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고린도 전서 13장과 14장에서 말하는 예언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하고 또 기도할 때 어떻게 사모해야하는지요?

 

[답변]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14:1-5, 개역개정)

 

예언의 은사란?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쉽게 생각하듯이 장래 일을 미리 알아맞히듯이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헬라 원어인 ‘프로페테이아’는 성령의 영감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아 다른 이에게 경고 권면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은 인간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쪽에서 먼저 펼쳐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여러 번 비유했지만 어린아이는 힘이 모자라 아빠가 움켜쥔 손바닥 안에 무엇이 있는지 열어서 알 재간이 없기에 아빠가 손바닥을 펼쳐서 보여주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도 이런 관계인데 하나님 쪽에서 먼저 열어 보이는 것을 계시라고 하며, 그러려면 인간에게 반드시 성령의 영감이 작용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 깨우치는 인본주의적 가르침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예언이 될 수 없습니다.

 

예언의 뜻을 구체적으로 풀이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고전13:2) “예언하는 능”을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아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밀과 지식은 당연히 하나님 쪽에서 주도적으로 행하는 계시로만 알 수 있는 그분의 비밀과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가운데는 장래 일에 대한 경고도 일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 특별히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간혹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성령의 영감으로 장래 일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육하원칙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시기와 방식까지 다 알 수 있는 미래 예측은 없었습니다. 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원칙만 밝히는 차원이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구약선지자들의 예언은 “너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따라간 죄를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방대적의 침공이란 방식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일관된 내용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예언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요한사도가 책으로 남겨 놓은 요한계시록만 해도 “언제 어디 누구 어떻게 왜 무엇이”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상황을 전체적으로 심지어 비밀스럽게 묘사했을 뿐입니다.

 

다시 정리하지만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성령의 영감으로 깨달아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그런데 세상만사를 다스리고 인류역사를 이끄는 하나님의 원칙은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비밀과 지식은 신구약성경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예언은 그래서 구약성경을 풀어서 가르치는 은사였고, 신약성경까지 완성된 이후에는 신구약성경을 풀어서 가르치는 은사인 셈입니다.

 

바꿔 말해 더 이상 장래 일을 알아맞히는 식의 예언은 필요 없고 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특별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꼭 필요한 때에 꼭 미리 알려주어야 할 사건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계시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부인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입니다.

 

바울 사도가 예언을 성령의 은사 중에서 가장 크고 귀한 것으로 꼽고 또 성도들더러 그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장래 일을 알아맞히는 식의 예언이라면 신자들 모두,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서 무당의 신 내림 방식으로, 하나님 계획을 미리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받으라는 권고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성경에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정확히 해석하여 올바르게 가르치는 은사야말로 모든 성도가 반드시 사모해야 할 가장 귀한 은사이지 않습니까?

 

예언의 은사를 어떻게 사모해야 하는가?

 

성도가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그 해답도 나왔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자신의 깨우침이어선 안 됩니다. 성령의 영감을 얻는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사상, 철학, 선입관, 편견, 오만, 고집, 체험, 심지어 목회자들에게서 이전에 듣고 배운 선지식마저 먼저 깨끗이 지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 중립의 백지상태에서 하나님 정말로 이 성경구절을 통해서 제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려는지 성령님을 통해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교만과 아집과 죄로 찌들어 있기에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계시를 혼동할 가능성은 상존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계시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성경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기독교 정통교리와 상충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교리부터 배워야만 합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의 경전부터 열심히 배워서 따르는데 유독 기독교인들은 그런 열성이 부족하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타종교는 인간 양심과 성찰로 충분히 알 수 있는 인본주의적 가르침인 반면에 기독교는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임에도 그러지 않으니 더 큰 잘못입니다.

 

또 서두에 인용한 본문은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깨달은 내용이 성도들을 권면 위로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내용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만 적용하여서 성령의 열매까지 맺혀야 합니다. 자기 덕만 세우는 것은 예언의 은사가 의도하는 바가 분명 아니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령의 열매가 열리려면 성도들을 위로 권면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긴 해도 인본주의적 내용과 방식으로 그쳐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성도들끼리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며 서로 사랑하자고 권하는 것은 아주 선한 일이고 자주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꼭 성령의 영감을 받지 않아도 타종교인과 불신자까지 포함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하나님의 비밀과 지식은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신령한 일입니다. 신령한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성경은 분명히 밝혀 놓았습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1-3)

 

바울 사도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우상에게 끌려가지만, 성령이 역사하면 예수를 주라 시인 영접하게 된다고 하며 그것을 신령한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예언의 은사를 통해 성도들을 권면위로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 또한 명료해졌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특별히 십자가 구원의 은혜로 성도들을 권면 위로하고 교회의 모든 행사에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 높아지는 내용과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각자 겸손해지고 남을 높이고 서로 사랑하는 일도 자기의 의로움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사랑을 받아서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예수 십자가 복음으로 죄에 찌든 인간을 성령의 거듭남으로 깨끗케 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그 자녀들 각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며, 그런 자녀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공동체를 형성 확대하며,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미혹된 영혼들을 복음과 공동체로 초대하고, 신자는 현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행하여서 필요하면 자기 모든 것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이 땅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언의 은사란 성경을 예수 십자가 복음에만 비추어서 해석하여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그 은사를 사모하는 기도도 예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과 경륜을 정확히 깨닫고, 자신의 욕심이나 의나 자랑은 일절 개입되지 않게 순전하게 성도들에게 가르쳐서 서로 위로 권면하며, 그 복음 안에서 죄와 흑암의 세력에 함께 승리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4/2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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