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도 할 수 없는 한 가지 일.

조회 수 58 추천 수 0 2019.06.10 17:05:04

(민14:20-25) 하나님도 할 수 없는 한 가지 일.

구약성경강해 (28) / 민수기강해(18) - 가데스 바네야의 불순종(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그러나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민14:20-25)

 

반만 들어주는 기도(?)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을 전염병으로 진멸하겠다고 선포했으나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로 그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고(20절) 말합니다. 모세가 기도한대로 응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1절은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앞에서 말한 내용과 상반되거나 특정한 조건을 부과하는 말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세의 기도가 100% 충족하게 응답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앞서 배운 대로 모세는 16절에서 열국들이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심판했다고 조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서 가나안으로 계속 진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래서 19절에서 애굽에서부터 지금껏 사하신 대로 사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에서 삼천 명만 심판하고 나머지 백성에겐 가나안을 기업으로 줄 것이라는 당신의 언약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용서해달라는 것입니다. 열 명의 악평한 정탐꾼만 심판하시고 나머지 백성들로 그 언약을 성취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런 모세의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한 갈렙과 그 후손만 그 땅을 차지하고 나머지 모두는 광야로 다시 들어가라고 응답하셨습니다.(24,25절) 목숨만은 살려주지만 가나안을 기업으로는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모세의 기도 중에 백성의 죄를 사해달라는 반은 응답이 되고, 가나안 진군을 허락해달라는 반은 응답이 안 된 셈입니다. 그럼 또 오늘날 우리의 기도에도 이런 식의 응답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만 역사하십니다. 둘 다 응답해주시거나, 둘 다 응답 안 해주시거나, 본문처럼 반만 응답해주어도 전혀 하자가 없는 당신만의 완전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간혹 목사님들이 비전을 크게 잡고 뜨거운 믿음으로 기도하여서 그 일을 성취하라고 가르칩니다. 죄송하지만 조금은 석연찮은 가르침입니다. 이미 한껏 크게 잡은 기도 제목인지라 하나님이 일부만 응답해주어도 막상 부족하게 여겨지지 않고 큰 축복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경우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이 가장 거리를 두고 싶어 하고, 엄밀히 말해서 싫어하는 신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큰일을 해드리겠다고 나서는 자입니다. 지금 당장 십자가 복음으로 이 땅을 뒤엎겠다고 덤비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이 주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나서자 나단 선지자가 어떤 말을 했습니까? “네가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겠다고 설치는데 내가 언제 그렇게 명한 적이 있었더냐? 내가 오늘까지 집에 거하지 않고 회막에서 행하며 너희 곁을 떠난 적이 없지 않느냐?”(삼하7:5-7) 결정적으로는 여호와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11절)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당신만의 방식으로 당신께서 주관하십니다. 모든 신자는 그 일에 쓰임 받도록, 그것도 일부분씩만 감당하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거기다 각자가 맡아야 할 그 부분적인 일에 가장 적합한 환경 은사 재능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분이 미리 다 마련해주십니다.

 

예수님도 적은 일에서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당신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마25:40) 하나님의 일이 거창한 종교적 업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수행하려 해도 한 사람씩 전도해서 누룩처럼 번져나가는 방식 말고는 없습니다. 또 그것이 바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식입니다.

 

기도를 반만 응답하신 이유

 

모세의 기도를 그의 순전한 믿음과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고 반은 응답해주고 나머지 반은 당신의 이름을 높이고 체면을 살리려고 안 들어준 것이 아닙니다. 벌써 삼주 째 강조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은 절대 변하지 않으며 반드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식으로만 이루십니다.

