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3:19-23) 아침마다 쓸개를 핥는 신앙

조회 수 1012 추천 수 30 2007.06.20 19:25:50
운영자 *.104.231.208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3:19-23)



사자 성어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말이 있습니다. 섶에 누워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원수(怨讐)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이릅니다. 춘추시대에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와의 전쟁에 져서 오나라의 속령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패배의 치욕을 상기한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구천은 실제로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 20년 후에 오나라 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그 굴욕을 씻었습니다.

바벨론에게 멸망당해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유다의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 환난과 치욕의 세월을 기억하며 비탄의 시를 기록했습니다. 일종의 와신상담의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월왕 구천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회상했습니다.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스스로 노력하여 복수를 노렸지만, 그는 쑥과 담즙(쓸개즙)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성실에 감사했습니다. 그 환난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것일 뿐 아니라 당신의 무궁하신 긍휼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같은 와신상담이지만 불신자와 신자의 그것은 이처럼 다릅니다. 과연 우리도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실패와 환난을 회상해 볼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매일 아침마다 잊지 않고 더욱 새롭게 말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 앞에 간구하는 내용은 솔직히 이와는 다른 것이지 않습니까? 매사에 형통할 수 있도록 매일 새로운 축복으로 부어달라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게 구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 또한 주의 성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아름답게 운행하며 당신의 백성을 은혜 가운데 인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군인이 군대에서 성실히 복무하거나 교수가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듯이 하나님으로선 당연히 당신의 할 바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생각하는 주의 성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지은 죄로 따지면 유다는 진멸되어 마땅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환난 가운데 있는 당신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 아니 신자가 하는 짓을 따지면 매일 죽어도 싸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그런 사실만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심령으로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라고 했습니다. 환난의 쓰라림은 육신적으로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중심에서 곰곰이 회상해 보면 그런 환난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 자를 오히려 죄에서 건져 당신의 성실과 의지로 언젠가는 당신이 바라는 모습이 되도록  날마다 자기에게 간섭하고 섭리하는 그분의 은혜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현실의 실패에 대해 세상 사람에게 이를 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환난에 대해서도 하나님에게 의심 내지 불평하거나 어서 빨리 끝내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주님의 본심을 확실하게 알아채었습니다. “주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심지어 그는 그런 환난을, 단순히 인간의 실패나 세상의 방해나 자연 재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주로 죄에 대한 징계로 오는 환난을, “사람의 젊었을 때에” 당하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합니다. 젊었을 때에 세상의 쾌락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혈기 왕성할 때에는 죄를 지을 가능성이 높기에 하루라도 빨리 주의 성실하심 즉, 징계 가운데 있는 주의 본심이 어떠한지 깨닫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침마다 새롭게 다져야 할 소망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원대하고도 거창한 계획입니까?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는 손쉬운 해결책을 발견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그것들을 울부짖으며 아뢰어야 합니까? 가장 먼저 구하고 감사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의 긍휼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살려준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영원토록 감사해도 모자라며 날마다 회상해도 새로워야 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되기 위해선 바로 어제 지은  죄도 낱낱이 자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미쁘신 주님의 보혈로 그 죄를 씻어내어야 합니다.  

요컨대 어떤 죄를 지었어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아침마다 중심에 먼저 회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죄를 지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신자는  영원토록 취소될 수 없는 그분의 은혜 가운데 들어와 있음을 상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른 신분으로 바뀌어 주님과 함께 거룩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음을 잊지 않고 실제로 그것을 행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지은 어떤 죄라도 용서해주는 이유는 오직 우리로 신령한 자가 되게 하여서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되었기에 무슨 짓을 해도 무한정 귀엽기만 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유다를 바벨론에게 망하게 했듯이 우리의 죄가 당신의 인내의 한도에 다다르면 반드시 엄중한 징계를 내립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구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언약 관계는 절대로 어떤 손상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자가 아침마다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쓸개가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날마다 내 신념을 점검하여 내 소원을 의지적으로 더 확실하게 붙드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에 찌들은 연약하고 추한 존재인지 발견하여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회상하고 붙드는 것이 믿음의 출발이자 끝입니다. 그래서 그 동일한 은혜를 주위에 나누어서 이 땅에 주님과 함께 그분의 나라를 내 바로 주위에서부터 확장 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현재 겪고 있는 실패와 환난에 대해 주위 사람들을 향해 절치부심하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사람들 보란 듯이 형통하기 위해서 주님의 능력만 간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날마다 쓴 쓸개를 핥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말입니다.

6/21/2007

조재춘

2007.06.21 01:37:56
*.29.165.87

참으로 하나님의 본심을 잊을때가 많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오직예수님만 바라보기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아멘!!

조인구

2007.06.21 02:38:21
*.234.94.86

아멘 아멘

국중후

2007.06.22 15:28:33
*.207.1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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