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11:5-7) 인간은 애굽귀향 하나님은 출애굽

조회 수 1155 추천 수 40 2007.08.20 19: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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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를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트려 없이 하리니 이는 저희의 계책을 인함이니라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호11:5-7)



출애굽기를 읽을 때마다 왜 이스라엘이 노예로 고생했던 애굽으로 자꾸 돌아가기 원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는 것을 목도하고 마지막에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큰 구원을 맛보고도 말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반드시 두 가지 측면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성경 독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와 당시의 이스라엘이 자꾸 돌아가려 했던 이유입니다.

우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은 스스로도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없을 만큼 불가사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이스라엘이나 현대인 할 것 없이 원죄 하에 태어났기에 그 영혼의 상태가 뒤죽박죽이라는 뜻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감정과 직관에만 의존해 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이 죽 끓듯 합니다.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결정을 너무 쉽게 자주 내리며 또 그에 따른 손해를 스스로 뒤집어씁니다. 요컨대 인간은 죄인 줄 알고도 죄를 짓는, 아니 즐기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기도 매번 그러면서 자기만은 안 그런 척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에 비해 자기는 고상한 축에 끼인다고 믿습니다. 현대의 신자도 알게 모르게 자꾸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시도합니다. 엄격히 말해 당시 이스라엘이 이해되지 않기 보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는 우리가 더 이해하지 못할 존재입니다.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런 시도가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심지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고 또 실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간단한 예로 인격적으로 존경받으며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있던 목사가 불륜이나 금전 스캔들로 낙마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하지 않습니까?    

약 10여 년 전에 나온 "Shawshank Redemption"(쇼생크 탈출)이라는 유명한 영화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죄수가 만기가 되어 출소했지만 감옥 생활이 그리워 일부러 죄를 짓고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처럼 아무 자유 없이 노예와 비근한 삶을 사는 감옥에 우리 같으면 도무지 돌아갈 것 같지 않지만, 막상 동일한 경우에 처하면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물론 그 죄수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전과자라고 냉대하고 또 형기를 보내는 동안 사회가 너무 바뀌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 주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한 꺼풀 더 벗기면 감옥 생활이 더 편하고 좋았다는 생각도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굽에선 노예 신분으로 자유는 분명 없었지만 일단 먹고 사는 일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비록 날마다 반복되는 중노동에 시달려 육신적으로는 고달팠지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른 걱정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틀림없이 애굽이 노예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려고 때때로 향락의 잔치도 베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막상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와 보니까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자유는 있는데 먹고 사는데 고통이 따랐습니다. 광야의 뙤약볕과 찬 서리는 견디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수시로 마라의 쓴 물 또는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바위 길이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고난이 하나 끝나면 더 큰 환난이 닥쳤습니다. 어찌 아론 같은 제사장인들 애굽이 그립지 않았겠습니까?
  
인간은 환난과 경사가 겹치는 기복이 많은 인생보다는 무사 무탈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거룩하게 변화되고 그분의 뜻을 주위에 실현하며 사는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누가 자기를 주관하든 먹고 사는 것에 힘들지만 않으면 그만입니다. 다른 말로 먹고 사는 일에 방해가 되면 하나님이라도 언제든 배반하는 존재입니다.

거꾸로 하나님을 믿는 주된 이유도 먹고 사는 일에 큰 어려움만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대박 같은 은혜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액땜만 해 주시면 제가 알아서 열심히 믿고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도 젓과 꿀만 흘러야지 거인 같은 가나안 족속과 싸워서 정복해야 한다면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육신의 안락한 생존만이 그 인생의 목표입니다.

만약 인간이 그저 물질에서 우연히 진화된 존재라면, 아니 창조 되었으되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고 일반적인 동식물처럼 만들어졌다면 육신의 생존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어떤 다른 고상한 삶의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바꿔 말해 아무리 화려하고 풍부하게 먹고 마셔도 오직 생존 목적만 갖고 인생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짐승 내지 물질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생으로 환난이 겹치게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즉 절대로 생존만을 목적으로 사는 인생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형상을 회복하여서 거룩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여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도 함께 거룩하게 변모시키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항상 애굽으로 돌아가길 내심 원하지만 하나님은 일단 당신께서 출애굽 시킨 신자만은 절대 애굽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신자마저 애굽을 막연하게 아쉬워하는 정도를 넘어선다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나아가 그런 자들더러 아무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해도 막무가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백성 아닙니까? 그것도 너무나 큰 은혜를 받은 백성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애굽을 그리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출32:8)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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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배은망덕한 백성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앗수르를 통해 심판을 받게 하더라도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이유를 격한 감정을 표출하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8,9절)

네 번이나 “어찌”라고 강조했습니다. “너희를 광야로 인도하고 가나안에 장대한 대적이 버티게 한 것이 어찌 너희를 멸하려는 뜻이겠느냐? 절대 아니지 않느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눈앞의 재앙이 아니라 장래의 평안이라는 것을 제발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긍휼이 넘치는데도 그것을 몰라주니 속이 불붙듯이 탄다고 했습니다.  

그 안타까움이 쌓이고 쌓여서 결정적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 홍해를 건넌 그분의 백성입니다. 광야의 쓴 물이 눈앞에 있어도 세상의 대적이 아무리 장대해 보여도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실패케 하지 않습니다. 단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만 없다면 말입니다. 혹시 아직도 무사 무탈한 인생이 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면 사단의 종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뜻 밖에 안 됩니다.

8/2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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