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1-10 구원을 정말로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는가? 11/4/2017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6)
바울은 성삼위 하나님의 역할을 구분해 복음을 간단히 설명하고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이제 구원의 첫 단계인 칭의에 관해 조금 더 풀어 설명한다. 먼저 허물과 죄롤 죽었던 자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선언한다. 작금 복음을 행위에 반대되는 믿음만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자칫 값싼 복음이 되어버렸다. 영생을 예수를 믿음으로써 보너스로 받은 것처럼 여긴다. 말하자면 신자 되기 전에도 자신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경건생활이 하나 더 추가된 것뿐이다. 실제로 자기 본성에 아무 변화가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본문은 불신자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고, 사탄의 자녀였으며,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었다고 선언한다. 오직 자기 욕심에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만 했다고 한다. 그분이 나에게 원하는 것에 대해선 일절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럼 예수 믿었다는 의미와 그로 인한 변화는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의로 살아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원히 그분의 진노에서 놓여났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원하는 것만 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탄의 시체였다가 주님의 생명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런 확신이 실제적인 중생체험으로 고백되어지고 또 그 고백대로 살고 있어야 한다. 신자가 장차 받을 복은 너무나 엄청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6절) 단순히 천국입성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한 후에 이어진 진술이다. 당연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는다. 삼위 하나님의 보좌는 아니다. 주님의 영원하신 우주적 통치에 함께 참여하는 영광을 얻는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자 축복인가?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8절)이라고 한다. 선물이라는 의미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받는 자에게 아무 자격 공로가 없어야 참 선물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상 감사의 뜻은 물론 친밀도 선호도가 개입될 수 있다. 생일선물도 그 동안 잘 자라주고 부모 말 순종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이 있다. 반면에 구원의 선물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죽어서 사탄의 종이 된 자였다. 하나님이 구원을 주기로 하는데 단 한 치도 영향을 줄만한 사항이, 생일선물 같은 의미로라도,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분의 ‘창세전에’(1;4) – 구원 받을 자의 어떤 조건도 형성되기 전에 – 절대적 주권적 선택이 선물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다. 영적시체였던 자가 그 선물을 받겠다고 스스로 결심이 가능할까, 또 완전하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선택하셨는데 선물을 거부할 사람을 선택하셨을까, 둘 다 도무지 말이 안 된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에서 ‘이것’이 중성명사이므로 여성명사인 ‘믿음’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구원 전체만 선물이지 믿음은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달렸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자는 믿을 수 있었고, 어떤 자는 믿을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결과적으로 “나는 믿었다”는 것이 구원의 인간적 조건 내지 공로가 되고 또 필연적으로 자랑거리가 된다. 믿지 않는 자를 주님의 긍휼로 바라보지 않고 “왜 저렇게 안(혹은 못) 믿지?”라는 비판이 생긴다. 그럴 수는 결코 없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연히 믿음 또한 전적으로 그분의 선물이다.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 아닌 통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