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1-7) 예수님이 한국에 태어나셨다면?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6)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2:1-7)

 

결과는 똑같다. 

 

간혹 예수님이 이왕이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는 신자가 있습니다. 한국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더 빠른 시기에 더 크게 번영할 수 있었고 이순신 장군과 세종 대왕을 비롯해 자기 선조들도 예수 믿고 구원받았을 수 있었다고 여깁니다. 조국을 사랑하며 구원받지 못한 조상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은 이해되지만, 기독교 신앙과 어긋나는 생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은 그 성정이 똑같습니다. 거기다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오직 자신의 형통과 안락만 추구하기에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가 베풀어져서 그 심령이 거듭나지 않는 한 어떤 인간도 참된 선을 실행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는 세상 재물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다툼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온갖 국제적 분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 않습니까? 

 

한국이 예수를 일찍 알았더라면 훨씬 빨리 아주 좋아졌을 것이라는 상상은 한국인이 유대인보다 도덕적 영적으로 훨씬 우월하다고 믿는 큰 교만입니다. 거기다 한국이 하나님의 축복을 다른 민족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받기를 원하는 아주 이기적인 발상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나라 어느 때에 오셨어도 그 백성들은 이스라엘과 똑같이 그분을 외면 거역했을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로운 공적을 많이 쌓아도 또 아무리 간절히 끈질기게 기도해도 하나님이 역사하는 방식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도 미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느 세대에서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탁해야만 그분의 의로운 통치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일상의 삶에서 쉬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간구하면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당신께서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가장 크고 은밀한 일은 바로 아기 예수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유대 땅에서, 더 빨리도 더 늦게도 아닌 아구스도 황제 때에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배경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와 경이로운 은혜를 풍성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해외 선교 여건 조성

 

교통 통신 수단이 미개했던 고대에는 복음은 사람을 찾아가서 말로 전해야만 했습니다. 로마서처럼 그 진리를 가르치는 서신을 함께 회람하며 배울 수 있지만 어쨌든 인편으로 그 편지가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부터 개인별로 죄를 사해준 후에 당신의 권능과 은혜로 개인적으로 보호 인도하시기에 그 구원의 진리도 개인별로 직접 만나서 말로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유대 땅은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 세 대륙의 접점 지역의 한복판에 위치하므로 제자들이 각지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출발지로서 최적의 입지였습니다. 

 

거기다 아구스도는 정복 전쟁 때 로마가 자랑하는 전차 군대의 이동을 쉽게 하려고 사통팔달(四通八達)로 포장도로를 잘 정비해 놓았고 지금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정복 후의 지중해 세계는 전쟁의 위험이 사라졌고 강도들이 함부로 설치지 못하도록 치안도 안정되었습니다. 바울이 세 차례나 비교적 안전하게 선교 여행을 마칠 수 있었고, 또 비록 네로에게 순교 당해 무산되었으나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지키려고 당시의 땅끝인 스페인 선교 계획을 담대히 세울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아구스도 황제로선 자신의 통치 치적으로 사도들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세상만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합적으로 주관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따라 단지 조연 배우로 쓰임 받았던 것뿐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우연히 혹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일관된 방향성을 가진 우연이 몇 번 겹치면 그것은 사전에 계획된 필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인류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방향성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엡1:10), 그 하나입니다. 특별히 신자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필연은 아구스도보다 350여 년 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도 실현되었습니다. 나중에 로마가 다 차지했던 그 지역에 알렉산더가 먼저 제국을 세워서 헬레니즘 문화를 심어놓았습니다. 특별히 그 지역 전체에 헬라어를 공용어로 삼았는데,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주로 인용한 구약성경도 통칭 ‘70인 역’이라고 불리는 헬라어 판이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인도까지 정복하여 교역로를 개척했기에 의심 많았던 사도 도마도 바울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고 인도까지 갈 수 있었고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전도하다 순교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알렉산더 이전에도 하나님 필연을 꼽자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한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남 유대는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고 또 많은 이가 포로로 잡혀가게 했습니다. 그 바벨론을 바사로 정복하게 하여 고레스왕으로 칙령을 내려서 고향으로 귀환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 오랜 백여 년 격동의 시기에 많은 유대인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서 이방인들을 가르쳐서 유대교로 개종케 했는데 신약성경에서 “경건한 자”라고 표현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메시아가 오셔서 의롭게 통치할 새 시대를 소망하며 기다렸습니다. 대표적으로 예루살렘을 순방하면서 헬라어 구약성경의 이사야서를 읽고 있던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들 수 있습니다.(행8:26-40) 

 

간단히 정리하자면 알렉산더가 헬라어로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로 만들었고, 아구스도가 제국의 도로망과 치안을 정비했기에, 사도들이 편리하고도 안전하게 선교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자유롭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에 의해 경건한 자로 바뀐 많은 이방인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어서, 지금으로 치면 해외 선교가 용이하게 진행된 것입니다. 

