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결심을 성취하려면?

조회 수 27 추천 수 0 2017.01.17 13:43:03

새해 결심을 성취하려면?

신년주일 설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막1:35-39)

 

 

오래 전 한국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저작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것을 패러디하여 저는 갈수록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모자란다.”를 실감하고 있다. 어느새 슬그머니 새해가 다가왔다. 정말로 슬그머니 한 해가 바뀌었다. 새해 아침에는 다들 올 한 해에 꼭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실천방안을 모색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모두 지금껏 경험하듯이 그대로 성취된 적이 아주 드물다. 얼마 안 가서 결심이 흐지부지 된다. 오죽하면 과장된 표현이긴 해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까지 있지 않는가? 인간 의지력의 평균치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 일 년 365일로 치면 1/100인 1%도 달성 못한 꼴을 매년 되풀이하는 것이 솔직한 실정이다.

 

기도 외에 길이 없다.

 

그런 실패를 고칠 방안을 오늘 본문의 예수님에게서 얻을 수 있다. 주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35절) 한마디로 기도 외에는 신자가 새해 결심을 이룰 방안은 없다. 기도가 불신자에겐 우연의 일치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연의 일치는 기도할 때에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기도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도란 어떤 일을 이뤄달라는 간구만이 아니다. 그것은 실은 기도의 반에 반도 해당 안 된다.

 

우선 주변 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변화시켜 달라고 해야 하고, 그 전에 자신부터 그 일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자격 실력 성품 등으로 성장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지치지 않는 인내력과 상황을 잘 분석할 수 있는 지혜와 혹시 잘못된 계획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수정해서 인도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더 선한 방안이 있다면 가르쳐달라고 나아가 현재의 영적인 흐름과 모든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분별력 등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광범위하고 종합적이고 오래 시간이 요구되는 사고활동이다. 신자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며 그분 중심으로 생각하며 묵상하는 것 전부가 기도다. 그러니까 성경은 무리해 보이기까지 한 계명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우리가 알고 있고 하고 있는 기도 방식으로는 도무지 그럴 수 없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보라. 일 년 365일 내내 올해 이룰 계획에 대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면서 또 그 매일을 1월 1일에 기도했던 것과 동일한 소망 각오 열정을 갖고 12월 31일까지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드시 뭔가 열매가 열리지 않겠는가? 기도한 대로 안 이뤄져도 자기 성장이라도 있고 최소한 다른 해 같은 후회는 절대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문제는 계획을 이루려는 노력과 마찬가지로 계획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일도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무슨 일에든 기도했다. 이를 쉽게 간과해선 안 된다. 참 의미심장한 것이다. 각종 병을 고치시고(34절) 귀신을 쫓아내는(39절) 권능을 지닌 성자 하나님이 쉬지 않고 기도하셨다. 물론 인간으로 오신 인자 예수로서 기도하셨지만... 그분 내면에서 인성과 신성이 오묘하게 균형을 잡아 완벽한 조합을 이룬 것은 하나님만의 신비다. 인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주님은 기도하지 않고는 무슨 일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스스로 밝히기를 내 아버지가 일하니 당신도 일한다고 했다.(요5:17)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스스로 할 수 없으며 아버지가 행하니 아들도 행한다고 했다.(요5:19) 이 땅의 모든 사역을 성자 하나님의 입장에선 성부 하나님과 일일이 의논하며 행한 것이다. 인자 예수로선 우리처럼 자기 계획을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예수님도 매일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본성이 연약하고 체질이 진토인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고도 아주 무모한 짓이다. 새해 계획도 기도하지 않으면 작심삼일이 될 수밖에 없다.

 

기도의 삶을 사신 예수

 

예수님이 밝기 전에 새벽에 기도했다고 해서 꼭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기질에 따라 새벽 형과 저녁 형 인간으로 나뉜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시간관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잘 아시다시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가 하루다. 그렇게 된 까닭은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창조의 6일이 전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몇째 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저녁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주님은 32절에 의하면 저물어 해질 때에 각종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었다. 치유 사역으로 이미 하루를 시작했다. 새벽에 해 뜨기 전은(35절) 새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이 아니라 새 날이 시작된 후 한참 약 10시간은 경과된 후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기도한 시간보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는 장소에 더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공사역 기간 동안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다. 사람들이 물러가도 12명의 제자들과 동고동락했다.

