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았다는 의미는?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창38:1,2)
유다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넷째로 가장 의로웠습니다. 동생을 죽여 피를 볼 이유가 없다고 다른 형제들을 설득해 요셉을 살리고 대신에 노예로 팔리게 했습니다.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친동생 베냐민을 두고 두 번이나 형들을 시험했을 때에도 자기 생명을 담보로 요셉과 아비 야곱을 설득하였습니다. 창녀로 분장한 며느리 다말과 관계한 큰 죄를 본의 아니게 범했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자 바로 자기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본문에도 그의 의로운 면을 나타내는 힌트가 나옵니다. “그 후에 유다가 형제에게서 내려가서”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사건 후에 형제들과 떨어져 살고 싶었다는 뜻입니다. 장남 르우벤은 아비의 첩과 통간하는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둘째 셋째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는 여동생 디나 사건으로 잔인한 살인죄를 범하여 이방 족속들 사이에 믿음의 가문에 “냄새를 내게” 했습니다. 실질적인 장남이었던 유다는 형제들과 자신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죄악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틀림없이 아비가 날마다 없어진 요셉을 애통해 하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자니 너무 안쓰러웠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야곱 가문, 당시로선 이 땅의 유일한 믿음의 가문에서 그 믿음을 이어갈만한 재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당시 지구상의 모든 사람 중에 하나님을 알면서 가장 의로운 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라도 범하지 않을 근친상간이라는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그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왔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지은 어떤 죄도 용서해주신다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뜻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죄책감을 덜어주는 안정제 내지 망각제 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셔야 합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의롭고 사람들에게 칭송 받아도 궁극적으로 의인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들 하지만 진짜 죄에는 장사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마저 간음한 후 그 정부의 남편을 죽였듯이 말입니다. 유다나 다윗이나 남들보다 훨씬 성정이 의롭고 믿음도 좋지만 정말 구원 받느냐 못 받느냐는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선택과 은혜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다가 며느리인 줄 미리 알았다면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충분한 원인 제공은 했습니다. 계대 결혼을 시켜주어야 할 며느리가 혹시 셋째 아들에게마저 또 화를 미칠까 염려하여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근친상간의 죄 자체보다는 그가 하나님보다 아들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잘 봐주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불신자의 죄는 영혼의 본성이 왜곡 부패되었기에, 신자의 죄는 거듭난 영임에도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영과 교통이 중단 되었기에 파생됩니다. 요컨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모습으로든 단절되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사람은 죄와 연관해 오직 두 종류로만 나뉩니다. 성정이 악해 죄를 많이 짓는 죄인과 성정이 의로워 적게 짓는 의인의 구분이 아닙니다. 죄는 모든 인간 곁에 언제 어디서나 붙어 다닙니다.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와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인정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그 구분의 분명한 기준입니다. 다른 말로 구원 받았다는 의미가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죄란 하나님과의 단절로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구원 이후도 자기 노력보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 구하라는 것입니다.
6/3/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