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예대로 하나님을 보라.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갈3:15)
수사학에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짐짓 의문 형식으로 제시해 독자 스스로 수긍케 하는 설의법(設疑法)이란 표현방식이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자주 사용했는데 본문은 의문문은 아니지만 동일한 기법입니다. 말하자면 “사람끼리 맺은 언약도 쉽게 폐하거나 더하지 못하는데 하나님 당신께서 하신 언약을 그럴 리는 절대 없지 않느냐?”고 묻는 셈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십자가 복음만으로 구원이 충분하다고 당신께서 약속하셨는데도 유대주의자들은 거기에 율법을 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에 인간이 수저를 하나 더 놓은 정도가 아니라 감 놔라 팥 놔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못 믿는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그분을 조종하고 심지어 대신하려는 엄청난 죄입니다. 단순히 구원을 좀 더 근사하고도 충실하게 받고 싶다는 충정 내지 열성이라고 좋게만 봐줄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결국 구원을 절대 사람의 예대로, 즉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되고 수긍이 가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욕망과 헛된 교만을 쫓아 사단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 그분을 배반했습니다. 그분은 심히 좋게 창조하여 당신의 대리자로 삼아 이 땅을 아름다고 거룩하게 다스리게 하려든 인간을 사단에게 빼앗겨 버렸습니다. 인간은 가해자이며 그분은 피해자입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가 먼저 제안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무런 손해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마음속에 일말의 원망, 분노, 저주, 찌끼 없이 기꺼이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죄에 빠져 자기와 원수 되었음에도)을 이처럼(독생자를 죽이실 만큼) 사랑하사” 이 땅에 스스로 육신의 모습으로 먼저 오셔서 인간과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그것도 인간이 저지를 죄 값을 당신께서 십자가에서 전부 감당하시고서 말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한 손해와 책임을 가해자 인간 대신 도리어 피해자인 당신께서 보상을 다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구원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가능한 일이기라도 합니까? 용서와 화해로는 더 이상 나무랄 데 없는, 따로 더 보탤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인간 세상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완전하고도 진정한 사랑에 의한 것 아닙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니 그 전에 노아 심지어 아담이 타락한 직후에 그렇게 하겠다고 당신께서 약속하셨던 것을 때가 차매 약속한 그대로 이루셨지 않습니까? 인간은 그 완벽한 은혜를 오직 감사와 경외함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구원이 어찌 이성과 지성에 반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진정 십자가 은혜 앞에 겸비해졌다면 얼마든지 이해되고 수긍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또 그 진리 안에서 그동안의 죄의 형벌과 종교적 의무와 영혼의 눌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자꾸만 십자가 위에 더 보태려는 것은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원죄 가운데 즉, 예수님의 은혜 밖에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보다도 이성과 지성을 더 중시하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 율법을 더 아끼는 유대인에겐 거리끼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우리라고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문제입니다. 신앙을 자꾸만 사람의 예대로 접근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고달픈 일이 생기면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는가? 활동을 쉬고 있는가? 그저 안달복달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면서까지 구원해주신 그 온전한 사랑을 과연 인간이 빼거나 더할 수 있습니까?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우리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당연히 범사를 그분의 예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컨대 구원뿐 아니라 그 후에도 언제 어디서든 십자가를 놓쳐버리면 쉽게 유대주의자와 똑같은 우를 범할 것이란 뜻입니다.
6/4/2008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주제는 평상시 저도 생각하고 묵상했던
부분이나, 이렇게 깊숙히 접근하여 철저히 내 마음 속 밑바닥까지
파헤쳐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귀한 가르침에 진정 감사를 드립니다.
이선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