 

지금도 저녁에 즉 새날이 되고 난 후에 많은 이들을 치유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주무신 후에 제자들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셔서 그들과 떨어져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기도한 것이다.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세상 모든 일에 신경 쓰지 않으며 하나님과만 일대일로 대면하여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후에도 제자들을 배를 태워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먼저 보낸 후에 밤중임에도 혼자 따로 기도하셨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틈만 나면 기도하셨다. 치유의 기적을 베풀며, 복음을 가르치고 설교하며,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리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이 흐르도록,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도 자기들 대적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주님의 이 땅의 삶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감했다.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이 땅을 위해서, 특별히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신다.

 

응답되지 않는 새벽 기도

 

주님이 따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중에도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찾는다고 제자들이 데리러 왔다.(37절) 어제처럼 각종 병자들이 고쳐달라고 찾아 온 것이다. 그 중에는 불구자 불치병자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들을 외면하고 다른 마을로 옮기셨다. 어떻게 사랑과 긍휼이 풍부하신 주님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불쌍한 환자들을 버려둘 수 있는가? 그 답은 본문 안에 있다.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무슨 뜻인가? 기록은 없지만 이 마을은 이미 전도가 끝났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질병 치료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치유의 기적은 당신이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임을 눈으로 목격케 하여 당신을 믿고 따르게 하는 방편이었을 뿐이다.

 

병이란 한 번 나아도 나중에 또 다른 질병이 든다. 그전에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 가장 시급하고 첫 째 가는 과제, 인생에서 반드시 한 번은 맞부딪혀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기에 어떻게 하면 잘 죽는가의 문제다. 그 문제의 답을 얻지 않고는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 수 없고 무슨 일을 해도 항상 불안하고 갈급하고 허망해진다.

 

예수님은 사망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과 화목 시키려 오셨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라야만이 죽은 후 천국에서 그분 보좌 앞에 설 수 있다. 또 그분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거룩한 통치 받으며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미리 누리며 살 수 있다. 주님은 모든 인간에게 다른 어떤 일보다 더 시급한 바로 이 일부터 하려는 뜻이었다.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와 예수님이 사람들을 만나려는 이유가 서로 다르다. 사람들은 당장 병들고 먹을 것이 부족하고 인간관계에서 상처와 손해와 핍박을 받은 것들에서 구해달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목적은 불행하게도 예수 믿은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새벽 기도에 거의 모든 신자가 기도하는 제목들이 전부 그런 것들 아닌가?

 

본문에 따르면 그런 문제들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주님은 면담 거절을 하셨다. 다른 말로 우리 새벽 기도의 제목들에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그 이유도 본문에서 밝힌 대로 우리는 이미 전도된 신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일차 목적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일차 목적이 병자의 치료나 가난의 해소나 정치적 핍박에서 자유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역으로 말해 부자를 망하게 하거나 악인을 심판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오직 당신께서 택하시고 작정한 자를 당신께서 먼저 찾아가서 죄를 씻어주려고 오셨다.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로 삼은 자들과 영원토록 교제하고 동행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우선적으로 당신의 자녀와 그 공동체에 집중된다.

 

당신께서 외면했던 이차적인 문제들은 신자들더러 노력하여 개선하라고 위임되어졌다. 예수님의 머리에 창녀 마리아가 그 귀한 향유옥합을 깨어 부었을 때 제자들이 특별히 가룟 유다는 그 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이 나을 텐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 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가난한 자들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나 나는 십자가에 죽으러 갈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가난을 구제하는 것은 제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 온 자들은 굉장히 조급했다. 해 뜨기 전 아니면 뜨자마자 찾아왔다. 마치 기도하면서 어서 빨리 응답해달라는 우리의 조급한 모습과 똑같다. 반면에 주님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느긋함을 보이셨다.