 

국내 선교의 지혜

 

이스라엘 안에 이뤄진 국내 선교에도 하나님의 신묘한 지혜는 은밀히 역사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스라엘은 경제적 수탈을 당하고 정치적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가 식민지별로 고유의 종교의 자유는 허용했으나, 가뜩이나 궁핍했던 시절에 유대인들은 성전과 로마 두 곳에 다 세금을 내야 하므로 경제적으로 더욱 쪼들리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모세를 닮은 선지자가 와서 로마의 압제에서 구출해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해 주길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아구스도가 예수님 오실 때쯤 유대인들 사이에 메시아 대망 사상을 최고로 고취 시킨 셈입니다. 

 

특별히 주목할 하나님의 은밀한 일은, 이스라엘이 자초한 것이지만 그들로 구약시대 내내 온갖 실패와 시련을 겪도록 섭리한 것입니다. 당신의 거룩한 율법을 지키지 않고 대신에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는데 하나님은 거꾸로 그들이 숭배한 우상의 나라에 의해서 멸망 당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순전히 믿고 따르지 않을 때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당연히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아 나라가 망하는 벌을 받았다고 절감하고선 포로 귀환 후에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는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바리새파가 나서서 율법을 준행할 온갖 세부적인 규정을 추가했는데 그것이 너무 과해서 오히려 무거운 종교적 멍에가 되었습니다. 메시아 대망 사상과 유대 민족주의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라,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을 죄인으로 간주해 멸시하고 배척했습니다. ‘바리새’라는 말의 뜻이 ‘잘라내다’. ‘분리하다’이듯이 율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동족도 여호와의 총회에서 추방했습니다. 똑같은 죄인인 인간 종교인들이 다른 인간을 구원 안과 구원 밖으로 구분해 차별 정죄했습니다.

 

그런 바리새파 운동도 구약시대처럼 자기들 의를 자랑하여서 하나님의 현실적 축복만 받으려는 표면적 형식적 준행에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바리새파 운동을 통해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고, 율법은 오히려 죄를 정죄하는 역할만 하지 구원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은 물론 온 세계에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구원 진리를 깨닫지 못한 바울은 여전히 성전과 율법에 집착했고,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말살하는 것이 여호와를 위하는 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런 열정으로 이방의 신자들까지 진멸하려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하늘의 찬란한 빛 가운데서 그를 찾아와서 만나주었습니다. 

 

주님은 스데반을 최초로 순교케 할 정도로 당신을 극렬히 거역한 그를 당장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사흘간 봉사가 되어 죽음과 방불한 완전히 무력해지는 체험을 통해 인간들 앞에 의롭게 보이려 했던 가식적인 그의 옛 자아는 완전히 산산조각 났습니다. 대신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이 창조 때부터 약속하신 메시아이자 십자가 대속 죽음으로 죄인을 구원하러 온 성자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율법적인 의는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기를 높이려는 큰 교만이자 죄임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의 종교관과 구원관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엎어서 오히려 지중해 세계에 교회를 개척하는 선교사로 세워주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보존

 

해외 선교보다 바울을 향한 어쩌면 더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은 생명의 참 복음을 기록으로 남기게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사역 중에 천국 복음을 주로 비유로 가르쳤고,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으로 차별 정죄한 자들을 사랑의 행동으로 치유 구원하는 본을 보였고,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말하자면 주님은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늘 보좌로 승천하신 후에 주님은 진리의 영인 성령으로 바울에게 영감을 주어서 성경을 저작하게 했는데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이 그의 저작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바울을 율법의 최고 전문가로 오랫동안 당신께서 양성하고서 또 바로 그 율법으로 처절한 실패를 겪게 한 후에 십자가 은혜의 구원과 비교 대조되는 복음의 정수를 온전히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그리고 사철 내내 건조하고 따뜻한 이스라엘의 사막 기후는 종이나 양피지로 만든 성경 두루마리를 오랫동안 보관 계승하기에 아주 적합했습니다. 예수님을 성경으로만 알고 믿게 될 후대 신자들 때문에 하나님으로선 성경을 보존 계승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으므, 아기 예수를 비가 자주 오는 한국보다는 메마른 유대 땅에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본문에도 성경을 보존하려는 하나님의 놀랍고도 비밀스러운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2절)는 말씀입니다. 세속의 역사는 구레뇨가 AD 6-9년 동안 수리아 총독으로 봉직했고 그 기간인 주후 6년에 호적조사를 했다고 증언합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구레뇨가 호적을 하던 해에 유대에 큰 소요가 일어났다고 기록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누가마저도 자신이 저작한 사도행전에서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행5:37)고 요세푸스 기록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줍니다. 

