주시는 것이기에 온전함, 온전한 회심이 가능함
- 성화(첫사랑으로 되돌아가는 것,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 그리스도를 닮아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는 것 등)를 이루는 믿음은, 신자가 성령의 도움을 얻어 자기 책임 하에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므로 up & down 이 있을 수 있음, 믿음도 그렇고 성화가 이뤄진 수준도 그러함,
- 성경의 절대적 진리를 성경대로 이해하는 데는 내 생각(사상, 철학, 자화상, 선입관 등)은 전혀 무용(無用)함,
- 성화를 이뤄나갈 때는 자기 생각, 옛 본성, 죄, 시험 등이 작동하기에 때로는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등지고 세상과 사단을 쫓을 때도 있음, 그러니까 더더욱 예수 십자가 복음 안에 자신의 바뀐 신분과 그분과의 관계를 재확인하고(첫 사랑을 회복), 그 모든 방해와 싸워 이겨야 함,
- 현재 교회 안에는 온전한 회심 없이 단순히 교리에 지성적으로 동의하고 의지적으로 믿기로 결단하는 것으로(성령의 중생이 없이 순전히 인간의 노력에 의지한 것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
- 그리고 설교나 가르침에선 성경 진리와 전혀 다르지 않으나, 영적인 구원을 인간의 말로  표현하는 데에 따르는 한계임, 온전한 회심을 하지 않은 목회자와 신자들이 있을 수 있음, 이단도 말로는 예수님의 은혜를 믿어야만 구원 얻는다고 가르침, 온전한 회심은 성령의 역사 안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이뤄지므로 본인과 하나님 외에는 알지 못함,
  

이런 맥락에서 간단히 답 글 드리겠습니다.


1. 첫사랑이 많이 퇴색 되었을 때, 성령의 깨우침이 없을 때,  완전히 옛 본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죄를 범할 때(앞으로는 첫사랑이 퇴색되었을 때라고 간략하게 쓰겠습니다.)
1.1.우리가 첫사랑이 퇴색 되었다는 것 고백할 수있어야한다는 말입니다.
1.2. 나 같은 경우 첫사랑이 퇴색되었을 때가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않겠나 생각?) 훨씬 많아 그런 시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라고 위로하는 것은 마치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 “잘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죽기 살기로 해봐라”라고 충고하는 것처럼 부질없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 아주 예리한 지적입니다. 저부터도 첫 사랑이 퇴색될 때가 많다고 고백했듯이 모든 신자는 당연히 자신의 가난한 영적 실상을 발견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자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슬럼프에 빠진 선수라도 그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게 만드는 것은 결국 본인의 노력과 책임입니다. 본인이 주저앉아 있으면 주위 사람으로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단지 힘내어서 다시 일어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일단 일어서면 여러 방식으로 도와줄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또 주위 사람들이 권면 충고하는 의도와 내용 자체에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단지 그 태도와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때는 그러느니 차라리 죽어라고 역설적 방식도 동원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계속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두들겨 맞아야 정신 차릴 것이냐고 다그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이 주제는 성화를 이루는 방도에 관한 것으로 광범위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 과정을 간략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만, 신자의 성화는 불신자의 도덕적 수양과는 많이 다릅니다. 기독교 성화가 갖는 특성을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는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말하자면 다시 일어서 죄와 싸워나가는 힘을, 심지어 다시 서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것부터 성령의 도움과 인도를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싸워나가는 과정과 결과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까지 그 전부를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신념으로 죽기 살기로 해봐라”는 충고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2.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나의 신앙의 질문들은 나를 인도하셨던 권목사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분이 첫사랑이 잊어졌다면 그 목사님에게는 그런 말들이 무책임한 것이 아닌지 않느냐는 질문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돌아올까? 죽어서 돌아올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도 그 밑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도 너무 무책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그 목사님에게 들려줄 좋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텐데 그렇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고, 이 안타까움을 이겨낼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을 텐데 그것을 찾지 못해 또 안타깝다는 말입니다.


