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1-3) 소명을 붙들고 기도하지 못해도

기도 시리즈 (15- 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1-3)

 

신자가 반드시 해야 할 기도

 

지난주까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기도를 아홉 번,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다섯 번, 총 14번에 걸쳐서 살펴봤습니다. 기도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신자들이 그동안 주로 기도의 능력과 열매만 강조하는 가르침만 받아왔기에 정작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본질을 많이 놓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무슨 제목이든 끈질기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된다고 아주 단순하게 적용하고 치우고 있습니다. 기도의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간단히 리뷰하면서 마지막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선 가장 먼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 바탕에서만 기도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부터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했음에도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그의 인생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갖고서 그가 처한 모든 상황을 주관해주심으로써 그의 믿음부터 성장시켰습니다. 그에 따라 그의 기도의 내용과 방식도 바꿔져나갔는데 자신의 현실 문제 해결을 간구하는 데서 점점 제사장과 선지자적인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기 생명보다 귀한 외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주저 없이 순종할 정도로 믿음과 기도가 성숙되었습니다.

 

그의 기도의 성숙과정은 간략하게 ‘나에게 달라’(give me), ‘나를 변화시켜 달라’(change me), ‘나를 쓰임 받게 해 달라’(use me)는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주기도문의 내용도 그 세 가지 기도뿐이라는 사실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기도하면 다 이뤄주신다는 예수님의 네 가지 약속에 대해 신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항들도 알아봤습니다. 그 넷은 첫째 합심해서 기도하라는 것과, 둘째 기도하기 전에 미리 받은 줄 믿으라는 것과, 셋째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과, 넷째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든 응답해주신다고 해서 신자가 소원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규정해놓은 범위에만 해당된다는 것을 배웠고 또 그렇게 하시는 주님의 목적도 살펴봤습니다.

 

지난 열 네 번의 설교를 결론적으로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신자는 반드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에서 가장 먼저 하늘에서 이뤄진 뜻이 땅에서도 이뤄지도록 기도하라고 강조했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라야만 이미 받은 줄로 믿고 합심해서 끈질기게 기도하면 무엇이든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대로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실천적 예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 이상으로 큰일을 한 사도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에 의해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진 대로 이방지역 곳곳에 교회를 세웠고 율법의 행위와 비교해서 예수님의 은혜의 구원진리를 확립하며 기독교의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나 깨나 땅 끝까지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고 또 자기가 세운 교회와 성도들이 굳건한 믿음 위에 서기만을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근거는 성령님의 간섭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 새사람으로 거듭났고 그 후로도 성령님이 내주해서 소명에 헌신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바울처럼 실제로 거듭난 신자로 주님을 따라 살면서 자신을 통해 십자가 복음이 더 크게 실현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소명의 뜻도 모르는 신자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이 바울 같은 사도들에게만 특별한 사명을 위임 했고 또 그래서 십자가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했지만 일반 신자에게 바라는 바는 다르다고 여깁니다. 심지어 아직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신자들도 꽤 됩니다. 단순히 교회에 충성 봉사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의 전부라고 간주합니다. 기도도 자신의 현재 처한 문제와 고난을 해결 받거나 자기가 소망하고 계획한 일을 잘 수행하려는 목적으로만 행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임 사역자든 일반 신자이든 하나님께 받은 소명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바울과 비교해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할 내용과 처한 상황만 다를 뿐입니다. 거기다 공적으로 종교핍박이 없는 한국과 미국 같은 곳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올바르게 유지하려면 알게 모르게 온갖 시험 장애 훼방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엄격히 말해 믿음의 여정은 소명의 실현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고는 그 성숙은커녕 시작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불려 나올 때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다시 살펴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선 모든 신자는 신자가 될 때부터 이미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부터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소명이란 영어로는 calling이며. 한자어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려고 부른다는 소(召)에 명령이라는 명(命)을 붙여서 특정 목적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실현하라는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지시받은 내용이 바로 자신의 소명이 됩니다. 갈대아 우르에 있던 그에게 여호와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절)고 명하셨습니다. 그 후의 2-3절은 그 소명대로 실천했을 때에 하나님이 이뤄주실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기도에 적용하면 1절을 잘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그럼 그 응답은 2-3절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생활에 충성 봉사하는 것이 신자의 소명이 되려면 교회 밖에 있다가 교회 안으로만 부름 받은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 종교적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다가 교회 안에서 종교적 행위나 의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신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그것만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낸 곳은 갈대아 우르이고 그가 가야할 곳은 가나안 땅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전과 성막 밖에 있던 그를 그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그런 것들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떠나온 곳과 가야갈 곳의 현실적 상황에 전혀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두 곳 다 우상숭배로 배교하여서 도덕적 성적으로 극도로 타락하긴 똑같았습니다.