 

물론 당신께서 이 땅에서 수행할 공사역의 기간이 삼년 밖에 안 됨을 주님은 알고 계셨다. 그 동안에 한 명이라도 더 전도 내지 천국복음을 알게 해주려면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 실제로 주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금도 기도할 시간조차 없듯이 사셨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느긋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무슨 일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가 분명했다. 다른 모든 일을 할 필요가 없이 오직 한 가지 일만 하면 되었다. 꼭 해야만 할 일이 하나였다. 다른 잡다한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느긋함이다.

 

한 가지 꼭 해야만 할 일이 분명히 정해져 있으니 당장 눈앞에 전개되는 사태나 앞길을 막는 것 같은 사람이나 사건에 전혀 방해 받지 않으셨다. 죄에서 구원하려는 그 일 외에는 당신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 여유로움이다. 그분의 시간을 활용하는 모습은 우리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신년계획을 이루는 세 가지 비결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신년계획을 이룰 수 있는 최소 세 가지의 비결을 배울 수 있다. 먼저 일 년 365일 동안 마치 1월1일과 같은 각오와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도하려 노력하기 전에 기도가 몸에 베인 자연스런 습관이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던 매일 매순간을 주님께 의지해야 한다. 잠시 속으로 주님 도와달라고, 인도해 달라고 최소한 “주님!” 이름만이라도 조용히 불러야 한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기도 제목들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떼쓰는 식의 기도를 한다. 기도는 일방적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과 신자 간의 대화다. 요구하는 기도만 하니까 그 제목대로 응답이 안 되면 기도하는 일이 즐겁지 않고 계속 기도를 지속할 의욕마저 사라지게 된다.

 

의식적으로라도 눈에 보이는 환경에 눈을 감고 하나님만 묵상하려 노력해야 한다. 특별히 이 계획을 이룰 수 있는 지혜와 영적 분별력을 달라고 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말씀 묵상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다른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시간과 장소를 하루 중에 자기 편한 대로 따로 떼어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영화 “War Room”처럼 옷장 안도 좋다. 요컨대 오직 하나님과 일대일로 씨름하라는 것이다.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게 하라. 누워 자기 직전에라도 잠시 그분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여라.

 

둘째는 소명에 붙들린 기도를 해야 한다. 꼭 종교적으로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된다. 현실적인 자기 소망을 붙들고 기도하되 단, 정말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꼭 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그 위에 정말로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계획들은 처음부터 안 세우는 것이 낫다.

 

그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소망과 열정이 너무 강렬해 정말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들 정도의 일이어야 하고 그래야 시간활용을 잘 할 것이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나 평생 해야 할 일들은 올해 계획에서 제외시켜라. 대체로 보면 매년 계획의 리스트가 비슷한데 매년 실패를 되풀이 했다는 뜻이다. 그럼 차라리 순번을 정해 한 해에 하나만 하는 것이 좋다.

 

신자라면 하나님께 받은 소명에 입각하여 계획을 세움이 당연하다. 그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선한 이유와 목적을 본인부터 절감해야 한다. 최소한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 아니 위배되지만 않으면 된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계획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최소한 주위 사람에게 유익하거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소명에 부합되고 실현가능한 한두 가지 계획만으로 대폭 축소시키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셋째는 스스로 선한 목적이 있음을 확신하여 한두 개로 축소한 그 계획에 하나님이 끝까지 동행해주심에 전혀 의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비결이다. 주님께서 이뤄주실 것을 완전히 믿어야 한다. 가장 평범하고 다 아는 내용이지만 가장 단순한 진리가 사실은 가장 좋은 법이다.

 

인자로서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이 시키는 일만 하셨다. 성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과 시간표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기도를 하셨다. 그러니까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나 세리 삭개오나 창녀 마리아와 단순히 먹고 마시며 교제하기만 했는데도 그 모든 시간에 하나님의 의미와 가치가 실현되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동행 보호 인도해주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그분의 의미와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그분이 우리 하는 일에 동행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도 그분의 의미와 가치가 반드시 드러난다. 꼭 신령하게 경건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내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동행해 주심을 확신하면 서 그 모든 일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의 심정으로 대하면 된다.