 

갈렙만 기업을 허락한 이유는 그 마음이 백성과 달리 당신께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24절) 모세는 열방들이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가나안에 인도할 능력이 없어서 심판했다고 조롱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정탐했었고 가데스 바네야의 현장에 있었던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진두지휘한다면 그런 조롱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또 모세의 후손으로 큰 나라를 이루려면 몇 백 년을 더 기다려야 하고 그럼 정말 여호와의 그 높아진 권능이 열방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몇 십 년 만에 갈렙의 지휘로 이스라엘이 쳐들어오면 가나안 족속들 중에도 그들과 동년배의 세대들이 생존해 있을 것이므로 여호와의 권능을 더욱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21절에서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당신만의 기준을 스스로 밝힌 그대로입니다. “진실로 나의 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으로 맹세하노니.” 온 세상 즉, 애굽과 가나안 족속들 앞에 당신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에 반만 응답하고 반은 응답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 당신을 거역한 현 세대들을 광야에서 죽어야만 하는 형벌을 내린 것 또한 당신의 영공을 높이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벌을 내리신 이유를 당신께서 직접 22절에서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당신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 이유를 열 번이나 불순종한 것에 돌리기 쉬운데 자세히 따져보면 그것은 표면적이고도 결과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이 당신의 영광을 열 번이나 보고도 거역했으니 당신의 영광을 더 이상 볼 자격이 도무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애굽으로 되돌아가겠다니 그들이 지레 겁을 먹은 슈퍼 거인 족을 여호와가 간단히 물리치는 영광을 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곳에 세워질 나라에서 당신께서 드러내실 무궁무진한 영광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비유컨대 그들로 가나안에 입국 시키는 것은 마치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과 같은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 번이나 불순종했는데 열 번은 알다시피 완전한 숫자입니다.

당신의 인자가 아무리 광대해도 그 인내의 한계에 이른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이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불순종도 딱 열 번입니다. 홍해(출14장), 신광야(출16장), 만나사건(출16장), 르비딤(출17장), 금송아지 사건(출32장), 디베라(민11장), 기브롯핫디야(민14장), 지금 가데스 바네야(민14장) 아홉 번과 처음 출애굽의 요구를 바로가 거역하며 노역을 심하게 부과했을 때 모세에게 원망한 것까지 해서 열 번입니다.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한 것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애굽도 열 번의 재앙 만에, 마지막 장자가 다 죽자 마지못해 항복했으니 열 번을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완악한 면에선 이스라엘이 애굽과 똑같다는 뜻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의 배역이 애굽보다 훨씬 더 완악했습니다.

 

애굽은 자기들 신들과 여호와와의 힘겨루기 때문에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자기들 신들에 매우 충성했으므로 그랬던 것입니다. 특별히 살아있는 최고의 신으로 숭배 받는 바로로선 자기 국민들 앞에 본문 식으로 말하면 당신의 영광이 실추되는 항복은 도무지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장자의 죽음만은 자기들 신도 관할하지 못하는 영역이라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심판 받는 진짜 이유

 

반면에 이스라엘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23절에서 진노하신 이유를 직접 밝혔습니다. 너희 조상들과 맹세한 땅에 결단코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애굽에서 오래 종살이를 했고 그들의 우상숭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참석해 즐겼어도 조상들을 욕보여선 안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소명을 받으면서 모세는 만약 애굽에 있는 백성들이 어떤 신의 명을 받고 왔느냐고 물어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3:15)가 하나님의 답이었습니다. 애굽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을 주신다는 약속을 선조로부터 배워서 익히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막상 그 땅을 눈앞에 두고 안 들어가겠다고 하면 여호와는 둘째 치고 조상들, 나아가 바로 자기 아버지를 거역하는 셈입니다. 그들은 바로 노아의 아들 셋째 아들 함이 아비를 모욕하여 받은 저주를 기억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불신자들에게 가장 큰 모욕은 아비 이름에 먹칠 하는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할 때 이를 어기면 내 성을 바꾸겠다고, 내 아비의 자식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애굽은 지금 조상 대대로 숭배했던 신들을 끝까지 거역하지 않으려고 모든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걸며 노력했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 단순히 윤리 규정을 위반하는 죄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기 실존의 뿌리를 부인하는 것으로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할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지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비와 조상을 욕보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진노를 23절에서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조상과 당신을 멸시했기에 절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가나안에 제사장 나라를 세우겠다고 여호와와 피 언약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언약을 어기면 내 신의 이름을 바꾸겠다고 즉, 그 신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돌아가려 시도한 일의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두고 심판을 맹세했고 그 전에 네 조상들의 이름에 먹칠했다고 꾸짖은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만 따져도, 그것도 이방족속과 단순 비교만 해도 진멸당해 마땅하지만 당신과 언약한 백성이니까 목숨만은 살려준다는 것입니다.