 

혹시라도 가나안 땅을 두고 여호와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3:8)으로 표현했다고 해서 아주 풍요한 땅이라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사백 년간 노예 살이 했던 애굽의 비옥한 나일 강 삼각주는 밀의 최대산지로 고대의 식량창고였습니다. 그와 달리 가나안은 양봉과 목축이 주업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황량한 광야에 사막기후라는 뜻이지 자원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한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더 중요하게는 앞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실 신정국가를 세워줄 것이므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국가 애굽에서의 삶과는 그 질과 기쁨이 전혀 다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전혀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당신께서 지시할 땅으로만 가라고 했습니다. 일상생활의 여건만 따지면 떠나온 바벨론 지역이 가나안보다 훨씬 더 발전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현실적으로는 훨씬 더 열악한 환경으로 가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 밖의 큰 도시에 있던 그를 불러내어서 다시 교회 밖의 빈민촌으로 돌려보낸 셈입니다.

 

결국 그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은 그 전에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르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반드시 당신의 지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 민족, 장소, 여건, 인종, 문화, 관습 등과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행해야만 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 대적했거나 잘 몰랐던 자리에서 그분을 만나서 알게 된 사람으로 세상과 사람들 앞에 서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떠나야 할 본토는 나라, 인종, 민족, 언어 등 그의 신분적인 정체성을 뜻합니다. 친척은 그가 살아가는 사회적 배경과 쌓아온 인간관계입니다. 아비 집은 개인적인 삶을 책임져 주는 자원과 근거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특유의 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하는 표현법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굳이 세분해서 구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마디로 과거의 삶에서 완전히 떠나서 전혀 다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전의 삶에서 떠나라는 것은 그 때까지 자기 삶의 안전 풍요 만족 행복 등을 책임져주던, 정확하게는 그럴 것이라고 믿었던 모든 외부적 요소 등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것들을 우선적 집중적으로 추구하여 의존하려 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세상에서의 자신의 형통과 출세였으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뜻을 실현하는 것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하니까 반드시 혼자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 각자에 대한 완전한 계획과 뜻을 이미 마련해놓고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교제 동행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신자 한 사람만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대우해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므로 신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순전한 믿음으로 오직 그분 뜻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명의 실현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려면 반드시 두 가지가 전제 되어야만 합니다. 첫째로 이전의 삶이 철두철미 실패이자 헛된 것이라는 온전한 확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사람은 자기 지정의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며 그 중에서도 감정에 우선되기 쉬운 존재입니다. 어떤 대상이 싫지 않은 이상 굳이 버릴 이유는 없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좋다는 체험 내지 그런 확신이 서야만 합니다. 고대에 낯선 외국 땅으로 가족만 데리고 홀로 떠나는 것은 너무나 큰 위험을 동반합니다. 떠나는 곳이 너무 싫고 가야할 곳이 너무 좋지 않고는 절대로 쉽게 결단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아브라함에게도 분명히 그런 영적 실패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결단이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그가 떠나온 곳은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철저히 타락했고 특별히 우르는 도시 이름이 불이라는 뜻이듯이 사람을 산채로 불에 태워 우상에게 바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숭배의 온갖 추악하고 음란하며 폭력적인 죄악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다보니 영적으로 아주 괴로워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절대로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곳에서 내 인생을 허비하고 마치기는 죽기보다 싫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제발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이 죄악에서 구해주시옵소서”라고 구하고 또 구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영적인 찔림이 들고 기도하게 된 것부터 하나님이 그를 택하여 계속해서 그를 준비시키며 그런 생각을 심어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본문의 계시를 주었고 그도 그 부름을 받자 기쁨과 평강과 확신이 자기 심령에 충만히 채워졌을 것입니다.