 

주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서 당신도 행하셨다. 그러니 십자가 복음이 변질 퇴색 모순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성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하셨으니 그야말로 하늘에서 뜻이 이미 이뤄진 것을 당신께선 땅에서 수행만 하신 셈이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겠다는 한 가지 일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도 내가 하는 이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확신하면 상황은 주님과 동일해진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대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므로 뜻이 하늘에서 과거 시제로 이뤄진 것이다. 이 땅에선 기도하는 대로 그분께서 현재 시제로 성취시켜 줄 것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엄밀히 말해 그분께서 직무유기한 셈이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싸워 이긴 야곱처럼 하나님과 올해 연말까지 끈질긴 기도의 씨름을 해야 한다.

 

역으로 말해 아무리 신자가 자유의지로 신년 계획을 세울지라도 하나님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안락과 형통만을 위한 계획이라면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는다. 또 다시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계획이야말로 기도 없이 인간적 끈기와 인내력으로 자기가 노력하면 그만이다.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올해만은 성경을 통독하자.

 

다시 강조하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고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라면 스스로 얼마든지 계획을 세워라. 단 하나님이 기뻐하실 의미와 가치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설령 주위에 덕을 끼치는 측면이 없고 신자 자신의 성장에만 유익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신자가 정말로 잘 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무엇보다 꼭 이루고 싶다는 간절함 절실함은 필수다.

 

지난주에 아틀란타를 방문하여 정말로 오랜만에 혼자되신 아이들 외숙모를 만났다. 그분이 지금까지 성경통독을 50번 했다고 한다. 일 년에 한 번씩이라면 50년이다. 저도 큰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 신자들이 신년 초에 가장 많이 세우는 계획이 무엇인가? 바로 신구약성경 통독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계획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본인의 절실함과 열정적 소망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을 물었더니 의의로 간단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평강과 기쁨이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성경을 읽을 때에 기쁨과 충만이 없이는, 그것이 없다면 대체 성경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정말로 알고 싶다는 탐구심이라도 있든지, 최소한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한이 있어도 한 번은 읽고 말겠다는 굳은 각오라도 있어야 한다.

 

지금껏 올 해 만큼은 신년 결심이 작심삼일이 안 되는 비결 세 가지를 주님께 배워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사실상 뒤집는 결과가 되지만 올해 계획을 어떻게 이룰까 그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 사실상 이미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 모든 방법이 다 장단점이 있고 완벽한 하나의 방법은 없다. 방법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계획에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한다. 이 일을 이루지 않으면 다른 어떤 좋은 일을 많이 이뤄도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고 의미도 없다는 그런 계획부터 세워야 한다. 계획으로 안 되고 그런 소원이, 소원보다 열정이 가장 먼저다. 주님은 전도가 너무 절박해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뒷전에 두었다는 것이 본문이 말하는 바가 아닌가?

 

새해 아침에 세운 계획들을 다시 점검해보라. 매년 실패했던 일이라면 아예 계획에서 빼버리는 것이 낫다. 그만큼 열정이 없었기에 실패한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 정도로 정말로 절실한 계획 한두 개로 제한시켜라. 성경을 읽으며 죽는 것이 소원인 분에게 방법을 찾을 필요도 없고 그래봐야 아무 의미도 없지 않는가?

 

정말로 꼭 이루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찾을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다. 그 계획을 붙들고 365일을 1월1일 아침의 각오와 열정과 믿음으로 12월 31일까지 기도하면 올해만큼은 다른 해와 달리 후회하는 일은 결코 안 생길 것이다. 어쩜 평생 처음으로 새해 계획을 달성하는 해가 될 것이다. 만약에 현재 계획에 모든 것을 걸만한 부분이 없다면 차라리 모든 계획을 폐기처분하라. 대신에 올해 안에 정말로 그럴만한 소망과 열정이 담긴 일을 찾는 것으로 올해 계획을 바꿔라.

 

1/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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