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7:11) 후회와 회개

조회 수 1313 추천 수 34 2008.01.08 17: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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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와 회개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7:11)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먼저 보낸 편지에서 그들이 범한 잘못들에 대해 엄정(嚴正)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망은 그들의 기분을 잠시 상하게 했지만 곧바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그들 사이에 불러 일으켰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안위는 전혀 상관 않고 오직 교인들의 영적 유익만을 염려하여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권면했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즉 ‘회개’(悔改)는 불신자가 단순히 도덕적 양심에 바탕을 두고 잘못을 ‘후회’(後悔)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본문이 설명하는 바대로 고린도 교인들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면 그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 변화를 7가지로 구분하되 ‘얼마나’라고 수식하여 눈에 띄게 확실히 바뀌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들로 간절하게 했습니다. 이전에는 바울을 무심하게 대했지만 이제는 그를 영적인  지도자로서 존경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잘못을 범할 때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거나 잊었지만 이제는 그분을 다시 생각하고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에는 잘못을 빌고 그 관계를 바로잡을 인격적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단순히 잘못된 결과가 아쉬워서 스스로 반성하는 것에 그치는 후회와는 다릅니다.

둘째는 변명하게 했습니다. 이전에는 범죄인줄 몰랐거나 오히려 즐겼다면 이제는 아무리 작은 잘못이라도 간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보낸 디도에게 용서를 빌었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들 잘못을 입술로 고백하며  죄를 사해달라고 간구했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 변명하기 바쁜 후회에 비해 회개는 죄를 세세하게 시인하고 피해자뿐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분하게 했습니다. 죄를 묵과했던 자신의 영적인 피폐함에 대해서 통분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로 또 다시 육신의 본성과 세상과 사단의 시험에 넘어갈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에 대해 너무나 안타깝고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실패나 허물이 자기 자존심을 얼마나 상하게 했는지 억울하고 분통해 하는 후회와는 달리 회개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분을 낼 정도로 철저하게 점검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두렵게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도인 바울의 권면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개인에게라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서서  그분 뜻대로 살겠다는 헌신이 새로워진 것입니다. 후회는 혹시라도 피해자로부터 올 복수나 견책이 자기에게 미칠 손해만 두려워합니다. 반면에 회개는 자기 전부를 바쳐서라도 상대에게 보상해주고 용서를 구합니다. 즉 하나님은 경외로 사람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사모하게 했습니다. 죄를 범하기 전에 가졌던 상대와의 친밀하고도 아름다운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저 하는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간절하게’ 한 것이 인격적 대상을 다시 사랑하게 된 것이라면 “사모하는' 것은 그들과의 관계를 정상으로 복원하려는 것입니다. 반면에 후회는 자신이 입은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피해만 만회하려 듭니다.

여섯째로 열심 있게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사도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교회 내의 거짓 선생과 그의 대적자들을 적극적으로 물리치고 그의 사도직을 변호함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해 나가는 사역에 함께 힘을 보탠 것입니다. 요컨대 신자란 사도 아니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열심을 내는 자입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오직 자기가 주인인 자신의 왕국을 변호하고 확장하는 일에 모든 것을 다 겁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아예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벌하게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훈계와 권면의 대상이 되었던 범죄자들을 징계했습니다. 성도들 간에 죄악이 전염되는 것을 차단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전인 교회가 죄와는 절대로 공존 내지 상종할 수 없음을 대내외적으로 확인시킨 것입니다. 나아가 올바른 신자라면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아무리 자신이 잘못했어도 남이 문제 삼으면 오히려 본인이 먼저 화를 내며 어떻게 하든 벌을 피하려 듭니다.      

이런 일곱 가지의 변화를 거친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범죄한 일에 대하여 일절 자신의 깨끗함을 드러내었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신자가 하는 회개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 아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만 근거한 완전한 사죄가 이뤄져야 합니다. 단순히 감정적 양심적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으로부터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사죄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진 내면이 신의 품성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과 인생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덕을 선전하며 누구라도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신자의 회개는 단순히 도덕적 종교적 반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심령에 처절한 반성이 생겼어도 혼자 노력하여 스스로 의로워지는 것은 기독교와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부를 꺼내 놓아 그분께서 깨끗케 해주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신자 쪽의 공로와 자격은 단 하나도, 심지어 회개했다는 것조차도 조건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의 의가 덧입혀져야 합니다. 또 그 새로워진 모습으로 이웃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신령한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바울이 먼저 보낸 훈육의 편지와 지금의 편지 둘 다 불의를 행한 자나 그로 손해를 입은 자만을 위해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의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역사에 바탕을 둔 참된 회개에 이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자신을 위해 변명한 가운데도 자신의 온전함이 혹시 자랑으로 오해될까 걱정했었는데 성도들이 그 권면의 참 뜻을 제대로 이해하여 회개함으로써 이젠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회개를 촉구한 바울에게 원망과 불평 대신에  오히려 감사를 표했습니다. 당연히 회개를 촉구한 바울도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참 회개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특징은 죄 지은 자나 피해를 입은 자 모두, 또 권면하는 자나 권면을 받는 자 공히 영적 유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참 회개가 이뤄지면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하게 임합니다. 잘못을 범하면 당신은 회개를 합니까? 후회로 그칩니까?

1/9/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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