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6:15) 진정으로 성공한 신자란?

조회 수 1103 추천 수 54 2007.03.05 20: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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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6:15)



나이 40 이 넘으면 얼굴에 자기가 어떤 사람이란 것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공자는 40 대를 세상의 어지간한 사조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되는 불혹(不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미 그 내면이 어떤 특정한 틀에 고정되어 있으니 자연스레 외부로 그 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 스데반이 공회원들에 의해 붙잡혀와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와 변론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거짓 증인들을 세워 무고로 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혀 동요함이 없이 얼굴이 오히려 천사와 같았다고 저자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저명한 성경학자인 J. B. 라이트푸트를 한 제자가 “놀랄 만큼 못생겼고 사팔눈에 작은 키에 뚱뚱하고 흉한 모습의 소유자”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하루 이틀만 겪고 나자 그의 얼굴은 가장 아름답고 상상하기 힘들만큼 사랑스런 모습으로 보였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내면에 담겨져 있는 어떤 사람의 진정한 실체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몇 겹의 피부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습니다. 사업가에게선 돈 냄새가, 과학자에게선 냉철한 지성이, 범죄자에게선 음흉한 그림자가, 예술가에게선 특이하고 신선한 매력이 배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개신교 목사가 카토릭 같이 사제복을 입지 않고 있어도 자신을 소개하기 전에 사람들이 이미 목사로 알아본다면 일단은 성공한 목사인 셈입니다.

스데반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해서 천사가 인간으로 변신해 있었다는 뜻일 리는 없습니다. 마치 천국에 이미 들어가 있는 듯이 너무나 온유하고 평강에 넘쳤던 것입니다. 일반인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령한 권능에 사로 잡혀 있어서 얼굴에서 거룩한 빛이 새어나오는 듯했는데 그의 내면의 실체가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수도원에 들어가 자기 속에 남아 있는 더럽고 추한 죄의 찌꺼기를 완전히 씻어 없애는 수양을 계속했어야 합니까? 아마 전혀 죄와는 거리가 멀고 선한 냄새만 난다면 누가는 성자(聖者)에 비유했을 것입니다. 대신에 천사와 비교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세상 사람이 통상으로 갖고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는 뜻입니다. 성자의 모습은 드물긴 하지만 불신자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시 공회의 분위기는 무척 살벌했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성전과 율법을 거스렸다”고 따졌습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으로 또 그에 유효한 증거를 동원해서 심문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율법을 고치겠다고 한 죄를 물고 늘어졌는데  예수를 무고하게 죽였던 것과 동일한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스데반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진한 죽음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천사처럼 보인 것은 결국 죽음을 초월한 자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너무나 담담하고 당당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죽이려 들었던 자들이 더 초조하고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보인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어 더더욱 빛이 났을 것입니다.

그가 그런 모습으로 보인 것이 믿음으로 죽음 앞에 결연하게 맞섰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방해하는 유대 공회원들에게 절대 밀릴 수 없으며 어떤 핍박을 당해도 생명을 걸고 싸워 이기겠다고 입술을 악물고 다짐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천사의 얼굴이 아니라 정의의 사자 내지 열사(烈士)의 모습으로 비춰져야 했습니다.        

내면에 확실하고도 진정한 실체가 있어야만 겉모습도 그와 동일하게 변합니다. 스데반은 자나 깨나 항상 하늘나라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매순간 살고 있었던 자입니다.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 했고 또 “지혜와 성령으로만” 말했습니다. 계속 천국만 소망하고 묵상했으니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천사 같이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항상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장성한 분량대로 자라려고 했기 때문에 예수의 냄새가 났던 것입니다. 예수와 똑 같은 음모로 사형을 당할 수 있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서 오히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불쌍히 여긴 모습까지 예수와 동일합니다. 그는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라고 자신의 변론을 너무나 친밀한 어조로 시작했습니다. 자기 원수가 될 공회원들을 오히려 부모와 형제라고 부른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인지라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특정한 사람에게서 나는 특정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 믿는 냄새가 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자기를 소개하기 전에 벌써 신자로 알아준다면 신자로선 반 이상 성공한 셈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냄새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냄새로 나눠지니 문제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신자, 성경 많이 읽는 신자, 말없이 봉사하는 신자, 사사건건 트집 잡고 불평하는 신자, 남의 허물을 두고 보지 못하고 일일이 정죄하는 신자, 등 성도들은 서로를 잘도 알아봅니다. 그 사람과 꼭 오래 교제하지 않고도 간단하게 한두 마디 말을 나누면 알 수 있습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교회 외부에서 신자를 볼 때입니다. 예수 믿는 냄새가 참으로 이상하게 변질되었습니다. 행동은 따르지 않고 말만 앞서면 예수쟁이 같다고 합니다. 장소와 상황에는 관계없이 모이면 박수치며 찬양하거나 큰 소리로 전도하는 몰상식한 자들로 치부합니다. 혼자만 천국가기 바빠서 남들 어려움은 외면하며 경건의 삶은 뒷전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만 받으려는 더 영악한 자로 간주합니다. 그럼에도 자기들만 성자이고 나머지 모두는 아주 죽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자들로 봅니다.  

다시 말하건대 예수 믿는 자에게선 반드시 예수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예수님과 꼭 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냄새라도 나야합니다. 예수님에게서 앞에서 말한 냄새들이 났겠습니까?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사53:1)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고”(12절), 그래서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로 인하여 땅에서 끊어짐을” 당했습니다.(8절) 그러므로 그는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려서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10절) 했습니다. 한 마디로  죄에 빠진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자기 생명과 맞바꾸면서까지 그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고 가려했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사역하는 동안 오직 천국만 생각했고 의인 대신 죄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만 이루려 했습니다.

요한복음이 어떻게 증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또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었기에 예수님을 보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이, 즉 하나님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8:29) 예수님도 천국과 하나님 아버지만 항상 생각하고 그 뜻대로 행했기에 겉으로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신자의 얼굴은 천사 같아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냄새는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항상 무엇을 사모하며 추구하고 있는 지로 결정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천국을 사모하는 자만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신자가 세상사람 앞에 보여야 할 유일한 모습입니다.    

지금 당신의 솔직한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시라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뒤에서 호박씨 까는 위선자, 열성 종교분자, 선행만 강조하는 도덕군자 등으로 불리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그들처럼 내면의 더러운 실체를 감추기 위해서 외모, 재물, 명예, 권세 등으로 위장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신자가 되었다는 최소한의 의미는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를 비롯한 많은 신자에게는 스데반 같이 천사의 모습을 띄는 것은 너무나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너무나 연약하고, 무능하며, 불완전하고, 때로는 참으로 추하고 더럽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은 그런대로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가 천사로 변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아니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죄를 자백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스데반에게 했던 것과 똑 같이 우리에게 은혜와 권능을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또 성령과 지혜의 말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있다면 차라리 죄인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솔직하게 서는 것이 더욱 아름답고도 참 신자다운, 나아가 가장 성공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3/6/2007

조인구

2007.03.06 02: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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