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범죄는 인간 최고의 의로움이다.

창세기 강해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살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7)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정체


마라린 몬로인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미국의 글래머 여배우가 나이든 아윈슈타인에게 우리 둘이 결혼을 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인즉 당신의 뛰어난 머리와 나의 건강하고 매력적인 육체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윈슈타인은 혹시 당신의 멍청한 머리에 내 볼 품 없는 몸을 갖고 태어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아윈슈타인의 그런 염려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금년 초 근유수축으로 몸이 완전히 굳어지는 불치병을 앓는 러시아 환자가 교통사고처럼 급사한 건강한 자의 몸에 자기 머리만 이식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수술을 맡을 의사도 자원했다. 얼굴 모양만 이식해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오래 전 영화에도 나온 Face Off는 벌써 성공했기에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의료계에서도 성공가능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예측했다. 성공이 되면 엄청난 윤리적 종교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는 엄청나다. 인간의 지성은 무궁무진한 것 같다. 나폴레옹이 큰소리만 치다 실패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로 “인간의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는” 시대의 문턱에 다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너무나 어리석은 존재다. 육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지식의 양은 방대하게 증가 발전했다. 그러나 그런 지식을 실제 자기 삶에 적용하여 그 인생의 의미와 가치와 보람을 늘리는 측면은 오히려 답보 내지 후퇴하고 있다. 주변의 모든 이에게 물어보라. 살기 좋아졌는가? 혹은 정말 살아갈만한 인생인가? 그 답은 십중팔구 ‘No’일 것이다.


우선 어떤 인간도 출생과 죽음을 즉, 자기 인생의 시작과 끝을 자의로 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수명이라도 연장하려 든다. 이간은 존재론적으로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에 영생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영생은 인간의 궁극적 소망이며 머리를 이식하려는 시도도 그런 몸부림의 하나다.


그러나 뇌 또한 육체장기이므로 늙기 마련이다. 최근에 사람의 생각, 말, 행동을 유발하는 뇌파에 사람마다 특유의 패턴이 있다고 보고 세심히 관찰 분석하고 있다. 그 패턴을 컴퓨터로 프로그램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형화된 뇌파는 결국 그 사람의 정체성이자 실체가 된다. 또 그것으로 다른 사람의 뇌에 이식해 조정하면 자기 육신은 썩어 없어져도 자신의 실체인 뇌의 내면은 이 땅의 다른 사람을 육신을 통해 영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예수님의 재림 때에 목이 베인 영혼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계20:4) 초대교회로부터 최근 IS 대원들에게 참수당한 것처럼 재림 때까지 순교당한 신자들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인간 두뇌를 완전히 장악하여 통치할 것임을 예표 한 것 같아 끔찍하기만 하다.


핑계 없는 무덤 하나 없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무슨 뜻인가? 어느 누구도 자기 계획과 뜻대로 인생을 산 자가 없다는 것이다. 간혹 소원을 성취한 자라도 완전히 흡족하지 못했거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살았고 의외의 결말을 맛본다.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에 내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을 때의 모습이 내 실체가 아니니 오해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또 무엇인가? 한두 번의 판단착오 때문인가? 결코 아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부터 자기 의사와 소원과는 다르게 흘러간 것이다. 심지어 내 의지와 감정도 마음대로 절제하지 못했다. 지성과 이성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야 같은 인생길에 쉴 새 없이 닥치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 미로를 헤맸기 때문이다.


모든 이가 평생을 두고도 내가 나를 모른다. 남들이 나를 판단하는 것이 더 정확할 때가 많다. 스스로 자기를 통제는커녕 제대로 알지도 못하니 그런 내가 짜증스럽고 싫다. 거기다 쾌락과 죄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가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에 대해 심한 분모마저 치밀어 오른다. 나 자신을 아예 부인하고 싶다.


이런 증상은 Face Off로 변장을 하든, 머리를 이식해서 다른 사람이 되던, 뇌파 프로그램으로 내 정체성을 영원히 이 땅에 살아있게 하든 절대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의 실상이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것을 넘어서 자기를 싫어하고 분노하고 부인하고 싶은 정도인데 아무리 편안하고 풍족하게 장수한들 그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 불행하고 안타까운 점은 이런 인생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증상을 모르거나 알아도 짐짓 무시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급속히 진화하다 보면 신의 경지에 오르리라는 헛꿈만 꾸고 있다. 인간이 더더욱 어리석은 것은 인간끼리, 또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으며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바로 본문의 선악과 금령이 말하는 바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함께 거했다는 성경기록을 허무맹랑한 픽션이라고 비아냥거린 사람들은 본문에도 동일한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과일을 먹었다고 완전히 타락한 죄인으로 정죄하여 낙원에서 쫓아내는 하나님은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 그 후손들 모두를 멸망 받을 진노의 자녀로 간주하는 것은 공산당 연좌제보다 더 심하다고 한다.


