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뒤 안재고 횡설이 수설이

조회 수 418 추천 수 14 2013.04.11 07:31:34


당연하다 여기는 기준 자체가 주관적이될 수 밖에 없는 시간을 버티고 있는 요즘 사람으로서 나는 곧 머지 않아 촌스러움을 넘어 혐오스러운 사람이 되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건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나는 당연히 욕먹는 것이 싫다. 날 때부터 생래적으로 ‘그냥’ 좋거나 싫은 마음도 이놈의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검증이 될까 말까 하는 세상을 살면서 이런 나의 촌스러움은 곧 머지 않아 글로벌시민이 될 기준이 될 자격미달은 물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조차도 무시하는 막되먹음을 대표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예수를 믿든지 말든지 너가 좋으면 그냥 너나 믿지 왜 강요를 하느냐. 그래. 강요라고 느끼는 시점이 다르다. ‘내’가 ‘강요’라고 느끼면 그것도 폭력이겠지. 나도 그렇게 ‘일반적인’ 기준에서 딱히 샤방샤뱡 호감의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은 아니고 더군다나 예수 믿기 전에도 자의로 그걸 선택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한 사람으로서 단지 내 바운더리를 넘어와 ‘전한다’는 것만으로도 심히 불쾌할 때가 있기는 하다. 내가 먼저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애써서 손에 쥐어주고 가는 심리가 궁금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전자를 나도 좀 또라이 ‘끼’가 다분하니까 그런면에서 너를 이해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람이 사실은 그토록 꿈꾸는 ‘휴머니즘’ 자체를 처음부터 그런걸 믿지도 바라지도 않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그냥 그걸 말하고 싶다. 휴머니즘을 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마치 미스코리아 후보 둘을 남겨두고 아나운서가 그 둘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볼 때 옆에 있는 언니가 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뭐 그런 심정이라고 해야하나…



옆자리에 있는 짝이 재수가 없다. 위층에 새로 이사온 개념없는 부부를 견디기가 힘들다. 어제 오늘 매일 다른 상사를 죽이고 싶다. 이번에 같이 과제하기로 한 조 멤버가 진짜 좀 아니야. 왜 우리 애는 한 번 말을 해서 들어먹는 법이 없지. 아버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몰라. 나는 그냥 돈이나 벌어 오는 사람이지 이 집에 내가 있을 곳은 없어.



막연하게 나마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답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그런 것이 미덕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고 있는 듯 하다(이런 애매한표현까지도 자기검열을 해야할 때가 올것이다).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해야할 지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극히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곳에서 살고 있거든. 부정한다면 그 즉시 자기 부정이 될것이고 긍정한다면 다문화정책이 가져다 준 많은 착오와 폐해들을 묵인하면서라도 해내지 않으면 안될 긍정적인 요소들을 말해야 하는 거고. 문제는 이런 큼지막한 선택들은 잠시나마 미룬다고 하더라도 앞에 이야기한 잔잔한 문제들을 감당조차 하지도 못하는 나의 신세가 곧 너의 신세라는 걸 의외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극히 일상적인 만남안에서의 문제들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전우주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찢고 까부냐. 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난 단지 다수를 만족하기 위해서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도 소수를 존중하기 위해서 다수의 의견을 뭉개는 것도 완전한 답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있어. 이 문제에 답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여기 이 세상에서 뭔가 끝장을 보겠노라고 하는 사람뿐이다. 지금 여기에서 유토피아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모두가 다함께 둥글게 둥글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 베이비파우더 냄새 나는 따뜻하고 물기어린 소망조차 없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견디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하고. 그러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소망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에서는 그걸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의지를 가지고서 ‘약간’ 모자라지만 그래도 당장은 나한테 직접적인 해는 안주고 밥은 먹여주고 잠은 재워주는 지금의 시스템에 감사해하며 살아야 한다. 여기가 끝이라면.