 

모든 신자의 본질적 소명

 

지금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위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었을 때를 한 번 회상해보십시오. 그 전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오히려 대적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기만 높이려고 살았던 것들이 철두철미 헛되고 헛되었다고 절감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물론 사람들 사이에 온갖 잘못과 죄악을 저질렀고 도무지 그 죄를 스스로 씻을 길이 없음도 겸손히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구원의 은혜를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예수님처럼 정말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인생을 꾸려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성령님이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회심할 때에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진정한 회개가 속에서 봇물 터지듯이 분출합니다. 별다른 선행을 한 적이 없어서 아무리 따져 봐도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거저주시는 구원이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은혜로 다가옵니다. 이런 신기한 일이 어떻게 또 왜 자신에게 일어났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몰랐던 그 전의 자기와 알고 난 이후의 자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히 자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이전 삶이 너무 싫어졌고 또 이제부터 하나님이 지시 주관해줄 삶이 너무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스스로 만족하고 추구했던 세상의 모든 자랑거리들에서 완전히 떠나고 오직 하나님만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단순히 교회에 충성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인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었으나 범사를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분별 판단 실천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요컨대 모든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이전 삶에서 불려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가장 본질적인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연령, 직업, 인종, 경험, 신분, 지성 등과는 전혀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합니다. 그 후로는 하나님과 일대일 개인적으로 친밀한 교제와 동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방안으로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를 주셨고 무엇보다 어떤 고난에도 위로 격려해줄 인생의 동반자로서 인간이 아닌 성령 하나님이 신자에게 평생토록 내주해주십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는 예수님을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간섭해야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가능하므로 신자가 자기 지정의로는 인식을 못해도 예수님이 먼저 찾아와주셨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심을 하는 순간 예수님이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지금 나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고 있다는 체험적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껏 예수님과 그 가르침이 이해도 안 되고 까닭 없이 싫었는데 어느 샌가 너무 좋아지고 그분처럼 살고 싶다는 소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의 첫째가는 소명은 바로 하나님과 그 보내신 독생자 예수님을 아는 자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흔히들 예수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소명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목회자나 선교사 최소한 전도의 은사를 맡은 신자에게만 해당되지 자신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불신자들을 전도하고 싶어도 자신에겐 그런 은사는 물론 그럴만한 주접도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기독교가 신용을 너무 잃어서 예수 믿으시라는 말도 꺼내기 부끄럽고 두려울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전문 사역자의 몫이라고 치부해버립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신자라면 그 새로운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기쁘고 감사한지 절감합니다. 그래서 실천은 더딜지라도 바울처럼 십자가 복음을 다른 이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거듭난 체험이 없어서 새사람으로의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좋은지 아직 잘 모른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아직 소명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즉, 그분의 자녀답게 살고 있다면 자연스레 이웃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됩니다. 또 그런 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바로 바울처럼 소명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뀌어진 신분으로 기도하라.

 

그런데 문제는 지금껏 말씀드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신자라도 막상 기도하려면 자신의 문제에 집중 내지 우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죄의식을 가지는데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일단은 무엇이든 생각나고 소망하고 해결하고 싶은 일들을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 일을 그분께 의탁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주부라면 남편과 자식들의 문제를 위해서, 학생이라면 더욱 공부 열심히 하여 보장된 장래를 위해서,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실적을 올려서 좋은 인사고과를 받아서 승진하기 위해서, 자영업자나 사업가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소망하고 계획한 일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신자가 현실적 고난에 빠지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으시며 일부러 당신의 기분에 따라서 괴롭게 만드시는 분이 절대 아닙니다. 신자의 가정에 갈등과 환난이 생기거나, 신자 학생의 성적이 떨어지고 불량해지거나, 신자 직장인이 회사 업무에 열등하여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신자 사업자가 부도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그와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런 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살펴본 대로 아브라함도 당장에 닥친 현실 문제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도 그더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지만 그 지시대로 따랐을 때 현실 세상에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해준다고 약속해주었습니다. 영적인 평강과 기쁨 같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겠다거나 세상 최고의 종교가나 도덕군자로 세워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버린 것과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것이 사실상 같습니다.