그것도 동산 중앙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나무를 두었으니 아담으로선 얼마나 따먹고 싶었겠느냐는 것이다. 인간 범죄의 원인과 여건을 하나님이 제공했다고 따진다. 병 주고 약 주는 식으로 인간을 죄인으로 옭아맨 후에 선행 한 번 하지 않고도 로마의 한 십자가 사형수를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준다고 하니 이런 엉터리 같은 하나님과 종교도 없다고 반발한다.


저도 불신자 시절에 전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비난을 퍼부었다. 언뜻 아주 합리적인 비평 같다. 본문은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니다. 그렇게 반발하는 사람더러 네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네 자신부터 되돌아보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뜻이다.


완전 무료로 사용하는 미국교회 주차장


한 미국교회가 성장하여 주차장 스페이스가 많이 모자랐다. 이웃 오피스 빌딩의 주인이 보다 못해 주일은 사무실이 다 문을 닫으니 자기 주차장을 공짜로 사용하라고 허락해주었다. 단 1월 첫 주만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 회사가 시무식이나 신년파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 년 52주 내내 무료로 사용하면 주차장 주인이 따로 있는 줄 모르고 처음부터 자기 교회 주차장인줄 착각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일 년에 한번이라도 사용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주인이 따로 있음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무료로 사용한 것에 대해 감사까지는 몰라도 빌려 쓴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주신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다.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임의로 따먹을 수 있게 한 것은 주차장을 일 년 51주 무료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는 것은 일 년 첫 주만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주차장 주인이 따로 있음을 알라는 것이다. 아담더러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고 삶의 터전과 일용할 양식을 다 마련해주셨음을 선악과를 볼 때마다 감사하라는 것이다. 최소한 그런 인식을, 아니 잊지는 말라는 것이다.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것도 따먹고 싶도록 유혹한 것이 아니다. 담 넘어 뻗친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홍시를 동네 개구쟁이들이 따먹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벌을 주는 심술궂은 할아버지 같은 하나님이 아니다. 동산 어디에서나 언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라는 뜻이다.


자연 속에 드러난 하나님 그분의 신성한 능력은 도무지 부인하려야 할 수 없다. 그 은혜를 얼마나 충만한지 알면 그분을 경배 찬양 감사할 수밖에 없다. 선악과는 “할렐루야! 영원히 찬송 받을 이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큰 글씨로 쓴 배너를 동산중앙에 걸어놓은 셈이다.


인간은 이 땅의 모든 것을 임의로 사용하고 처분할 권리와 자유를 위임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과 권세와 영광인가? 인간은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경배, 찬양, 감사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딱 하나 동산 중앙에 걸려 있는 여호와의 이름표만은 떼어내지 말라고 했다.


이런 선악과의 뜻이 어째서 황당무계한가? 이만큼 모든 인간에게 이 땅에 존재해야만 하는 소망과 능력과 근거를 밝혀주는 진리가 또 어디 있는가? 하나님의 실존을 부인 의심하는 즉, 진화를 믿는 자들에게만 본문이 엉터리로 여겨진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이 진리를 믿지 않아서 어리석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부인 거역한다면 그분의 역사에 대해 이런 저런 탓할 필요도 이유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는 것이 자기 시간의 낭비임을 모르는 것이 더 어리석을 뿐이다.


비유를 하자면 어떤 가정이 저녁 식사 후에 꼭 한 시간씩 가족끼리 대화시간을 갖는 것을 두고 다른 이들이 아이들 쉬거나 공부할 시간을 빼앗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평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만약 아이들이나 부모 모두가 하루 종일 가장 소중하고 유익한 시간이기에 다른 일을 못해도 꼭 그 시간을 갖고 싶다면 더더욱 그렇다. 본문의 단계에선 아담이 타락하기 전이라 선악과를 통해 그가 하나님을 묵상하고 교제하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또 바로 그런 충만한 기쁨에 오늘날의 신자도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본문의 뜻이다.


