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9:39) 신자는 눈이 아름다워야 한다.

조회 수 1099 추천 수 44 2007.03.21 19:28:07
운영자 *.104.225.110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행9:39)



다비다(도르가의 헬라식 이름)는 성경에서 구제에 가장 열심이었던 자의 대표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도 그녀를 본받아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고 이웃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을 하라고 독려하는 데에 많이 인용되어집니다. 그러나 과연 성경이 그녀를 단지 선행한 여인으로만 등장시켰을까요?

성경은 그녀를 “여제자”(36절)라고 호칭하고 있고 또 그녀를 따르는 과부들도 “제자들이”(38절)라고 표현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녀가 봉제 공장을 차려놓고 과부들을 직공으로 훈련시켰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선행과 구제를 복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동원한 것이지 단순히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섬기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가장 어렵고 힘든 소외계층의 하나인 과부들을 전도 대상으로 삼아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사역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섬겼다는 뜻입니다.

과부들은 그녀의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고”서 베드로를 급히 불러왔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주님의 권능에 대한 확신에 찬 행동이었습니다. 만약 그녀에게서 예수님을 소개받지 못했고 단지 인간적인 도움만 받았다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전혀 아닙니다. 불신자라면 이미 죽은 그녀를 살려 볼 엄두는 아예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비다는 구제를 한 것이 아니라 선교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정작 따져 보아야 할 것은 구제와 선행이 전도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지의 여부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주위의 불쌍한 이웃을 찾아가 사랑으로 섬기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지간한 신자라면 선행과 구제를 통해 전도하고 싶다는 소원이 있으며 또 열심히 도와주었는데도 전도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구제와 선행이라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더 중요한 요소가 다비다에게 있었다는 뜻이 되지 않습니까? 그녀에게서 구제와 선행을 하는 방법을 배우기 이전에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품성부터 먼저 배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관해 성경에 구체적인 기록은 없습니다만 추정이 가능한 한 가지 힌트는 있습니다. 다비다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눈을 가진 영양(羚羊)”이라는 뜻입니다. 그녀가 미인대회에 나가서 일등 할 만큼 쌍까풀이 지고 속눈썹이 길며 빨려 들어갈듯 한 매력을 지닌 큰 눈을 가졌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눈은 사물을 보고서 그 정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근본적인 기능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아름다운 눈이란 눈 자체의 외적 생김새가 아니라 얼마나 그 시력이 좋은지 여부에 달린 것입니다. 특별히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세밀하게 볼 줄 아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녀는 항상 사랑과 인자로 주위의 세밀한 부분까지 볼 수 있어서 남들은 지나쳐 버리는 불쌍한 사람들과 원수들까지 돌볼 수 있는 눈을 가졌던 것입니다.

또 영양이란 성격이 너무나 온순합니다. 다른 동물을 공격할 의사도 수단도 전혀 없습니다. 맹수를 만나면 그저 놀라서 이리저리 뛰며 도망만 다니다가 때로는 그 먹이 감으로 바쳐질 뿐입니다. 다비다는 한마디 불평 없이 아니 오히려 기꺼이 자기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남을 사랑하며 섬긴 온유한 여종이었던 것입니다.  

과부는 당시는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는 대표적 계층입니다. 성경에 과부와 고아를 신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심지어 교회가 과부를 어떻게 구제해야 하는지 그 규정(딤전5:3-16)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다비다는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과부들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것도 속옷과 겉옷을 각 사람에게 다 만들어주면서 말입니다. 과부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먹는 것이 입는 것보다 더 시급하게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과부들이 먹을 것을 보태주어서 고마웠다고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미 그 문제는 아무 불편이 없을 정도로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과부들로선 패션쇼에 나가거나 잘 차려 입고 남자들을 유혹해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당시의 겉옷은 지금으로 치면 침구(寢具)에 해당합니다.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출22:26,27) 불쌍한 여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었다는 의미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성경은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39절)이라고 말합니다. 다비다가 혼자서 그 옷을 다 지은 것이 아니라 과부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과부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자기의 구제 사역에 동참시킨 것입니다. 신앙공동체를 형성한 후에 제자훈련반을 만들어 전임사역자로서 하나님의 딸들을 양육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과부는 사회적으로 완전히 천대받고 살아갈 길이 막막해 거지나 창녀가 되어 인생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도 그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만든 것입니다. 다비다는 그들을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딤전5:5)들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예수의 참 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불쌍한 과부들에게 일용할 양식과 의복과 주거문제 뿐 아니라 그들의 영혼에도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나아가 새 생명을 받은 자들이 이전의 자기들처럼 흑암과 절망에 사로잡혀있는 자들을 살려내는 일을 맡아 하기까지 변화시킨 것입니다. 다비다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가 누룩처럼 조용히 번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가련한 처지에 빠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부터 말입니다.

신자는 다비다처럼 아름다운 눈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볼 줄 아는 눈이어야 합니다. 이 땅에선 자신이 완전히 절망적인 신분이었지만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서 자기 인생부터 믿음으로 새롭게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어떤 어려운 환경과 비천한 신세에 빠져 있더라도 사람과 세상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자비와 권능만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남들의 결점과 허물과 잘못을 지적해내는 데 빠른 눈이 아니라 절망과 죄악과 고난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의 영육간의 필요를 정확하고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눈이어야 합니다. 그 불쌍한 자들을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이끌고 와서 그들의 인생까지 새롭게 바꾸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속옷과 겉옷을 짓는 공동체를 형성해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아픈 곳을 싸매줄 줄 알아야 합니다.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님께만 의지하여 서로 고침을 받으며 날마다 함께 아름답게 지어져 가야 합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온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1-24)

요컨대 신자가 가꾸어야 할 아름다운 눈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눈이어야 합니다. 혹시 신자임에도 세상의 쾌락과 풍요와 형통을 먼저 바라보고, 또 주위 사람들의 허물부터 지적해내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크고 매력적인 눈을 가졌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나 추한 눈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당신의 눈이 아름답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3/22/2007

정순태

2007.03.22 01:43:20
*.95.73.2

아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신 눈은 주님의 눈입니다!
가장 낮은 눈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높은 눈을 가지려 하고 높은 곳만 바라보려는
우리의 눈을 하루빨리 고침받아야 할 것 같기만 합니다. ^^

낮은 곳(인정받지 못하는 그늘진 곳)을 통하지 않으면 결코 높은 곳(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이 밝혀 주시는 진리(바늘귀를 통과해야 하는 낙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

조인구

2007.03.22 02:37:13
*.74.10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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