 

애굽은 자기들이 피해를 입으면서도 자기 신과 조상을 지키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홍해와 쓴물과 먹고 마실 것 없는 광야 즉, 최악의 상태에서 더 좋은 여건이 되도록 이적으로 열 번이나 축복해주었는데도 계속 불순종했습니다. 둘 중 누가 더 완악한 것입니까?

 

반면에 하나님은 갈렙의 마음이 이 백성과 다르다고 했습니다.(24절)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시라고 당신의 체면을 생각하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갈렙의 믿음의 수준이 모세만큼 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죽더라도 선조의 이름에 먹칠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니 그 조상과 약속했던 땅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가 지금껏 말하고 있는 내용은 한마디로 애굽은 자기들 신에 열 번을 충성했고,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열 번이나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줄이면 둘 다 참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에서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님을 찾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도리어 거역하는 것을 아주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하고 그 거역에 동참하지 않는 자를 도리어 비방한다고 설파한 딱 그대로입니다.

 

가장 완악했던 예수님의 제자들

 

문제는 이스라엘이 참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하고 많은 이적을 체험으로 누려놓고도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성경의 이 진술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죄송하지만 아직도 예수를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최소한 성경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주님과 삼 년간이나 동고동락하며 직접 천국복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이적을 열 번이 아니라 매일 수도 없이 목격 체험했습니다. 현대의학도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과 불구를 말씀 한마디로 완전히 치유했고, 당신께서 물 위를 걸었고, 폭풍우도 꾸짖어서 잠잠케 했고, 이천 명이 넘는 귀신도 명령 한마디로 쫓아냈고, 깊은 물속의 고기 떼도 조종했고, 죽은 자도 살리셨고, 천국에 있는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에 불러내려 교제를 나누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주님께 귀신을 쫓는 권능을 받아서 전도 여행에서 실제로 그 기적을 자기들 손으로 일으키며 감격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는 말씀으로 마칩니다.

 

이 말씀이 히브리어 용법에 따른 과장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매일 밀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해주었습니다. 삼 년이면 1100일 정도 되고 하루에 열 명만 고쳤어도 11,000번의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 사역, 이적들을 요즘 식으로 구체적으로 적으면 정말로 엄청난 양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를 필두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 삼년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인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갖고 온 것을 변화산에서 분명히 목격했고 출애굽보다 더 많은 이적을 체험했고 직접 실현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죽을 것이 확실해지고 끝까지 항변 한마디 하지도 않자, 아니 그전에 스승이 체포되자마자 한 명을 빼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는 다 도망가 숨어버렸습니다. 알다시피 재판장에까지 따라갔던 베드로도 목숨을 걸고 스승을 지키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세 번이나 부인하기 바빴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여인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고 도마는 동료 제자들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고 해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내용의 질을 따지면 이 열두 제자가 최악이지 않습니까? 구약의 이스라엘만 유독 완악했고 가데스 바네야의 거역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게 여길 계제가 전혀 아닙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구약시대의 애굽인과 이스라엘인, 예수님 당대의 유대종교지도자들과 열두 제자, 오늘날의 불신자와 신자 사이에 도덕적 종교적 우열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정확한 영적 실상은 도토리 키 재기일 뿐으로 상호 비교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 시체인 인간