 

문제는 헤롯 대왕이 재직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태어났는데, 그 호적조사는 헤롯이 죽은지 최하 10년 뒤에 시행된 것입니다.(마2:1, 2:19)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본문이 말하는 예수님의 출생 시기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 세속의 역사와 상충하는 데다 누가도 서로 엇갈리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본문의 예수 탄생 기사는 완전히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구약 예언과 일치시키려고 지어낸 전설일 뿐이라고 기독교 외부로부터 오랫동안 비난을 받았습니다. 

 

누가는 의사라는 직업의식 때문에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아주 정밀하게 기록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독교계에선 그런 누가가 너무나 뻔하게 드러나는 실수를 할 리는 없다고 추측은 했지만, 반증할 근거가 없어서 벙어리가 냉가슴 앓듯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기 1764년 로마 근교 티볼리 지역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의 비석에서, 아구스도 황제 시절에 두 번 봉직한 수리아의 로마 관리에 관한 업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부분은 떨어져 나갔으나 그 업적 내용은 구레뇨가 행한 일과 똑같이 일치했기에 그는 총독을 두 번 봉직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거기다 주전 29년에 황제에 즉위한 아구스도는 제국의 호적조사를 14년마다 한 번씩 하되 본적지 고향에 가서 받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아구스도가 제국 전체 호적을 하도록 주전 8년에 명령했다는 애굽의 기록까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면 주전 8년에 사도행전의 주후 6년을 합치면 정확히 14년이 되므로 요세푸스의 증언과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의 호적조사는 구레뇨가 두 번째로 행한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다시 누가의 기록을 보십시오.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총독이 두 번째 된 것이라고 밝히지 않았으니 첫 번째 봉직 기간을 말합니다. 만약 호적조사를 주후 6년 한 번만 했다면 굳이 처음 한 것이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는 지금 구레뇨가 첫 번째 총독으로 봉직하면서 첫 번째 호적조사 할 때 예수가 탄생했다고 정확히 밝힌 셈입니다. 이 복음서가 저작 회람될 당시에는 그런 역사적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으므로 굳이 연대를 밝히거나, 두 번 중 첫째라고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누가의 예수 탄생 기사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이 되었고 그동안의 비난을 단번에 잠재워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시기

 

교통과 통신이 초보적 단계였던 때라 조사를 마치려면 몇 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누가의 정확한 이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와 헤롯 대왕의 봉직 기간을 종합적으로 계산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서기 원년이 아니라 BC 4-6년 경으로 수정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 기록이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이자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은 두말하면 입이 아픕니다.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은 본문을 입증해 준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된 1764년이라는 시기입니다. 

 

문예 부흥 시대를 거쳐 인간 이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었고 종교 개혁의 완성으로 성경 원전이 활발하게 연구될 때입니다. 무엇보다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모든 학문의 사변적 추론에 이성을 최고의 위치에 두는 계몽주의가 절정으로 올라가던 시기였습니다. 또 그래서 칸트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 자유주의 학파가 발현되어서 성경의 완전성과 십자가 복음의 유일성과 배타성이 크게 공격받기 직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때에 우연한 발견을 가장하여서 예수님 탄생 기사가 얼마나 정미하며 성경이 얼마나 완전한 기록인지 입증시켰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탄생 기록부터 엉터리가 되면 주님의 공사역 전부는 물론 십자가 죽음 부활도 가공된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비판을 무색하게 만들 완벽한 증거를 마련해 1700년 넘게 숨겨 놓았다가 가장 적합한 시기에 세상의 빛을 보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1946년 말에 사해 근처 쿰란의 동굴에서 구약성경 사본들이 근 이천 년간 완벽하게 보존되었다가 아주 우연히 발견되게 했습니다. 그 발견으로 현재 구약성경이 기원전 2-3세기에 사용했던 구약성경과 한 치의 오차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현장에서 보듯이 설명해서 후대의 저작이라고 의심받았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아예 가르치지 않는 이사야 53장도 주님 오시기 600년 전의 예언임이 확실해졌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통찰력 있고 시대를 꿰뚫는 완벽한 지혜가 너무 놀랍고 신묘하지 않습니까? 만약 구레뇨에 관한 비석과 사해 사본이 아주 오래전부터 발견되었다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아무도 모른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것입니다. 대신에 성경의 완전성이, 그것도 예수님의 탄생은 물론 십자가 죽음마저 비난받을 때 기독교계가 아닌 세속의 고고학자에게 우연히 발견되게 했습니다. 후대의 신자들이 성경을 조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 모든 기록이 절대적 진리이자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당신께서, 즉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하나님 스스로 직접 증명한 것입니다. 