- 권목사님에게 대해선 개인적으로 알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계속 언급하시기에 원론적인 코멘트만 하겠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그 설교와 가르침만으로는 회심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님께서 판단하는 대로 이미 온전하게 가르치고 있다면 그분께 들려줄 좋은 하나님의 말씀은 따로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간섭이 그분에게 작용해야만, 정말로 그분이 이단이라면, 님이 갖고 계시는 안타까움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진짜로 이단이라면 더더욱 말씀으로 권면하는 것은 논쟁 밖에 안 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딛3:10)

- 성경의 진리를 지성적으로 동의하고 의지적으로 믿는 일과 성령이 간섭하여 온전한 회심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기독교가 도덕 내지 종교 수준에 머물게 되는 반면에, 후자는 생명마저 거는 절대적 진리가 됩니다. 후자의 경우 생명까지 거는 데는(성화의 완성) 시간이 걸리지만 최소한 자신의 존재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게 만드는 절대적 진리는 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님께서 그분이 안타깝게 여겨진다면, 구체적 이유는 저로선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저는 문제를 온전한 회심이 있을 수도 없는데 온전한 회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는 말입니다.(1. 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도 그런 뜻입니다.) 우리 인간은 온전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온전함에 영원불멸의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회심은 성령의 간섭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기에 온전한 회심이 가능합니다. 성화를 이루는 믿음은 다릅니다. 이 부분에서 자꾸 서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성경문답 사이트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주제의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4. 목사님의 말씀은 구원을 얻는 믿음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 것인가요? 구원을 받은 신자들은 마음의 상태에 따르지 않고도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내 존재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능력을 가진 절대적 진리가 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되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 마찬 가지로 회심으로 인도하는 믿음은, 재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되는 믿음, 인간의 존재를 거듭나게 하는 절대적 진리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데 “뿅”하고 믿음이 저절로 생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이 역사하여서 성경의 십자가 구원 진리가 온전히 이해되고 또 그대로 믿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믿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또 제 글에서 성화를 이루는 믿음(그래서 믿음에 대한 정의를 잘 내려야 한다고 했음)과 구원을 이루는 믿음을 구분하셔야 합니다. 전체 문맥의 뜻을 살피면 구원 얻을 때인지, 믿고 난 이후를 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글에서 성화를 이루는 일에 믿음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혹시 사용하더라도 꼭 “성령의 인도를 받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라는 구절을 덧붙입니다.


5.”세상 어떤 것도 그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첫 사랑의 의미)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면 이전처럼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이라면 그것은 온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온전하다는 뜻은 특히 회심이나 기독교적인 믿음에 관해서라면 그것은 영원 불멸이어야하지 않겠습까? (목사님의 글도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었는데) 그것은 자꾸 잊어버린다는 것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온전한 믿음이란 없지 않았나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 제가 믿음을 칭의, 성화, 영화를 나눠서 설명한 내용을 잘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구원 얻었을 때의 온전한 믿음에 대해서 조금 더 쉬운 비유를 들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항상 기본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 부자 관계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끊어질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버지가 싫고 미워질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싫어져도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그 믿음은 완전한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신자는 예수를 믿어 하나님과 그 자녀라는 세상 어느 것으로도 끊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그것을 기본적으로 믿고 있는 것에는 하등 하자가 없습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심어주시기에 더더욱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신분과 관계에 따른 온전한 믿음(구원 얻는 믿음)과, 사건과 행동에 따라 변하는 믿음(성화를 이뤄나가는 믿음)으로 구분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 그러나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사항들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거나, 알아도 자꾸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타종교는 인간이 열심히 선행과 공적을 쌓거나 희생과 수고를 바친 만큼 비례해서 복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언제 어디서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갈 수 있으며, 주님 또한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은혜와 권능을 베풉니다. 특별히 성령님을 내주시켜서 우리의 성품을 거룩하게 하고 또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인간이 자력으로만 거룩해지려 하거나 문제를 처리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를 믿고 나서도 성령이 내주하심을 잊고 기도나 말씀과 무관하게 자꾸 스스로 일을 처리하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혹시 하나님께 잘못하여 벌 받는 것은 아닌지, 또는 뭔가 종교적 행위를 바쳐서 복을 더 얻으려는 등의 생각과 행동으로 수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도덕적 죄를 짓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미 맺어진 관계는 불변해도 그분과의 일상적 교제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구원을 얻음에는 성령의 간섭으로 하나님이 완전한 믿음을 갖게 하시나, 그 후의 신앙생활에서 성화를 완전히 이룰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사도 바울, 베드로, 마르틴 루터, 존 칼빈 등등 역사상 어떤 믿음의 위인도 예외가 없습니다. 만약 성화를 이루는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가질 수 있다면, 오직 예수님만 그럴 수 있었듯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신입니다.  