아무 전제 없이 창조를 선포하는 이유


성경은 맨 서두(창1:1)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사전에 어떤 전제나 배경에 대한 논리적 서술이 전혀 없이 곧바로 선포하고 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내가 너를 지었다라고 큰 글씨의 배너를 모든 인간 앞에 내건 것이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라면 당연히 천지를 사랑하신다. 자식을 낳자마자 부모는 끔찍이 사랑한다. 세상 어느 것도 그 사랑을 끊지 못한다. 자식이 연쇄 살인범이 되어서 내일 모레 사형을 기다리고 있어도 그렇다. 비록 자식을 잘못 키워서 기쁨과 자랑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슬픔과 회오만 넘쳐도 그 사랑에는 절대 변화가 없다. 더 애처롭기만 하다.


창세기 1:1의 선포는 그것과도 도무지 비교가 안 되는 사랑으로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셨기에 그 후로도 그런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 특별히 인간을 붙드실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창세기 1:2 이후로는 그런 확고한 인식을 가진 자만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고 누리며 그에 온당히 반응하겠다는 자만이, 최소한 그런 사랑을 알기를 원하는 자만 읽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큰 사랑만으로 해석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고 끝까지 닫힌 책이 된다. 성경을 아무리 통독해도 기독교적인 지식은 늘어도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은 털끝만큼도 누리기는커녕 알지도 못한다. 불신자들이 본문을 필두로 성경 기록을 자기 생각에 따라 섣불리 따지려 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


선악과 금령을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신자들 말대로 얼토당토 않는 기록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아담과 이브가 폭행, 강도, 사기, 간음은 물론 거짓말 같은 윤리적 잘못을 단 하나도 범하지 않았다. 인간끼리 먹을 것을 사이좋게 나눠 먹은 것으로 너무나 선한 일이다. 성경을 부인하는 오늘날의 불신자들이 인간끼리 서로 섬겨서 인류복지를 향상하자는 것과 같은 뜻이며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고 아주 의롭기까지 하다.


만약에 에덴동산에 주인이 따로 있다면 선악과를 따먹은 것만큼 엄청난 죄는 없다. 주차장을 일 년 내내 무료로 사용을 허가해주면서 단 한주만 사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조차 위반하면 주인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주인이 아예 없는 셈 친 것이다. 새로 오는 교인들은 그 주차장이 당연히 자기교회 소유인줄 알게 된다.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 같이 세상은 인간의 것,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라고 믿게 착각하고 또 그런 바탕에서 사는 것이 선이라고 믿게 된 것, 바로 그것이 원죄다.


자식이 가장 섭섭한 때는?


부모가 자식들이 가장 섭섭한 때가 언제인가? 쉽게 말해 사형수로 감옥에 가있는 자식과 다른 부모와 비교해서 아버지가 내게 해준 것이 무엇 있느냐고 대드는 자식 둘 중에 누가 더 밉겠는가? 두말 할 것 없이 후자다. 부모가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자식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자식이 어리석어 몰라줄 때는 더더욱 섭섭하다. 자식이 사형수가 되었다고 부모와 자식 관계에 금이 가지 않는다. 대기업 간부가 되어서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떵떵거리며 살면서 일 년 52주 중에 그 첫 주인 설날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이야말로 최고로 섭섭하다.


모든 인간이 너무 어리석다는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이다. 인간의 부모에게는 예를 든 그런 패륜적 행위를 하는 자식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그런 부모를 주시고, 또 그 분들의 부모를 주신 궁극적인 부모는 전혀 안중에 없다.


본문에 대해 비난 반발하는 것이 단순히 기독교 교인이 되고 싶지 않다든지, 창조와 진화 중에 진화가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불신자들이 의식적으로 실감은 하지 못해도 극단적인 패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진짜 궁극적 부모인 하나님에게 아무 주저 없이 기꺼이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실재하면 이는 마땅히 지옥에 가야할 죄다.


성경의 선악과 금령은 하나님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는 기독교 고유의 황당무계하고 독선적인 계명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이 땅에 기독교라는 종교왕국을 건설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그 앎에 걸맞게 반응하며 사는 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 한다. 연쇄살인범이라도 자식을 끝까지 품어주는 인간부모의 사랑과는 비교도 못하는 사랑의 왕국을 말이다.


본문의 일차적인 뜻은 신자로, 아니 모든 인간으로 정말로 이 땅이 주인이 인간인지, 네 인생의 주인인지 너인지, 죽을 때에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변명을 정말로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따져보라는 것이다. 짐승과 달리 이성을 가진 논리적이고 똑똑한 존재라고 자부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먼저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이라는 것이다. 이 첫 질문조차 대답하지 않는 자는 그 인생을 전혀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해 네 인생은 정말로 우연에서 시작해서 우연으로 끝낼 것인가 묻는 것이다. 그럼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전 평생을 오직 우연 위에만 걸었기에 허공을 치고 향방 없는 달음질로만 끝난다는 것이다.


