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상숭배자 이방인 나아만도 택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구원

 

구약 성경에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그들의 구원 과정을 일일이 다 따져볼 여유는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의 경우를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사실은 요셉이 예정론을 설명하는 데는 가장 좋은 본보기이나 나중에 논할 주제에 더 합당하기에 그 때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1-3)

 

고대에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외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아주 큰 모험입니다. 가진 재산은 물론 자칫 목숨까지 강도에게 빼앗길 수 있습니다. 요행히 목숨을 건진다 해도 노예로 팔려가기 쉽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대면하여서 그분의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담대히 순종할 믿음까지 그분이 심어주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아브람이 나이 75세가 넘어도 자식이라곤 없었는데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해 복을 얻도록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인간 입장에선 계획은커녕 소망 아니 상상도 못하는 인생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아브람의 일생을 통해 당신께서 실현하실 일을 결정하신 후에 그에 합당하게 반응할 수 있게끔 아브람에게 선도적 적극적인 은혜를 부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사백 년간 애굽의 노예가 된 히브리인들이 갈수록 오히려 창성해지는 것을 바로는 크게 염려되었습니다. 알다시피 모세는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를 다 죽이라고 바로가 엄명을 내린 가운데도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거기다 바로의 궁정에서 왕자로 입양되어서 인생 초반 사십 년을 애굽의 선진 문물을 배우며 편하게 지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기적적인 인생 출발이 동족을 위해 헌신하라는 뜻이라 믿고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 관원을 쳐서 죽였으나 그 사실이 탄로나 하염없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 중반 사십 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세월만 흘려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삶에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고 서서히 죽음을 준비해야 할 나이 팔십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어느 날 아예 잊고 있던 여호와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시어서 그를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 하나님은 모세를 동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구원자로 세웠습니다. 그 후 모세는 여호와께 전적으로 순종하면서 인생 말년 사십 년을 보냈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그 전 80년도 자신을 출애굽의 구원자로 세우기 위해 바로 궁정과 광야의 전문가로 훈련 준비시킨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였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나일 강에서 건질 때부터 아니 그 훨씬 전에 하나님이 구원주기로 모세를 택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이 택한 종이 아니라 백성들의 요구에 맞추어서 세워준 것뿐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이미 경고한대로 사울은 열방의 왕들처럼 권력을 남용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버린 후에 당신의 마음에 합한 왕을 세우기로 하고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豫選)하였음이니라”(삼상16:1)고 계시했습니다. 다윗을 예선 즉, 미리 선택했다고 당신께서 직접 밝혔습니다.

 

사무엘이 일종의 오디션을 통해 이새의 장남 엘리압을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고 엘리압은 당신의 택한 왕이 아니라고 거절했습니다. 인간의 외적인 자격 조건 공적 노력이 구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양을 치던 막내 아들 소년 다윗이 얼떨결에 불려 나왔고 하나님의 확실한 인증을 받은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천하무적 골리앗을 무너뜨려 큰 공을 세웠습니다. 출전 직전에 다윗은 양을 치면서 사자와 곰도 쳤기에 골리앗이 아무리 거인이라도 몰매 돌로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다고 사울 왕에게 말했습니다.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주신 여호와가 이 싸움에서도 자기를 보호 승리케 해줄 것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양을 치면서 맹수들과 싸워 왔던 체험이 바로 이 전투를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미리 훈련 예비시켰음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

 

아주 간단하게 살펴봤지만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이 예정으로 구원 받았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합니다. 그 많은 인물 중에 이 세 사람의 구원 과정만 알아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여서 보호 인도하면서 그 들에게 각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여 모든 후손이 원죄의 굴레를 쓰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최초 부부에게 가죽 옷을 손수 지어 입히며 그들의 죄를 사해주실 때에 죄 중에 태어날 그 후손들도 구원해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만든 발단이자 원흉인 사탄의 흉계를 동정녀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철저히 깨부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성경 최초의 복음입니다.

 

인간 아담과 이브가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의 죄 사함을 받기에도 정신없는 와중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신 은혜로운 생명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으로선 당연히 그 후손들의 삶을 이 언약을 성취해나가는 모습으로 이끌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최초 언약을 조금씩 구체화하면서 인간 역사에 개입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우상숭배의 죄악이 관영하는 땅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이미 살펴본 창세기 12:1-3의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그의 후손을 창성케 하여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케 하려는 것입니다. 열방들 앞에 당신만이 상천하지의 유일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임을 드러내 보이시고 때가 되면 그들도 여인의 후손으로 구원의 은혜를 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5,6)

 

하나님은 애굽 노예로 있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모세를 통해 탈출 시킨 후에 시내 산에서 율법을 수여하기 전에 그들과 다시 상기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을 당신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곳에 당신만을 왕으로 모시는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치성과 제물만 받으려는 실존조차 않는 우상 신들과는 달리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거룩한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겠다는 뜻입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7:12-16)

 

나단 선지자를 통해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언뜻 솔로몬더러 이스라엘 국가의 기반을 견고케 하고 성전도 그로 건축하게 할 것이라는 뜻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선 이스라엘이 결코 영원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상숭배의 죄로 심판 받아 멸망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서 인류를 영원히 거룩하게 통치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살펴본 대로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 사탄의 거짓된 세상 통치를 종식시키게 해주신다는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초 약속이 세 번에 걸쳐 차츰 더 발전되고 구체화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운 후에 그 후손을 창성케 하였고, 모세로 그들을 출애굽 시킨 후에 가나안에서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게끔 율법을 수여했으며, 다윗으로 장차 오실 왕의 표상이 되게 하며 실제로 유다 지파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태어나게 했습니다.