6. “성화를 이루는 믿음은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는 고백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너무나 추하고 더러운 영적 실체를 정확히 대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 죄인 됨을 철두철미하게 자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의로만 용서 받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죄는 죽기까지 저주하는 그분의 십자가 공의 앞에 자기 존재가 완전히 깨어지고 부서지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죄인은 끝까지 용서하고 품어주는 그분의 십자가 사랑 앞에 자신을 완전히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나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완전히 믿게 되는 과정은 몰라도 믿고 난 후에 자신이 이미 예전의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은 본인은 알 수 있습니다. 영적 차원에서 자신이 거듭났기에 예수가 온전히 믿어졌다고 자신의 지정의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이제는 두 번 다시 이전의 죄 많고 헛된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이란 목사님의 글들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 위에 설명한 내용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7. 내 생각(사상 철학, 자화상)이 어디 있느냐는 뜻입니다.  내 생각은 단지 남의 생각을 배움의 역사였다고 , 배움 중에 제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 선택이 자신의 생각이고, 그 배움에 믿음이 있었다면 나의 생각은 믿음이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로 부터 왔다면 무엇이 내 생각인가라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나에게 목사님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질문하는 것만이 내 생각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는 뜻입니다.
7-1.“나아가 세상만사에 대한 생각도 서서히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바뀌어져 나갔고 지금도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다 완벽히 알면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우리가 아주 조금 밖에 알지 못해 생길 수 있는 간격(1.3)의 간격과 의미는 동일) 그것을 어찌하느냐는 문제가 우리 인간으로 시급하다는 뜻입니다.


- 누차 말씀드리지만 성경의 진리를 성경이 말하는바 그대로 이해하는 데는 반드시 성령의 간섭과 조명이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성경공부를 하는 중에 성령이 역사하면 성경이 열리며 구원을 얻는 그런 믿음이 생길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그전까지의 자신의 생각과 믿음은 무용지물이라는 뜻은 우선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의식할 수 없어도 성령이 인간의 영에 작용해야만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또 거듭나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회심이란 도덕적 죄와 잘못된 습관 등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죄에 찌들며 무지하고 무능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두 손과 발을 다 들고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런 거듭나는 회심은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전까지 갖고 있던 불완전하고 죄에 찌든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온전한 회심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 그렇지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령이 심어주는 믿음도 인간의 사고활동이라는 경로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반면에 영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차원은 인간 이성으로는 구체적으로 모르니까 믿어지고 난 이후에 자기 생각으로 믿은 것 같이 여겨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를 믿기 전에 이미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진리 그대로 생각하거나 알고 있었다면 그 생각으로 믿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믿고 난 이후에 보니까 그 전의 자기 생각, 믿음, 선입관 등이 성경과 전혀 다르고 반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그것들이 무용지물이었다고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주님을 따르며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는 데도 오직 성경 말씀에 따라서이지 그 전의 생각은 아무 효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 세상만사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뀌어져 나간다는 말은, 신관(神觀) 인간관, 기독론, 창조론, 죄론(罪論), 구원관, 종말관은 물론 그런 영적 인식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인생관 세계관 역사관 종교관 도덕관 문화관 등등이 성경이 말하고 가르치는 바대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 것은 그중에도 우선 영적 인식에 관한 것입니다. 바뀌는 중이라는 것은 실생활에 적용하는 후자에 관한 것인데, 실은 그것도 그 기본적인 뼈대는 이미 바뀌어졌으나 특정 케이스마다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만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교회가 시급히 가르쳐야 할 또 다른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또 잘 믿으면 문제나 상처가 해결된다는 것에 주력할 것이 아닙니다. 온전한 회심에 의한 구원과 또 그렇게 회심한 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회심이란 바로 모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며, 성화는 그 바뀐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가치관의 관계는 물론 지적하신대로 그 둘 사이의 간격을 잘 이해하고 매워서 실현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저야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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