선악과의 더 심각한 의미?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 진짜로 더 심각한 의미를 지닌 질문들을 던진다. 하나님이 선악과 금령을 주신 이유, 의미, 결과를 제대로 알고 있느냐? 지금 현재 네 인생의 주인이 정말로 네가 아니고 따로 있느냐? 그럼 그 주인을 정말로 주인답게 모시고 있는가?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순 일을 하든 그 주인에게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느냐?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 바로 자기를 위해 죽으셨고 그 은혜 안에서 자기됨을 찾았기에 이제는 오직 예수를 위해서 살겠다고 했다.(고후50:15) 모든 신자가 그래야 한다. 하나님은 신자더러 바울처럼 선교사가 되라는 거창한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자마자 선악과 금령을 주신 그 뜻 안에서만 살라는 것이다.


창조주를 믿는 신앙이 단순히 우리 실존이 창조에 근거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를 하려면 사전에 완벽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또 그 계획은 궁극적으로 선하고 영광스런 종착점이 예비되어 있음을 함의한다. 당연히 그 계획인 출발과 그 완성인 끝을 잊는 방향과 일정은 그분의 일관되고도 거룩한 통치 아래 있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뿐 아니라 신자 개개인의 일생 또한 충분히 세밀하게 그렇다. 성령으로 거듭날 때에 그전까지 주인인 사탄, 더 정확하게는 자기는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을 새 주인으로 모셨다. 신자의 입장에선 평생토록 나를 대신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신자의 주인이 된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신자의 일생은 사실은 주님이 일관되고 완벽한 계획을 갖고 내 안에서 사는 셈이지 않는가?


만약에 이런 확신과 반응이 없다면 무시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끄심 앞에 자기를 모두 비우고 완전히 내어드려야 한다. 아주 적은 일에서부터 그분께 한 걸음씩만 순종해보라. 그럼 반드시 그분의 내 인생에 대한 방향과 뜻을 알 수 있다.


이 세태가 아무리 죄로 타락해가도, 자연재앙이 도처에서 불시에 일어나도, 메르스 같은 역병이 창궐해도,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가 페이스오프나 머리이식이나 뇌파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조종하는 일이 닥칠지라도, 궁극적 승리는 오직 예수 십자가 안에서 이미 달성되었다. 예수가 진짜로 주인인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는가?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라. 어떻게 이 땅을 창조하셨는가? 선악과 금령의 깊고도 풍성한 의미를 제대로 살펴보라.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 이뤄진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그 출발도 그 종말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진리와 생명에 의해서만 이끌어진다.


선악과 금령은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던지, 심지어 허물과 죄에 빠져있더라도 예수 십자가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 십자가가 무슨 뜻인가? 다른 모든 죄는 다 용서해주어도 하나님이 사랑의 주인 되심을 모르는 죄는 용서 못한다는 것 아닌가? 신자가 되었다는 것도 무슨 뜻인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 즉, 그 사랑의 하나님을 다시 주인으로 모심으로써 그분의 심히 기뻐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아닌가? 하나님은 신자가 언제 어디서나 예수 십자가 앞에 겸손히 무릎 꿇으면 기쁨에 겨워서 노래를 부르신다는 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바다.


6/2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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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보다 못한 목사(출애굽기강해#27-출12:29-36)

“가룟 유다보다 못한 목사” 출애굽기 강해 (27)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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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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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은? (출애굽기강해#2-출1:8-14)

새해에 세계가 흘러가는 방향은? 출애굽기강해(2)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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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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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0:15-20) 교회에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가?

(신30:15-20) 교회에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가? 성경 바로 알기 시리즈 (3)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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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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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4:7-12) 하나님이 아는 신자와 모르는 신자

(룻4:7-12) 하나님이 아는 신자와 모르는 신자 룻기 강해 (12)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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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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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1:1-4)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1]

(학1:1-4)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2021 신년주일 설교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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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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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1:1-3) 그래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2]

(욘1:1-3) 그래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요나서 강해 (2)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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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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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26-31) 신자인지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

(눅16:26-31) 신자인지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 돌아온 탕자 시리즈 (1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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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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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14-18) 목사와 교인이 함께 망하는 지름길

(눅16:14-18) 목사와 교인이 함께 망하는 지름길 돌아온 탕자 시리즈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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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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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하나님의 신호등을 무지개색으로 바꿔라.(민수기강해#6-민9:15-20)

(민9:15-20) 올해는 하나님의 신호등을 무지개색으로 바꿔라. 구약성경 강해 (16) / 민수기 강해 (6)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어되 항상 그러하여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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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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