 

사탄의 노예가 된 인간을 예수 십자가 은혜로 구원시키려는 뜻은 삼위 하나님의 창조 경륜 안에 이미 들어 있었습니다.(요1:11, 골1:15-20) 인류, 특별히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분의 일정과 방식에 따라서 노아를 비롯하여 아브라함, 모세, 다윗을 택하여 각각의 사역에 합당하게 준비 훈련시키셨습니다. 태초부터 세워진 계획에 따라 쓰임 받은 일군들이라면 당연히 그분의 예정에 의해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약 시대 일반인의 구원은?

 

이 세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은 큰 종이라 당연히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야 하지만 일반 신자의 구원은 그와 다를 것이라고 추측해선 안 됩니다. 그 세 명도 우리와 성정이 똑같고 개인적으로는 죄로 타락하여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으면서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만 건지려고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았고, 모세는 살인죄를 범한 위에 하나님께 크게 화를 내어서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다윗은 충직한 부하의 아내와 간음하였고 그 부하마저 암암리에 살인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구원은 꿈도 꾸지 못할 죄인들이었습니다.

 

사사와 선지자들을 포함해서 구약 인물들 모두가 예정으로 구원 받았음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엘리야 혼자서 갈멜 산의 영적 전투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에게 일방적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세벨의 극악한 추격은 계속되었습니다. 그가 그간 홀로 그 큰 사역을 감당하느라 심신이 너무 지쳐서 실망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님이 주신 위로의 말씀입니다. 당신에 대한 믿음을 붙들고 바알 우상숭배에 빠지지 아니한 자들을 당신께서 칠천 명이나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

 

성경은 그들이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일을 감당했는지에 관해선 완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구원 받을만한 자격 조건 공로가 전혀 없이 곳곳에 이름 없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로써 하나님의 예정으로 구원 받았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느 정도 유명한 자들이었다면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과 우상숭배에 굴복하지 않은 자가 이스라엘 중에 자기 혼자뿐이라고 여기고 절망에 빠졌을 리는 없지 않습니까?

 

예정구원의 또 다른 결정적 증거가 있는데 바로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입니다. 그는 아람 왕의 신복으로 최고 권력자이므로 적극적으로 우상 숭배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이방인으로 이스라엘의 대적이었고 장군이라서 전쟁에서 유대인들도 많이 죽였던 자입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돈과 명예와 권력 다 가져서 하나 부족한 것 없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선 구원을 줄만한 조건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에게 유일한 문제는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 들더니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5:2,3)

 

문둥병은 당시로선 불치병으로 나을 수 있는 방도라곤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스라엘 출신의 계집종의 충고로 기적적으로 깨끗이 치유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마침 히브리 여종을 데리고 있었고(틀림없이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이 여자를 노예로 잡아왔을 것임), 또 마침 그 여종이 엘리사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다, 또 마침 그 여종이 아주 신실했기에 나아만이 그 충고를 들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없습니다.

 

거기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아람의 군대장관인 자기를 대하는 태도는 물론 치료를 위한 조치를 보고는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왕하5:11) 그로선 엘리야가 일국의 군대 장관인 자기를 극진히 대접하고 또 일반 제사장들처럼 주술적 방식으로 치료해주리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도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 신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아예 처소에서 나오지 않았고 말씀으로만 지시하여 그로 요단 강 물에 씻게 하여 깨끗이 치료해주었습니다. 참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참 선지자만이 행할 수 있는 참 능력의 은혜로운 기적이었습니다. 여호와와 그 종을 완전히 무시했던 그로선 너무나 놀랐고 그 참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스스로는 여호와께 구원 받게 되기를 소망, 기도, 노력한 것이라곤 아예 없었고 그럴 자격조차 전혀 안 되었습니다. 나만이야말로 하나님이 히브리 계집종을 그 집에 보낼 때부터,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당신의 구원 계획에 택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4:27)

 

예수님이 이 사실을 직접 확인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절대적이고 완전하신 택함에 따른 예정 구원이 옳다고 주님이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논의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꼴이 됩니다. 또 그래서 저는 구약 아니 앞으로 살펴볼 신약의 인물들도 다 포함해서 성경에 예정구원이 아닌 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8/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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