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3:17,18) 어떻게 자유해질 수 있는가?

조회 수 1037 추천 수 27 2007.10.24 19:55:54
운영자 *.104.228.190
어떻게 자유해질 수 있는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광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7,18)


모든 인간이 이 땅에서의 삶에서 평생을 두고 바라는 것 하나만 들라면 아마도 자유해지는 것일 것입니다. 죄, 고통, 상처, 미련, 탐욕, 질병, 궁핍, 염려 등 자신을 묶고 있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해방을 갈구하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의사대로 인생과 삶이 진행되어지지 못하는 모든 내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 받지 않고 스스로 자존하겠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인간의 육신을 입은 한에는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장차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완전한 영광의 형상으로 화하여만 가능한 일로서 예수님의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신자들에게만 궁극적으로 허용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 들어와 있는 신자는 비록 완전하고 영속적이지는 못해도 이 땅에서부터 얼마든지 자유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여 대박 같은 응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자 안에 거하는 주의 영의 인도에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본문대로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아야만 합니다. 천국에서 하게 될 모습을 미리 시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율법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맞대면하면 죽을 것을 염려해 쳐다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곧 없어질 의문에 쓰인 영광도 바로 보지 못할 만큼 인간은 죄인입니다. 앞으로 그리스도가 오면 율법의 정죄의 역할이 십자가의 영광으로 대체될 것이므로 사람들로 의문에만 주목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부터 주의 영광을 수건을 벗은 상태에서 본다는 것은 율법 대신에 십자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신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지 않아 궁극적 심판에서 자유해졌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 이후의 삶의 능력이 오직 십자가에 근거해야 합니다. 예컨대 신자는 성경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읽어야 합니다. 복음을 알고도 율법적이고 형식적인 신앙 태도를 유지해선 수건이 아직 벗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자유하는 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신비하고 초월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인 신앙생활로 인해 자꾸 윤리적 죄책감에 사로잡히거나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묶여 있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더 이상 사망과 정죄의 속박이 없음을 깨달아 그 은혜에 감사하며 더더욱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정죄란 시기, 자랑, 분쟁, 분노, 저주, 속박 등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죄가 없어진 복음은 당연히 그 반대로 관용, 겸손, 섬김, 자비, 사랑, 구원 등이 따릅니다. 따라서 구원 이전에는 사람들을 육체대로 대하고 또 다르게 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에는 모든 사람을 십자가를 통해 보게 됩니다. 하나 같이 주님의 긍휼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불쌍한 죄인임을 실감하기에 시기와 분쟁이 개입될 여지가 없어집니다.

요컨대 자유케 하는 주의 영이란 신자로 사랑하게 만드는 영입니다.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나눠주는 인간적 양심에 따른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다른 자에게 주의 영으로 자유함의 씨앗을 심어주는 사랑입니다. 혹시 인생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단순히 무소유를 지향해선 안 됩니다. 십자가에 자신을 철저하게 죽이고 그분의 새 생명으로 채우는 길, 그래서 이웃에 그 사랑을 실천하는 길 말고는 없습니다.    

10/25/2007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878 (눅7:28) 왜 우리가 세례 요한보다 더 큰가? [7] 운영자 2010-11-05 16385
877 (눅17:15,16) 두 종류의 "Why me?" [8] 운영자 2007-01-25 3998
876 (잠30:7-9) 네 가지 종류의 사람 [4] 운영자 2007-04-19 3419
875 (고전7:14,15) 믿지 않는 가족을 어떻게 하나? [1] 운영자 2007-08-15 3115
874 (엡6:12) 영적 싸움의 진짜 실체 운영자 2006-01-02 2990
873 (학1:2-4) 하나님의 때와 인간의 때 운영자 2005-12-17 2422
872 (눅6:37,38) 후히 주어야 할 이유 [3] 운영자 2010-10-06 2418
871 (습 1:7,12)찌끼같이 가라 앉았는가? [3] 운영자 2005-12-16 2327
870 (딤전 6:17,18) 정함이 없는 재물(財物) 운영자 2006-01-07 2248
869 (말 1:2-3) 신자의 불만(1)-하나님의 사랑 운영자 2005-12-20 2190
868 (말 3:8,9) 신자의 불만(8)-십일조 도적질 운영자 2005-12-28 2081
867 (벧전 1:6,7) 믿음으로 넉넉히 승리하는 비결? [2] 운영자 2006-01-06 2059
866 (욥21:22)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는 신자 [4] 운영자 2006-11-08 2032
865 (말1:6-7) 신자의 불만(2)-하나님을 멸시 [1] 운영자 2005-12-21 2015
864 (말2:17) 신자의 불만(6)-괴로운 하나님 [2] 운영자 2005-12-26 2007
863 (슥7:4-6) 금식도 우상이 될 수 있다. [2] 운영자 2005-12-19 1989
862 (말1:7-9) 신자의 불만(3)-하나님을 더럽힘 [1] 운영자 2005-12-22 1974
861 (말 2:11-15) 신자의 불만(5)-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 [1] 운영자 2005-12-25 1971
860 (말1:13,14) 신자의 불만(4)-번폐(煩弊)한 하나님 [1] 운영자 2005-12-24 1954
859 (약4:1-3) 교회 분쟁의 해결책 [1] 운영자 2006-01-05 1944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