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전에 아담이 지은 원죄가, 마치 아버지가 빨갱이면 자식도 빨갱이라는 식의 연좌제로 적용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모든 개인이 한결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는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원죄입니다.(롬3:9-18) 수많은 윤리적 죄를 회개하고 고치는 것은 일반종교가 가르치는 행위구원입니다. 그런 회개는 평생을 해도, 죽기 직전까지도 윤리적 죄를 지을 수 있음, 온전하게 행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자신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탄의 종으로 영적으로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전인격을 걸고서 회심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기에 수많은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완전히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겸허히 진심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주신 질문에 답변하자면 원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꼭 문자적으로 원죄를 회개한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의 의미나 내용상으로, 진정한 회심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 지옥에 가지 않는 회개는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은혜가 바로 나 같은 천하의 죄인에게 베풀어졌다는 사실을 순전히 믿는 것이며, 그러면 여전히 죄인이지만 주님의 의를 덧입혀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즉 의인(성도)이 되었다고 칭해주는 것입니다.
수천 년 전에 아담이 지은 원죄가, 마치 아버지가 빨갱이면 자식도 빨갱이라는 식의 연좌제로 적용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모든 개인이 한결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는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원죄입니다.(롬3:9-18) 수많은 윤리적 죄를 회개하고 고치는 것은 일반종교가 가르치는 행위구원입니다. 그런 회개는 평생을 해도, 죽기 직전까지도 윤리적 죄를 지을 수 있음, 온전하게 행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자신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탄의 종으로 영적으로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전인격을 걸고서 회심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되었기에 수많은 죄를 지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완전히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겸허히 진심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주신 질문에 답변하자면 원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꼭 문자적으로 원죄를 회개한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개의 의미나 내용상으로, 진정한 회심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 지옥에 가지 않는 회개는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은혜가 바로 나 같은 천하의 죄인에게 베풀어졌다는 사실을 순전히 믿는 것이며, 그러면 여전히 죄인이지만 주님의 의를 덧입혀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즉 의인(성도)이 되었다고 칭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