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5:36-16:5) 주의 동역자가 되지 못할 자는 없다.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행15:38)

 

바울이 선교사역을 함께 할 동역자로 마가 대신에 디모데를 택하는 이유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16:2) 둘 다 로마의 자치 주(州)의 이름인데 한두 개의 교회가 아니라 아주 넓은 지역의 많은 이들로부터 그 인격과 믿음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마가 요한에 대해선 바울이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15:38)고 거부했습니다. 문제는 그 일로 인해 바울은 바나바와 크게 다투고 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차 선교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선교 팀이 둘로 나눠진 것입니다. 그것도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이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바울과 바나바과 함께 세웠던 교회들을 재차 방문할 예정인데도 그랬습니다.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15:36) 알아보려 했습니다.

 

디모데의 평판이 아주 좋은데 바울이 그에게 새삼 할례를 행하도록 한 이유는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자녀는 태생적인 유대인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첫 공회에서 이방인 신자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결의했는데 그럼 유대인 신자들은 기존의 관습대로 할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직은 기독교가 유대교에서 완전히 분리되기 전이라 유대인 신자들은 당연히 할례를 했고 또 그래야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주었던 것입니다.

 

이제 주의 일꾼으로 선임되어 장차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회당에서 가르치고 선교활동도 해야 할 디모데로선 마땅히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처럼 각지의 교회들이 공회의 결의를 수용하는데 의의가 없었기에 더 이상의 분란은 없어졌고 “믿음이 더 굳어지고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했습니다.”(16:5)

 

바울과 바나바는 오래 동안 선교를 함께 해온 사이입니다.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서 그들과 헤어질 때마다 믿음 안에 굳게 서있으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들이 다시 가서 가르친 대로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지 알아보고 혹시 문제와 분쟁이 있으면 격려 조정 해결해줄 작정이었습니다. 그럼 더더욱 둘이 동행해야만 했습니다. 혼자 가면 왜 같이 오지 않았느냐 무슨 문제가 있느냐 물어볼 텐데도 둘은 나뉘었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습니다. 바나바는 팔이 안으로 굽기도 했겠지만 한 번의 잘못은 용서해주고 제2의 기회를 주자고 바울을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거절했으니 너무 편협한 것 아닙니까? 항상 그러하듯이 그 답은 성경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마가가 그들을 떠난 것은 본격적인 핍박이 있기 전으로 구브로 전도를 마친 직후였습니다.(행13:13) 구브로에선 마술사가 총독더러 믿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는 했었지만 선교 팀에 대한 훼방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사도들이 총독을 전도했으니 오히려 총독으로부터 대접을 잘 받았을 것입니다. 선교 팀에 대한 본격적인 박해는 이고니온에서 있었는데(14:2,19) 마가는 그 전 밤빌리아에서 아무 문제나 핍박이 없는데도 그들과 헤어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13:13)

 

오래 전에 헤롯이 베드로를 죽이려고 옥에 가두자 제자들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 집에 모여간절히 기도했습니다.(12:12) 많은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정도라면 마가의 집은 부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교란 아무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이런 저런 방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이번 2차 여행에서도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데 이전 경우를 볼 때 부잣집 아들 마가로선 쉽게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바울이 요한 개인을 야단 정죄한 것이 아닙니다. “함께 데려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즉, 선교사역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따지면 도리어 그의 안전을 염려하는 배려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디모데는 여러 지역에서 믿음이 굳건하고 성품이 좋다고 이미 칭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사역자로 선교사로 자질이 충분하다고 이미 검증을 받은 자입니다.

 

결국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전파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차원에서만 판단 결정 시행했습니다. 자기는 어떤 위험에 처하든 사람들로부터 어떤 음해를 당해도 상관이 없었고 심지어 같은 사도와의 다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복음 전파에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시비 거리가 될 것을 미리 제거한 것입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나바가 그러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마가의 한 번 허물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마가는 이미 선교 여행에 동행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 용서해주면 더 힘을 내어 열심히 잘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자기 조카이므로 팔이 안으로 굽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편하게 동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번 여행의 목적과 예수님을 위하는 열정에서 하등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단지 자신들을 도와줄 사역자로 누가 적합한지 여부에서 의견이 갈라졌을 뿐입니다. 그들도 연약한 인간이지라 논쟁이 길어지면서 자존심과 감정싸움으로까지 변질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 다 마가처럼 하나님 앞에서 같이 한 번의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툼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교 팀이 둘로 늘어나고 방문 지역도 둘로 늘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이 더 활발하게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디모데와 마가의 인간적 장단점과 사역자의 자질은 물론 그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투고 헤어지는 것까지도 다 합력하여서 당신의 뜻 안에서 선하게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모두가 미혹된 불쌍한 영혼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간절한 소원과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 바나바와 바울은 오랜 사역의 동지로서 온갖 어려움을 같이 겪었으며 서로를 내심 존경하고 좋아했던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나 목회자가 되는 데에 자질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이전의 잘못이나 심지어 죄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정확히 알고 그 은혜가 없는 사람들을 보면 애통해 하는 마음이 들면 됩니다. 그럼 설령 인간적인 잘못을 범해도 그 동기가 이처럼 순전히 주님을 위해서였다면 도리어 주님 당신께서 더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나중에 마가를 받아들여 선교에 동참시켰고 함께 로마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골4:10) 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마가를 인간적으로 비평한 것이 아니었고 마가가 고난이 닥치면 쉽게 실망하고 주저앉을까 염려했던 것뿐입니다. 결국 바울뿐 아니라 바나바, 디모데, 마가 요한 모두는 자신들의 심장에 예수님만 모셨던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그분을 위해 일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이들과 비교해 어떠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1/11/2021)


날마다순종

2021.01.11 16:03:58
*.14.99.253

내 의지는 박약하고 지혜는 어리석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잠시도 온전치 못합니다. 그저 날마다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길이요 진리요 참생명이신 오직 주님만 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의 긍휼과 성령님의 인도하심를 간절히 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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