 

특별히 하나님을 순전히 믿고 그분께 순종하는 측면에선 모든 인간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완전히 빵점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여서 성령으로 간섭하여 거듭나게 해서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오지 않는 한에는 도무지 그 점수가 일점이라도 늘지 않습니다. 예수 밖에 있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어린 영원한 심판입니다. 개인은 물론 인간의 공동체가 스스로의 노력에 의지해선 결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홍해의 이적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가데스 바네야에서 불순종함으로 그 구원이 취소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늘날로 치면 원죄의 저주 아래 있는 불신자 내지 교회 안의 쭉정이였습니다. 성령의 간섭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온 자라곤 모세, 아론, 여호수아, 갈렙 뿐입니다.

 

그 네 명이 이스라엘 전 백성 앞에 자기 목숨을 걸고 맞서서 눈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간곡히 호소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들의 성품이나 인격의 탁월성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그들의 심령을 붙잡아주고 전할 말을 입술에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이나 이스라엘 모두가 방식은 달라도 열 번이나 즉, 끝까지 채워서 더 이상 거역할 여지가 하나 없고 하나님의 심판만 남은 단계까지 거역했습니다. 둘 다 죽어 마땅할 뿐이며 어떤 항변, 변호, 핑계가 소용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처분만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둘 다 살려주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광대하신 인자 때문이었고 다른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였다고 여호와가 잔인한 심판의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아홉 번이나 경고한 그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애굽 우상 신들이 무참히 패배했고 끝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장자가 죽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스라엘을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당시로선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어폐가 있는 표현이지만 하나님으로서도 다른 방안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인간이 완악하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은 자기들 신들이 이름도 없고 아무런 형상도 없는 자기들 노예 종족의 신에게 지는 것은 도무지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는 사탄에 미혹된 바로 한 사람의, 자칭 살아있는 신의 자존심과 탐욕 때문에 자기네 백성은 물론 자신의 장남이 억울하게 희생된 것뿐입니다. 요컨대 바로를 비롯한 인간이 잘못하여서 자기 장남들을 죽인 것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그렇게라도 해서 애굽의 나머지 백성들을 살려주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광대한 인자가 열 재앙의 배경에 주권적으로 완벽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분문 25절에 자기들 백성을 홍해 길로 해서 광야로 되돌려 보내는 것도 하나님의 광대한 인자였습니다. 역으로 이스라엘을 그 자리에서 진멸하고 모세 후손으로 큰 나라를 세웠어도 당신의 인자에 전혀 금이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애굽과 가나안 족속들은 계속해서 당신을 거역 조롱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완악함도 그들 못지않고 더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성령으로 간섭하지 않는 한 사탄에 묶인 인간의 영혼은 구해낼 수 없음을 당신께서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이 거역하고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까지, 심지어 신자가 된 후에도 과연 열 번만 그분을 거역했을까요? 우리들의 완악함이 애굽과 이스라엘보다 덜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제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저를 전도하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여주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겠다고 바락바락 대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실존을 증명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예수 십자가 같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거꾸로 야단쳤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가 몰랐을 리는 없고 끝까지 믿지 않겠다는 핑계였으며 전도했던 분으로 하여금 아예 반박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말싸움에서 이겨야겠다는 어리석은 치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진멸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너무나 섬뜩하고도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하나님의 광대한 인자라는 것 외에는 어떤 설명도 불가능합니다.

 

불신자들에게 전도해서 열 번 만에 교회에 출석하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그럼 기독교가 크게 부흥하고 지금쯤 전 인류가 예수 믿는 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먼저 믿었던 제 집사람을 제가 교회를 절대 못 나가게 하는 바람에 7년을 새벽마다 혼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날짜로 치면 약 2,600일, 열 번의 260배만큼 저에게 간접적으로 전도한 셈입니다.

