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예수는 없다 질문8

조회 수 602 추천 수 14 2012.06.03 17:54:35
박 광태님

한참 뜸해서 이젠 납득이 되셨나보다 여기면서도, 다른 한 편 틀림없이 또 질문하실 텐데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가 이미 님과 거의 동일한 뜻으로 다 말씀드렸는데 미처 그런 점을 확인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1. 구원의 3 단계를 믿음의 단계로 대치하신 것에 대해서 의문이 먼저 생깁니다. 구원의 3단계는 믿음의 대상이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확고한 신뢰를 사람들은 쉽게 버리지도  쉽게 잊지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잊었다면 더 다른 신뢰가 생겼다는 뜻이 되지요.

1-1. 어쩌면 믿음은 칭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화는 믿음이라기보다는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맞은 말인 것 같습니다.

************

구원의 삼 단계를 믿음과 동의어로 대치한 적은 없습니다. “이 세 단계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서부터 평생 동안 걸어 가야할 믿음의 여정입니다.”라고 단서를 붙였습니다. 제가 “믿음의 여정”이라고 말한 의미나, 님께서 “믿음의 대상이지 믿음이 아니라”고 말한 뜻이 같은, 최소한 유사한 것 아닙니까?

“어떤 대상에 대한 확고한 신뢰는 쉽게 버리지도 쉽게 잊지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님의 말씀은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저도 하나님이 존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를 구원해주었고 그분 앞에 항복했다는 절대적 믿음(회심 때의 믿음)은 절대로 쉽게 버리지도 잊지도 못한다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회심 후에 성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는 주님의 권능과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고 엄청난 것이지, 또 그분 안에서의 나의 특권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자칫 잊어버리고 자기 속에 남아 있는 자기중심주의에 흔들려 때로는 잘못을 범한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돈과 세상이 하나님보다 더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리라는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님의 말씀대로 더 다른 신뢰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순간적, 일시적, 때때로”입니다. 지금껏 그런 오해를 하지 않도록 이런 표현들을 덧붙여서 강조해 왔습니다.  

지금 님께서는 믿음의 사전적 정의만, 그것도 아주 단편적인 차원에서만 논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전적 정의로는 님의 말씀에 틀린 것이 없습니다. 반면에 제 답변은 예수를 모르는 죄인의 너무나 가난한 영적 실상과, 구원 후 신자의 영적 성숙 과정에서의 연약함에 대한 구체적 논의입니다. 지금 믿음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논의하는 계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또 님의 정의나, 사전적 정의대로만 믿음 생활을 하는 그런 완벽한 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저부터도 그럴 수 없으니까 지금 이런 답변을 드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님께서도 저의 의견을 귀담아 듣거나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2.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회심이란 바로 모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며, 성화는 그 바뀐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 하나만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2-1 가치관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잊어지거나 무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항상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게 되지요. 가치관을 잊는 듯한 행동을 했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했다면 그것은 그 가치관을 진정으로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혹은 바뀐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2. 회심의 정의가 바로 모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는 부인할 당시는 회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단지 회심을 일부 가치관 혹은 일부 중요한 가치관이 바뀌는 것으로 하면 그때 베드로가 회심했었다고 우리는 할 수 있지만.

2-3. 우리는 진정 우리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삽니다. 그냥 인위적인 가치관에도 당연히 그것에 따라 살지요, 야쿠자는 의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군인은 나라을 지키는 일에 목숨을 바치고, 소방관은 소방관의 가치관을 위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들지요.

2-4. 따라서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성화라면 성화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이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성화는 오히려 올바르게 가치관의 확립해 나가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가치관이 아니라 일부 중요한 가치관,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가치관을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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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성화를 이뤄나갈 때 자신의 도덕적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전에 성령의 인도와 간섭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온전히 회복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바로 요한일서1:5-10에서 말하는 신자가 믿은 후에 행하는 영적 도덕적 회개인 것입니다. 성화란 그래서 자신의 성품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거룩하게 가꾸는 일입니다. 원죄로 훼손된 양심도 성경이 말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의 기준에 맞추어 수정 작업을 해야 합니다. 가치관, 인생관등을 바꾸는 것인데 그것들이 바로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기에 질문하신 의미로 따지면 양심입니다.  

성화(Sanctification) - 죄의 힘에서 자유케 되는 과정(Free from the Power of Sin);
신분적으로는 이미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가 되었지만 실제로 그분의 자녀답게 성품을 거룩하게 바꾸며, 양심을 하나님의 형상에 맞게끔 회복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며, 윤리적 죄와도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그분의 일을 수행하려고. 일생 동안 계속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그전까지 불완전했던 양심을 성령의 간섭으로 절대적 의의 기준에 맞게 바꾸어 나가야 하고 또 그 바뀌고 있는 양심에 따라 거룩해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상기의 제 글을 다시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아래 두 문장을 보십시오. 님의 의견과 크게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이젠 저조차 헷갈립니다.  

“가치관, 인생관등을 바꾸는 것인데 그것들이 바로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기에 질문하신 의미로 따지면 양심입니다.  ...... 그전까지 불완전했던 양심을 성령의 간섭으로 절대적 의의 기준에 맞게 바꾸어 나가야 하고 또 그 바뀌고 있는 양심에 따라 거룩해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에 대해선 두 가지 사건으로 잘 구분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세 번 부인했을 때는 엄밀히 말해 주님이 주시는 구원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지만 베드로 측에서의 완전한 회심은 아직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부인 후에 통곡하면서 자신의 너무나 가난한 영적 실체를 깨닫게 되고 또 오순절날 성령세례를 받음으로써 칭의의 구원인 일회성 회심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회심은 완전합니다.  

반면에 제 답변에서 예를 든 갈라디아서 2:11-14절의 경우는 성화의 단계에서 예수 안에서 누리는 특권을 잠시 잊고 사람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이미 복음 안에 완전히 들어온 그로선 이전의 유대교를 믿던 시절과는 달리 이방인과 마음 놓고 식사교제를 할 자유를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부분에 자유하지 못한 유대인 할례자들이 오자 그들이 혹시 자기를 견책할까 순간적으로 두려워져 급히 그 교제를 중지한 것입니다. 베드로 같은 사도마저 성화에서 십자가 복음의 권능과 은혜를 때로 잊을 수 있다는 예입니다. 솔직히 지금 여덟 번째 같은 뜻의 말씀을 계속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제가 계속해서 제 글은 물론 성경을 읽을 때에 칭의와 성화 중에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6/3/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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