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5:1-11) 수시로 이단적 오류를 범하는 신자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5:10)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많은 열매를 맺자 그를 시기한 유대주의자들이 할례가 구원의 필수 조건임을 강조하고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왔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언약백성임을 증빙하는 절차이자 표식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래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구원 언약 밖에 있다고 할례 없는 죄인이라고 멸시했습니다. 예수님 당시까지도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는데 할례가 필수적 절차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주의자들로 인해 교회 안에 분란이 생기자 교단본부격인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의견인지 확인코자 바울과 바나바를 중심으로 대표들을 파송했습니다. 선교 보고를 들은 후에 곧바로 바리새파 중에 특별히 완고한 자들이 일어나 이방인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도와 장로들 사이에 많은 찬반 변론이 있었고 결국 교회의 수장격인 베드로가 토론의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의 두 가지 요점을 잘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날에도 이와 유사한 논쟁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도 신자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어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사도인 자신을 택했다고 합니다.(7절)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방인과의 교제를 허락해줌으로써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족 친지들에게 말씀을 전했던 사건을 너희들도 익히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둘째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차별하지 않고 이방인들의 마음도 깨끗케 해주었다고 합니다.(8,9절) 죄로 타락했던 영혼을 하나님이 성령으로 새롭게 바꾸어서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변론의 초점은 구원을 전적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이방인 구원의 문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이방인 고넬료를 지금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할례를 받지 않았고 율법도 지키지 않았음에도 구원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뒤늦게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 그분의 역사를 거역하는 죄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구원은 그 마음을 씻어서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해주는 성령의 무조건적인 역사에 의존하지 않고는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진정한 회심만으로 구원은 충분하고 완전합니다. 그 외에 아무리 경건하고 신령한 모습을 띌지라도 조금이라도 보태어야만 한다면 바로 이 할례파 유대인 같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기독교 이단들의 양태가 그러합니다. 예수 십자가 은혜를 믿는 것은 필수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그 외에 이런저런 것들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야말로 끝만 다른 것이라는 뜻의 이단(異端)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들도 시작은 그럴싸하니까 쉽게 속아 넘어갑니다.

 

베드로가 할례 같은 율법조항들을 어떻게 설명했습니까?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라고 선언했습니다. 수고와 무거운 짐이 현실 삶의 고난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와 대비되는 율법의 세부적인 시행방안으로 인간 장로들이 고안해낸 복잡한 관습과 유전들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영단번의 완전한 제물로 바쳐졌기에 인간에게 씌워진 모든 종교적 멍에는 완전히 벗겨졌습니다. 그 구원의 은혜와 진리를 알면 쉼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자유로워집니다. 이단 교파에 속하지 않았어도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부족해서 뭔가 도덕적 종교적으로 의로운 행위를 더 해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집니까? 그렇지는 않더라도 뭔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구원이 취소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깁니까? 둘 다 엄밀히 말해 이단적인 오류입니다.

 

만약 잘못한 일이 있다면 주님 앞에 모든 것을 토설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세상 어떤 것도 이미 완전한 제물로 바쳐진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의 구원을 훼방할 것은 없습니다. 정통 교회 안의 유사 유대주의자들이나 그런 가르침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길은 예수님만이 처음이자 끝이요 알파요 오메가가 되는 순전한 십자가 복음을 붙드는 것뿐입니다.

 

11/1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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