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을 구하면 안 되는지요?

 

[질문]

 

얼마 전에 올려주신 성경문답 "그의 나라와 그의 의란 무엇인가"라는 답변을 읽고 떠오른 것이 있어서 간단하게 질문 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분이 고 김성수 목사님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은 문자적으로 일용할 양식(그날의 먹을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6장에 이어져 나오는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를 들어 인간적 필요를 구하라는 주기도문과 이 구절은 모순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에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문자적 해석으로 하면 안 되고, 이런 모순된 구절을 해석하는 열쇠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매일 같이 먹었던 "만나"를 떠올려야 한답니다. 만나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표본이라고 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6장 31~35절에서 예수님이 만나를 언급하며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한 것을 통해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론은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란 매일 예수님 자신을 구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매일 매일의 만나=생명의 떡=예수님)

 

물론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매일매일 재확인하며 구하며 사는 것은 맞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기도문에서의 일용한 양식마저 예수님 자신을 뜻하는 의도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한 것은 과연 올바른 해석인지요?

 

[답변]

 

간단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우선 원어의 뜻만 해도 '일용할'(daily)은 '생존을 위한', '꼭 필요한'의 뜻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이를 "내일의 양식"을 달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6:34)라고 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 날 양식을 위해 그날 염려하는 것은 허락한 것입니다.

 

또 '양식'(bread)의 원어도 유대인들이 실제로 매일 먹는 밀가루로 반죽해 화덕에 구운 떡, 전병입니다. 둘 다 영적으로 경건하고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 용어들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끼니도 잊기 힘든 당시상황에선 그런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던 이스라엘과 현대의 신자는, 아니 예수님 당시와도 사정은 달랐습니다. 우선 광야는 정상적으로 식용재료 조달이 전혀 안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적 방식으로 먹이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 방황의 벌을 주셨지만 하나님은 항상 그러하듯이 피할 길(구원의 방책)을 따로 주신 것입니다.

 

또 광야 방황 기간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하나님의 자녀들)만의 공동체였습니다. 출애굽시의 애굽 백성을 비롯해 일부 이방족속이 함께 했지만 여호와 신앙에 동참하려는 자들이었습니다.  역사상 강제적으로라도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 유일한 케이스입니다. 당신의 백성이 당신만 따를 때에 당신이 어떻게 보호 인도하는지 당신께서 보여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오늘 날에는 신자가 불신자들과 함께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신자들마저 죄의 본성이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서로 함께 돕고 사랑하라고 창조된 인간들이 일용할 양식을 갖고도 서로 다투고 재력 무력 권력으로 독점 이득을 취하는 타락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하늘의 만나가 결코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죄를 씻고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하고 또 그런 자들이 함께 나눠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광야 방황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만나가 그쳤습니다. 정상적 생산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노동의 대가로 양식을 취해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죄로 물든 세상에서 수시로 죄에 넘어지는 신자들이기에 일용할 양식도 반드시 기도해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범사를 주관하심을 믿는 신자로선 사소한 일상적 일이라도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또 그렇게 구해 받은 것, 아니 신자에게 현재 일어나는 모든 것이 주님의 만나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본문 안에서의 정확한 뜻을 이렇게 해석한 다음에 영적으로 예수님과의 매일의 교제 동행이라고 적용하는 것까지는 당연히 바르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 양식은 틀렸고 영적인 양식만 옳다고 해석하면 너무 멀리 나간 것입니다.

 

제가 전번에 고 김성수 목사님이 말년에는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집착한 경향을 보였다고 말씀드린 또 다른 예인 것 같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오리겐 같은 교부가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서 영적 의미만 찾았는데 당시로선 성경을 하늘의 영적진리만 담아서 이 땅의 일상사와는 무관한 하나님의 계시이기에 세속의 현실과 연결해서 해석해선 안 된다고 인식했던 탓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그렇게 해석했다고 다 옳다고 믿고 그대로 따라선 안 됩니다. 그들의 신학을 정확히 따지면 이단적인 주장도 꽤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시각이 열리고 성경해석학이 발전된 오늘날에는 그런 해석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본문의 뜻과 상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주 조심해서 해석(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적용)해야 합니다.

 

8/1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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