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3:23,24) 하나님과 정말로 동역하고 있는가?

조회 수 1246 추천 수 74 2006.10.20 20: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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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도다.”(마23:23,24)


목사들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실천할 부분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 중심의 생활을 강조하는 것으로 교회의 모든 모임에 충실하게 참석하여 항상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갈고 닦으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집도 교회 근처로 이사 와서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 지내라는 분도 있습니다. 둘째는 실제 삶에서 신자답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만 와도 되지만 제대로 배워서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일곱 번의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감정적으로 욕설을 퍼부은 것이 아니라 신적 권위로서 엄중하게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본문은 그  네 번째로 율법의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등한히 하면서 채소와 양념의 십일조까지 바치라고 강조하는 종교지도자를 소경된 인도자라고 야단쳤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신자들이 실천해야 할 두 가지, 즉 개인의 영성 함양과 사회적 책임의 준수 둘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 예수님이 판정을 내려준 셈입니다. 두 가지를 다 충실하게 행해야 하지만, 의와 인과 신을 실천하는 것이 “율법에서 더 중한바”라고 말했습니다. 의와 인과 신은 하나님과의 바로 된 관계를 의미하기도 있지만 그 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의롭고 자비를 베풀며 서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신자는 교회 중심보다 현장의 삶에 더 초점을 두고 살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야채와 양념 같은 아주 세밀한 것까지 전통이나 규례로 정한 것을 특별히 지적한 비유이긴 하지만 전자는 하루살이 정도로 보잘 것 없을 수 있지만 후자는 약대만큼 크고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자들은 삶에서 신자답게 사는 것을 불신자 때보다는 죄를 덜 짓고 남들을 조금 더 도와주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자가 되었으니 더 착하게 살아야 하고 또 그렇게 노력한다는 것이 근본적 인식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 또한 엄밀히 따지면 신자가 자신의 영적 성장에만 노력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실천적인 선행이 따랐지만 불신자시절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이웃과 사회에 대해서 갖는 책임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불신자들 가운데 지성적, 도덕적으로 앞선 사람들은 사회, 민족, 국가, 심지어 전 지구적인 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인권을 신장하고 국가 간의 전쟁을 반대하며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는 운동 등을 신자보다 더 열심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자는 이런 일에 노력과 자원을 쏟기보다는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우선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도 의와 인과 신을 더 중요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예수님이 분명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신자니까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는 무슨 일이든 반드시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우선 하나님만이 전 세계의 주관자이시기에 그분의 선이 모든 피조물과 세상만사를 거룩과 영광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또 그런 확신이 바탕이 되어 인류의 역사가 그분의 뜻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어지기를 열정적으로 소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그분이 인간 역사에 간섭하시는 일에 그 분의 심장을 갖고 기꺼이 동참해야 합니다. 선행과 구제를 비롯하여 신자는 자기 외부와 갖는 모든 접촉과 관계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통치에 동역자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가 하나님의 심장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거창하거나 종교적 의미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기도하고 말씀 보며 자신의 품성과 영성을 정진시키는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부단히 가다듬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당신의 사역을 위한 준비였지 사역 그 자체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또 어떤 분을 닮기 원하면서 직접 일하는 모습은 전혀 닮지 않고 일을 준비하는 것만 닮으면 어떻게 됩니까?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닮기 위해 피아노 교습을 그에게 열심히 배워놓고 한 번도 연주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럼 스승을 닮은 것이 아니라 스승에게 레슨비만 보태준 것입니다.

동역자란 문자 그대로 어떤 일을 함께 수행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역에 신자가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 그분의 심장을 갖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역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도 없습니다. 스승에게 열심히 배워 실력을 갖추게 되면 당연히 대중 앞에서 연주하고 싶어지고 또 청중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사역은 한 마디로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었기에 신자 또한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그분의 동역자가 되는 길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구성원들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시켜서 주님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일입니다.

따라서 신자의 가치관, 사고, 심지어 일을 수행하는 방법과 그 결과를 분석하는 등 모든 것의 기준이 오직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공동체가 존재하는 목적과 운영원칙도 오직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단순히 공동체적인 골칫거리를 해결하여 발전시키는 것만 목적으로 하는 불신자들의 선과는 다릅니다. 각 개별 구성원의 눈물을 씻겨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 앞에 서게 해야 합니다. 신자의 선은 도덕적 종교적으로 의로운 일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신자가 자기의 영적 성장에만 매달리면 그 성장이 아무리 거룩하고 신령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자기에게만 머물러 있어 달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거룩한 통치가 남에게 역사하는 것은 나는 모르며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웃에게 의와 인과 신을 베풀지 않으면 하나님이 시키신 임무에 태만해진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와 세상만사의 주인이라는 것마저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셈입니다.

신자가 진정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관자라고 믿는다면 주님 안에 있는 세상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주님이 안 계신 세상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신자가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민감한지가 그가 예수님과 얼마나 닮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잣대가 됩니다. 여기서 민감하다는 것은 단순히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디어내지 못할 정도로  예민하다는 뜻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은 십일조는 잘 하는데 의와 인과 신을 이웃에 실천하는 일에는 등한하지 않습니까? 다른 말로 예수님으로부터 “화 있을찐저!”라는 꾸중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불신자 시절보다 조금 나아진 것이 신자가 아닙니다. 본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에 기꺼이 참여해 그분과 적극적으로 동역하고 있어야 참 신자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어떤 교회의 교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이자 하나님의 동역자입니까?

10/20/2006

조인구

2006.10.21 02:06:29
*.168.134.160

김형주

2006.10.21 06:40:36
*.173.42.18

아멘!
말씀읽고 기도하고 교회에 나가며 그것으로 하나님 자녀로서의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했던 이 어리석은 심령을 잘 깨우쳐 주셨습니다.
샬롬!

허경조

2006.10.22 13:09:41
*.80.180.13

아멘
목사님의 말씀을 읽으니 갑자기 30년전 일이 기억납니다. 당시 20대초반인 저는 어느 초겨울 수요저녁 예배에
가는 도중이었읍니다. 교회입구 근처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 벤치에 할머니 한분이 누워 계시는 것이
눈에 띄었읍니다.
제 앞에 가던 모든 사람들은 " 아니 이추운데 할머니가 저기 계시면 안되는데"하면서도 교회 예배시간이 다 됐다고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마음을 정하고 청년부 후배한명과 그할머니꼐 다가가 보니 치매에 걸리신듯 답변도 제대로 못하셔서 주머니를 뒤져 주소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다준 기억이 납니다.
예배보다 할머니의 안위를 돌봐준 것이 올바르다는 저의 신앙적 판단은 그후 저의 생활의 기본이 되왔읍니다.
현재의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강요한 나머지 한주에 평일에도 서너번씩 교회를 가야되고
그 흐름에 동참안하면 안수집사 장로후보에도 못 끼고 결국은 양자택일을 강요당해 집안 일이나 주위 사람들의
아픔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등한시 할수 밖에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웠는데 목사님이 정확히 말씀으로
지적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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