 

본문 사건을 통해서 신자가 항상 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이전과 달라진 신분입니다. 신자의 육신은 현실적으로는 세상 안에 살아야 하지만 그 영혼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세상에 속해서 세상만 바라며 살아가는 불신자 때와는 달라진 이중적인 신분입니다. 세상 안에서 외적으로 의식주를 조달하는 일은 지금까지 방식대로 행하되 한 인격체 전부가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그분을 아는 사람답게 서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열방 앞에 복의 근원으로 서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덧붙인 것입니다. 당시는 여호와를 아는 사람이라곤 아브라함뿐이었으므로 그가 정말로 여호와를 아는 사람답게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성결한 삶을 살면 다른 모든 이들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닮게 지어진 흔적으로 기본적인 양심과 종교성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우상숭배를 하고 타락한 삶을 즐기더라도 아브라함이 살아가는 모습이 옳고 더 좋다는 것을 무의식중에라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이 성령의 간섭으로 우르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로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영적 찔림을 받았듯이 그들에게도 동일한 각성이 일어납니다. 그 타락한 시대에도 하나님의 택한 자였다면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삭의 신부 감을 구하러가면서 여호와께 진심어린 기도를 한 아브라함의 충성된 종 엘리에셀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종은 분명히 아브라함을 존경하며 자기 삶의 롤 모델로 삼았을 것입니다.

 

요컨대 아브라함은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자기만 높이지 않고 다른 이의 아픔을 보살폈기에 그들로부터 자기를 축복하게끔 이끈 것입니다. 쉽게 말해 현실 문제를 두고 기도할 수밖에 없어도 그 동기와 목적을 하나님이 맡긴 소명에 맞추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아브라함 본인이 아니라 그를 축복하는 자들을 축복해준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반면에 그를 보고도 왜 저렇게 바보 같이 사느냐, 세상 쾌락과 호사를 맘껏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배척하면 하나님도 배척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해준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다른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여호와를 알게 되고 그를 본받으려 드는 모습이 늘어남으로써 실현되었습니다. 자식들 또한 그의 그런 믿음을 본받을 테니까 후손들이 창성케 되어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주신 보상이 여전히 현실적 모습일지라도 그 안에 실현된 그분의 뜻이 다르며 아브라함이 그에 대해 반응하는 자세도 달라진 것입니다.

 

실제로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가정주부는 남편과 자식 현실적 문제들을 주부 자신의 욕심 감정 계획대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해선 안 됩니다. 남편과 자식 본인들이 정말로 원하고 그들에게 유익하게 되는 방향으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으로서의 목적과 방향을 잘 지켜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부터 하면서 말입니다.

 

학생도 당연히 성적이 올라가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단 자신의 출세 형통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서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특별히 이웃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나 사업가나 어떤 직업을 갖든지 자기 하는 일을 성실히 형통하게하기 위해서 기도하되 그 일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 사람에게 거룩한 영적 찔림이 생기고 예수님의 골고다 십자가로 시선을 돌리게끔 기도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 믿는 자답게 살아가야 한다는 가장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소명의 실현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런 간절한 소원을 갖고 기도해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며 그럼 또 그런 차원에서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인도해주십니다.

 

솔직히 한 번 잘 따져보십시오.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지금만큼 체계적으로 활발하게 행하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 교세는 오히려 줄고 나아가 멸시 비난 반감은 더 늘어났습니다. 반면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진리의 말씀대로 살면서 서로 사랑했기에 작은 그리스도라는 별칭으로 불렸고 생명까지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치는 절대적 헌신에 이방의 불신자들이 감동하여 기독교가 염병처럼 번졌지 않습니까? 지금도 신자들이 삶에서 정말로 그리스도를 따라간다면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영적 찔림을 받아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자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불려 나왔지만 반드시 세상으로 돌아가 살아야 합니다. 모든 현실 여건은 동일하되 사람만 이전과 달라진 것입니다.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과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자신의 안전, 만족, 행복, 기쁨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찾는 자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님이 내주하시기에 갈수록 예수님처럼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탄에게 미혹된 영혼들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을 굳이 경건하고 신령하게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모든 현실적 문제부터 하나님의 일이자 자기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는 하나님이 맡긴 소명입니다. 그 일을 자신의 정욕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모습으로 처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시리즈의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소명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않아도 심지어 몰라도 되고 자신의 현실 문제만을 위해서 기도해도 됩니다. 오직 하나만 바꿔야 하는데 정말로 신자답게 살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기도도 그 모든 문제를 신자답게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거듭난 신자라면 사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신자다운지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에는 미뤄왔지만 알고 있는 대로 끈질기게 기도하고 기도한대로 끈질기게 실천만하면 됩니다. 그럼 어느 샌가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4/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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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에는 왜 세금이 붙지 않는가? 마태복음강해(151)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사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