 

아내의 그 정성에 감동하신 하나님이 구원해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저를 구원해서 이런 너무나 막중하고도 고귀한 직분을 주시고자 택하셨기에 그런 기도의 여종을 아내로 붙여주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당시의 저를 되돌아봐도 하나님의 실존이 입증되는 증거를 보여주었어도 제 스스로는 절대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는 정말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범위 밖으로 넘어설 만큼 광대하십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인간 세상을 당장에 진멸시켜도 하나님의 영광에는 전혀 금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도 그분의 광대한 인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거듭난 신자는 영광스런 구원으로 완성될 것이며, 다른 이들도 온갖 죄악으로 타락하여 아무 소망 없이 절망과 죽음만이 활개 치는 삶을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7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고 선포합니다. 사탄이 말세의 대 환난으로 몰아넣으려고 무진장 노력하고 있으나 그것을 막는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기운인 말씀으로 그 적그리스도를 파멸시킬 때까지(살후2:8) 말입니다.

 

이 땅의 죄악상은 하나님이 당장 진멸 받아 마땅함에도, 또 사탄이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세워서 제 멋대로 갖고 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에도, 오직 예수 십자가의 은혜로 이 땅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한 인자가 없으면 이 땅은 당장에 사탄의 수중에 완전히 넘어가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예수 믿는 신자가 현재 서있는 장소와 상황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설치고 있는 불법의 비밀이 이 땅을 삼키려드는 시도를 실제로 막아내야 할 책임이 신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전도에만 힘쓰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 가지 일만 온전히 하면 됩니다.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즉, 너무 고통스럽고 이해되지 않는 욥 같은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광대한 인자에 의한 것이자 반드시 당신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닥치는 어떤 큰 환난도 그 신자를 하나님이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조차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신자로 망하게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은 불법의 비밀이 신자를 삼키려는 시도조차 아예 못하게 막아주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는 근거가 오직 하나님의 그 광대하신 인자에만 두어야 합니다. 당연히 범사에 감사하면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도무지 갈급하고 허망해서 살아갈 의미를 잃고 있는 주변 사람들로 정말로 저렇게 가치와 의미가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세에게 했던 것처럼 진실로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광을 온 세계에 충만하게 들어날 것을 맹세하고 계십니다. 신자는 그분의 이름에 먹칠하는 짓만 하지 않으면 아니 등만 돌리지 않으면 다윗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께서 우리의 집을 지어주십니다. 요컨대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는 우리의 기도가 부분만 응답되고 여전한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당신께 진심으로 순종하는 종의 집은 당신께서 지어주시며 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6/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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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성경적인 중보기도란? master 2021-03-02 121
153 (느4:4-5) 대적을 저주하는 기도를 해도 되는지요? master 2021-03-02 125
152 비정상적인 외모 때문에 큰 고민입니다. master 2020-12-31 104
151 (욘3:6-10) 하나님은 불신자의 기도에도 계획을 바꾸는가? master 2020-11-24 114
150 하나님이 다 알고계신데 왜 기도해야 하는가? master 2020-10-23 227
149 (대하1:7) “무엇을 주랴 하나만 구하라”고 하시면? master 2020-10-10 22
148 (왕상8:22-30) 새벽 기도회에 찾아오실 예수 master 2020-10-10 24
147 (창32:7-12) 하나님이 나에게 진 빚을 청구할 수 있는가? master 2020-09-04 15
146 유진 피터슨과 메시지 성경에 관해 master 2020-04-25 205
145 신자가 범하는 가장 심각한 잘못 master 2019-11-14 65
144 서원기도대로 응답되었는데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master 2019-10-12 65
143 기도의 양이 채워져야 응답되나요? master 2019-09-13 104
142 (민16:41-50) 지구가 멸망하기 일분 전인데도? (기도와 신탁) master 2019-08-07 68
» 하나님도 할 수 없는 한 가지 일. master 2019-06-10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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