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4:7) 왜 독재자가 칭송받는가?

조회 수 1239 추천 수 41 2007.10.30 19: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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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독재자가 칭송받는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나치 독일 시절 폰 브라운 박사의 세계 최초 K-2 로켓 같은 것을 인류 문명의 위대한 유산으로 꼽는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만들어질 당시는 사실상 독재 권력을 더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지 인류의 참 복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무고한 사람을 더 많이 살해하려고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결과적 혹은 파생적으로 인류 문명사 발달 과정의 한 축을 담당한 효과는 있기에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 받습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영구적 가치를 가질 수, 아니 최소한 선악 간에 선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집트 피라미드나 중국 만리장성 등 세계 7대 불가사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갖고 있는 독특한 창조성과 출중한 지혜로 비전문가에게는 상상조차 힘들며 아예 불가능해 보이는 일(不可思議)을 이룬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도 과연 그 일이 불가사의하게 여겨질까요? 인간이 그런 것들을 바라볼 때에 가장 먼저 인간에게만 그만한 지혜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와 경배부터 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역할모델(Role Model)로 선망을 받는 사람들 중에 과연 영원한 가치를 실현한 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예컨대 타이거우즈가 젊은 나이에 엄청난 명예와 부를 일궈냈지만 작대기로 아주 작은 공을 그에 걸맞은 작은 구멍에 누가 빨리 넣느냐 시합해서 이룬 것뿐입니다. 물론 그가 내로라하는 프로들과 경쟁해 수십 개 대회에서 우승한 발군의 실력은 대단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평생을 두고 아이들 구슬치기 같은 일만 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차라리 새벽마다 거리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의 일이 더 가치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평가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로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한 인간의 가치를 오직 겉에 드러난 모습으로만 평가합니다.  인간 내면의 참 된 정체성은 전혀 따지지 않습니다. 속이 어떠하든 겉에 보이는 그릇이 좋아 보이면 그 속에 담긴 것도 좋다고 간주해 줍니다.

오죽하면 수 만 명의 어린이를 강제 동원해 기계로 전락시킨 매스게임조차 기립박수하며   독재자의 폭압으로 이뤄진 눈에 보이는 업적만 칭송하겠습니까? 콜로세움이나 로켓 폭탄과 그 근본적인 궤를 같이 하지 않습니까?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선악 간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 속에 살아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따지는 뜻입니다.

신자는 달라야 합니다. 속에 감춰진 보배, 내면의 참 정체성으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단순히 다른 피조물보다 뛰어난 지정의로 피조세계의 진선미를 확장하는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정체성까지 아름답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콜로세움을 세운 사람도 분명 건축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또 콜로세움 안에서 검투사끼리 혹은 맹수와 피비린내 나는 싸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때로 아름다운 예술 공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피의 역사와 반쯤 남은 벽돌 건물뿐이지 않습니까?

인간 내면의 참 정체성이 영원한 가치를 드러내려면 결국 그가 영원한(immortal) 분에게 속하는 수 말고는 없습니다. 인간 혼자서는 연약하고 불안정하며 한시적(mortal)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원한 가치를 절대 창출해 내지 못합니다. 모든 선한 것은 오직 그분으로부터만 옵니다. 칠대 불가사의를 인간끼리는 영원하다고 평가할지 몰라도 영존(永存)할 수 없고 또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박수칠만한 일인지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신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 보배가 속에 심겨져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만 인정하고 믿어선 안 됩니다. 참 정체성이 오직 그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이전과 정반대로 완전히 달라졌다는 확신이 심겨져 있고 그 바탕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삶이 따라야 합니다.

속이 겉을 결정하는 법이지 겉이 속을 절대 좌우하지 못합니다. 신자가 정말 신자다운지는 자기 속의 예수님의 은혜를 얼마나 세상에 드러내느냐에 달렸을 뿐입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그 속에 영원한 가치가 없습니다. 속에 든 것이 없으니까, 사실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의 영이 들어 있으니까 그 거짓된 속을 겉으로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참 정체성을 판단하는 성경적 준거는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심히 아름답게 창조되었으나 죄로 완전히 부패한 존재라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진정으로 겸비하게 엎드리면 천하보다도 귀한 당신의 자녀로 바뀐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전자는 불신자 즉, 아직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이며 후자는 신자 즉, 용서 받은 죄인입니다.

불신자는 그 속에 예수라는 빛 대신에 사단이라는 흑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또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적 업적만으로 서로를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 선하고 의로운 업적을 많이 쌓을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일이 하나님과는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가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속에 있는 보배로만 밖도 평가하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의 정체성이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했는지 여부로만 결정되듯이, 자기 밖의 사람과 사물과 사건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에 속해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지를 따져서 대응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선 좋아하셨든 그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라도, 간혹 우리의 죄악이나 사단의 흉계가 숨겨져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간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반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사람들은 절대로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7) 유대인과 로마인들 모두 비천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겉모양만 보고 멸시 천대하다 결국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마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습니다.”(시103:10)

이런 큰 은혜를 입은 신자로선 그 은혜를 주위에 나눠주어야 합니다.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강요하기 이전에 주님이 우리를 대하듯이 우리 또한 불신자들을 대해야 합니다. 절대 그들의 겉모습대로 판단하지 말고 속에 있는 참 정체성, 즉 아직도 사단에 붙잡혀 있는 너무나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임을 알아 눈물로 그들의 영혼을 감싸 안아야 합니다.

바꿔 말해 만약 사물이 단순히 물질로 또는 7대 불가사의가 아주 위대해 보이거나, 사건은 우연들이 겹친 모순으로 다가오고, 특별히 불신자가 전혀 불쌍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아직도 신자로서의 참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신자가 능력의 심히 큰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하되 그것을 비록 자기 같은 비천한 존재를 통해서라도 세상에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골고다 십자가뿐임을 확신하지 않는 한 그 속에 예수라는 보배는 없는 것입니다. 그 보배는 신자의 처음부터 끝까지 낮아짐과 남을 살리기 위한 자신의 죽음으로만 보배로서의 가치를 발할 뿐입니다.  

10/3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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