이방인 집권자 같은 목사들 (마태복음강해 #193 - 마20:24-28)

이방인 집권자 같은 목사들 마태복음 강해 (193) http://youtu.be/TKJptBzXpkw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기도하지 말라.(창세기강해#77-창16:1-6)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기도하지 말라. 창세기 강해 (77)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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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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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감사는 달라야 한다. (추수감사절-약4:13-17)

신자의 감사는 달라야 한다. 2016 추수감사주일설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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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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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3:13-16)비방하는 세상을 부끄럽게 하라.

이전에 제가 담임했던 미국 유타주 유학생교회의 교인이 공학박사가 된 후에, 다시 주의 종으로 헌신하여 목회학 석,박사까지 취득하고서 약 1년 전 한국 세종시에 늘사랑교회를 개척했습니다.(김웅년 담임목사) 이번 한국 방문 중 4/16 주일 예배에서 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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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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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아벨이 아니라 하나님을 죽였다. (창세기강해 #42 - 창4:2-8)

가인은 아벨이 아니라 하나님을 죽였다. 창세기 강해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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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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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 불가능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가? (창세기 강해 #1 - 창1:1)

환원 불가능한 은혜 가운데 거하는가? 창세기 강해 (1) http://youtu.be/eCSGTueOyA4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창조적 진화론? 저는 서른세 살에 완전 무신론자 집안에서 ...

죄의 소원과 죄의 절제 (창세기강해 #44 - 창4:7)

죄의 소원과 절제 창세기 강해 (44)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창4:7) 죄에 대한 성경 최초의 진술 인간이 에덴 밖에 저지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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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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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43-48)원수까지 사랑하려면?-새롭게 읽는 신약성경(1) [9]

(마5:43-48) 원수까지 사랑하려면?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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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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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을 하나님도 용납하신다. (창세기강해 #24 - 창3:6,7)

인간의 탐욕을 하나님도 용납하신다. 창세기 강해 (24)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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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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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성적범죄로만 접근하지 말라. (창세기 강해 #17 - 창2:18-23)

동성애를 성적범죄로만 접근하지 말라. 창세기 강해 (#17)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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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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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3:13) 마지막 환난을 끝까지 견디려면?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2) [2]

(막 13:13) 마지막 환난을 끝까지 견디려면? 새롭게 읽은 신약성경 (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막13:13) 육체적 환난은 약과다. 성경은 인류 역사가 반복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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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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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4:3-9) 예수님의 장례식에 참석해 봤는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3) / 2024 부활 주일 설교 [1]

(막14:3–9) 예수님의 장례식에 참석해 봤는가?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3) / 2024 부활주일 설교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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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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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목걸이를 걸지 말라.(출애굽기강해#57-출33:1-6)

십자가 목걸이를 걸지 말라. 출애굽기 강해 (5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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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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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좋아도 하나님은 싫다. (창세기 강해 #2 - 창1:1-5) [2]

귀신은 좋아도 하나님은 싫다. 창세기 강해 (2) http://youtu.be/ASb2eX056xc (클릭하시면 You-Tube 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창3:20,21)아담과 이브는 구원받았는가?-인간타락담화(11) [1]

(창3:20,21) 아담과 이브는 구원 받았는가? 인간 타락 담화 (11)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0,21)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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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7
  • 조회 수 589

(엡2:1-7) 성경적 역사관이 비난받는 진짜 이유 -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10) [2]

(엡2:1-7) 성경적 역사관이 비난받는 진짜 이유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10)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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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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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예수님을 왜 버리셨는가?(종려주일설교-마27:45-50)

하나님은 예수님을 왜 버리셨는가? 2017 종려주일 설교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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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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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부터 진짜로 버림받은 적이 있는가? (마태복음강해 #252 - 마27:45-50)

하나님으로부터 진짜로 버림받은 적이 있는가? 마태복음강해 (252) http://youtu.be/GCJbzz19aj0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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