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11-12) 신앙의 양극화

조회 수 1373 추천 수 113 2006.03.04 16: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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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1-12)



지금 한국에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너무 심하게 벌어지는 빈부의 양극화(兩極化)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등장했습니다. 부자는 눈덩이가 굴러 가듯 돈 벌기가 쉬워지는 반면에 가난한 자는 구조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신앙에서도 그와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천국의 비밀을 알아 신앙을 가진 자는 더 넉넉히 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이 신자는 편애하고 불신자는 너무 심하게 다루는 것 같습니다. 신자를 사랑하여 복 주시는 것은 좋지만 구태여 불신자가 가진 것마저 빼앗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베풀어 구원의 은혜에 들게 해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신앙 유무에 따라 상벌의 양극화를 꾀하셨다는 것이 그 일차적 의미가  아닙니다. 선과 악이 작용하는 영적 진리와 또 천국의 비밀이 사람의 영혼에 어떻게 인식되어지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선과 악은 항상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행과 구제를 베풀면 세상에서 그만큼 큰 기쁨과 보람이 넘치는 일이 없으며 설령 육신적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전혀 지치지 않고 오히려 더 신이 납니다. 반면에 조그만 죄라도 범하기 시작하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어느 새 자기도 모르게 더 큰 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아예 즐기기까지 하며 심지어 그 죄를 짓지 않으면 힘이 빠지고 불안해집니다.

그 까닭은 인간 스스로 선을 좋아하거나 악을 추구하는 성격이 있기 이전에 선과 악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어떤 이는 착하고 어떤 이는 악하다고 따질 수 없고 인간의 본질 또한 성선설과 성악설로는 다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과 악이 살아 움직이는 어떤 물체라는 뜻은 아니고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선한 인도와 사단의 음흉한 조종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원리는 윤리적인 선과 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비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며 본문은 오히려 그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은혜와 권능을 베푸시면 신자는 그것을 더 깊이 많이 맛보기를 저절로 소원하게 됩니다. 반면에 사단에 묶여 있는 자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단이 더욱 그 귀와 눈을 막아버립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가 너무 좋아 마시고 마셔도 더 마시고 싶어지지만 불신자는 사단이 주는 썩은 물을 마시기 때문에 아무리 마셔도 갈증 자체가 해소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풀어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이사야의 예언이 바로 이 원리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마13:14,15)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선 고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따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신자가 고침을 받는 것을 두려워할 리는 없기에 사단이나 그에 붙잡힌 자를 뜻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불신자라도 천국의 비밀을 알아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단이 불신자를 그렇게 옭아매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불신자에게 작동되고 있는 사단의 악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에 아무리 복음을 듣고 보아도 알지 못하고 더 완악해지기 마련입니다. 그 완악이 겉으로 드러난 윤리적 결과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이며, 영적인 결과는 “이천년 전 로마의 사형수에 불과한 예수가 내 죄와 무슨 상관 있어? 나는 얼마든지 하늘을 우러러 볼 자신이 있어!”라고 큰 소리치며 반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면 왜 영적인 면에서마저 이런 양극화가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가 궁금합니다. 이 영적 원리 안에 이미 그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자로 자연스레 더 깊이 그분을 알아가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럼 불신자는 사단에게 묶여 있어 괘씸하니까 더 깊이 빠져들어가 헤어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입니까? 그 반대로 그러니까 그들을 더욱 불쌍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너무나 좋은 반면에 사단에 묶여 있는 것이 얼마나 안 좋은가 그 차이를 확연하게 알아야 신자가 불신자의 영혼을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고 참 사랑으로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에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면 누가 구태여 복음을 전하며 또 불쌍한 이웃을 섬길 마음이라도 먹겠습니까?

하나님이 불신자를 일부러 더 벌주기 위해 영적 양극화를 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단이 양극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영적 원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악이 없으면 선이며 선이 없으면 악입니다. 그 둘은 절대 만나지 못하며 한곳에서 공존하지 못합니다. 죄와 의, 흑암과 빛, 죽음과 생명, 심판과 구원은 절대적인 양극입니다.

그래서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인간의 선행, 회개, 도덕, 사상, 철학, 종교로는 절대 메울 수 없습니다. 오직 그 양극화를 허락하신 하나님 만이 메울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이며 그 복음에 드러난 천국의 비밀은 당연히 양극화를 내포하게 되어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지금 심오하고 거창한 영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바로 이 양극화의 과정을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단 한치도 없이 죽지 못해 겨우 연명만 하는 완전한 실패자였지만,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그분이 너무너무 좋아져서 더욱 그분을 사모하고 오직 그분 뜻대로만 따르는 승리자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적 양극화가 하나님이 사단의 영원한 경쟁 상대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영적 양극화 원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인식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범위에만 적용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사단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위에서 굽어 보시고 있고 오히려 신자가 영원토록 사단의 정반대 편에 서있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 안에서 이미 승리자가 된 신자는 남은 일생 동안 사단과 싸워 그 종이 되어 있는 자들을 구해낼 수 있으며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영적 양극화 원리의 본질이자 목적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혹시라도 빛 쪽의 극(極)에 서 있지 않고 양극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닌가요? 지금 당장 나가 노방 전도라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고 있지는 않는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3/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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