그런데 나는 이 세상에서 끝장을 낼만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본전을 찾을만한 꺼리를 찾지못했다. 찾으려고 했었는데, 그래야 살아갈 맛이 나고 그랬었는데, 내가 그 이유를 가지고 목표와 방향을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자괴감은 어떻게 할것인가. 그 목표가 너무나 기특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 그래서 나는 애써서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이루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지 않기로 했다. 내가 굳이 삼포세대(연애 취업 결혼)라서 그런건 아니다. 그렇다고 없는 겸손을 다 긁어 모아다가 ‘그래도 이정도면 감사해야죠’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아서 이게 내 삶의 이유고 목적이니까 이거 다 해결할때까지 나 데리러 오지 마세요라고 할 수 있는 권리도 없다. 내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끝이 아닐 수도 있고 아 좀 더 남았나 싶을 때 하나님은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니까.



미래를 약속하고 싶지 않다. 약속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나는 내일도 불신앙 할 테니까. 그럴바에는 차라리 오늘 이를 악물고 ‘네 알겠습니다’ 해보려고 노력할테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촌스럽다 못해 막돼먹은 사람이 되어가겠지. 미안해요. 거절당해보지 않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것은 꿈같다고 치더라도 적어도 글로벌 시민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안돼요. 안되는 걸요. 왜냐하면 저는 저랑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나 아닌 타인을 견디지를 못해요. 그렇지 않나요? 다 같이 먹는 고민 친구고민 연애 고민 사랑고민… 다 똑같은 고민을 하는데도 그런데도 옆자리의 누군가를 우린 견딜 수가 없잖아요. 단지 내가 그어놓은 금을 건너려고 한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래서 함부로 내가 전혀 만나보지도 못한 어떤 사람들의 아픔을 안다(know), 이해한다(understand), 사랑한다(love)라고 할 수가 없어요. 거짓말이잖아요.



모든 인간안에 숨겨진 어떤 눈사람이 나 대신 눈물을 흘려주어서 그 사람들을 동정할 수도 있다고 믿고는 싶어요.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습디다. 앎(know)이 곧 이해(understand)로, 이해가 사랑(love)을 반드시 수반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아버지가 나를 나로 온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사랑한다고 하는 걸 믿어보려고요. 알지 못해도 사랑하는 법은 있구나. 물론 이걸 진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잘 모르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사춘기 여자애가 연예인 오빠를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과 별 차이 없으니까요. 사랑은 그렇게 ‘막연하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타인을 온전히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나도 우리 엄마 아버지 머리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타인에게 나의 바램을 그대로 요구한다는건, 나의 필요만을 알아달라는 건, 비겁하잖아요. 역으로 누구보다도 나의 결핍을 잘 ‘알고 또 이해할 수 있었던’ 타인이 그저 방관만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압니다. 정말, 잘, 안다고, 말은 하는데, 내가 헉헉댈적에 어디가 있는지 보이지를 않더라고요.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 ‘아는데’ 그냥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별 차이 없더라고요.



몰라도 사랑할 수 있다라는 걸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상대를 잘 ‘아는’만큼 우리는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틀린말이 아니니까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방법을 알더라도 그걸 온전히 해낼 수는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거였어요. 마음은 원하지만 결코 온전히 다 이룰 수 없다고. 그럼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가루가 되도록 비판받아야 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동물은 그저 환경에 순응하고 질문할 이유도 필요도 갖지 않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흠없는 다이아몬드를 동경하는 것처럼 인간은 어떠한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게 하는 마스터 키를 원하는건 당연해요. 좀 더 나은 것을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죄받을만한 마음은 아니에요. 사실은 약간 모자란듯하지만 그래도 좀 더 나은 것을 통해서라도 ‘진짜’를 보기 원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갖는 욕구 아닌가요.



저는 아직도 제대로 겪어보지도, 꿈꿔보지도 못했지만 적어도 성경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놀랍게도 ‘이 땅에서’ 지극히 유한한 인간을 통해서요. 너무 꿈같기도 하고 허무맹랑한거 같아서 지금도 살짝 불신앙이 드는데 적어도 여러분들도 원하는 조건인 ‘지금 여기’에서 천국이 실현될 수 있다고 하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저도 좀 놀랍긴 합니다. 그럼 그렇게 말씀들 하시겠죠. 너는 임마 니가 믿지도 않는 걸 우리한테 강요하는 거냐. 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별 어려움이 없으신 것처럼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진짜 천국이 있는지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기회를 주세요. 좀 모자란듯 하지만 진짜를 추구하는 사람을 통해서 ‘진짜를’ 볼 수 있게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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