 

이성을 활용하라.

 

칸트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은 이성에만 의존해 성경을 갈기갈기 해부했습니다. 그 결과 성경을 인간이 지어낸 전설 설화 격언 역사 전기이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다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요, 성경의 기적은 소설이며, 십자가 죽음과 부활도 제자들이 지어낸 설화로 치부했습니다. 예수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덕과 종교 선생이라는 점만 인정했기에 그의 가르침만 따르면 되고 경배해야 할 성자 하나님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도 자기가 이해하는 대로만 읽고 믿으면 되고 자기 이성에 반하면 무시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자유주의 신학이 설치도록 허용한 데도 하나님의 지혜는 그 배후에서 은밀히 역사했습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론과 성경의 해석법이 너무 정교했고 마땅한 반론이 없어서 또다시 보수 기독교계는 한동안 벙어리가 냉가슴 앓듯이 꿍꿍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론을 반증하기 위해서 그들의 연구를 역추적했더니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성경 기록이 진실임을 거꾸로 성경 자체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성에 바탕을 두고 체계적 합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기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거꾸로 성경의 진리 됨을 밝히는 좋은 수단(tool)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는 인간이고 성경도 하나님이 아닌 인간 기록이라는 확증 편향을 갖고서 접근하니까 아무리 좋은 해석법을 사용해도 이미 정해 놓은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보수 교계에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순전한 믿음으로 그들의 합리적인 해석 기법대로 역추적했더니 오히려 성경의 진리 됨이 더 확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바울도 유대인은 선민이고 율법으로만 구원받는다는 확증 편향을 갖고서 구약성경을 보았더니 예수와 그 추종자는 반드시 진멸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 순전한 믿음으로 다시 성경을 묵상해 보니 오히려 예수만이 모든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요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이성은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에게만 주신 아주 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기에 하나님 당신부터 이성적인 존재라는 뜻입니다. 살펴본 대로 그분이 예수 탄생을 위한 모든 환경 조성과 관련된 역사를 주관 통치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완벽한 이성이 작용했지 않습니까? 인간에게 이성을 주신 이유도 이 땅에서 당신을 대신할 청지기로 충성 헌신하려면 당신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만 해석 적용하지 않도록 지성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성은 너무나 완벽해서 인간의 이성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역사를 종종 일으키십니다. 신자도 그래서 이성을 초월하는 믿음을 당연히 가져야만 하되 하나님의 그런 역사를 성경에 계시된 영적 진리에 비추어서 분별하는 데에 이성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성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되 이성을 절대로 무시 외면해선 안 됩니다. 원죄에서 구원받은 신자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더더욱 충성 헌신해야 합니다. 신자가 그렇게 하는 데에 필요하고 충분한 당신의 뜻을 성경에 계시해 주었습니다. 그 성경을 제대로 알려면 지성과 이성을 동원해서 합리적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내보면서 비둘기처럼 온유하되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율법의 최고 전문가 양성해서 복음의 최고 전문가로 바꾸었습니다. 어그스틴도 알기 위해서 믿는다고 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데 믿는 척한다고 그 믿음이 절대로 온전할 수는 없으며 사실상 구원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요17:3) 쉽게 바꾸면 성경을 모르면 구원도 모르기에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신자가 사람들 만나는 재미로 교회에 출석하고 도덕적 종교적으로 선하고 경건한 척합니다. 그러니까 목사와 장로 같은 교회 사역자들에게서 인간적인 허물밖에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라.

 

얼마 전에 소천하신 미국 장로교 팀 켈러 목사가 뉴욕의 맨허턴에 1989년 리디머 교회를 세울 때 주변 사람들이 교회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많이 말렸습니다. 미국에서 최고 지식층에다 젊은 부유층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가뜩이나 보수 골통이라는 평가를 받는 기독교가 결코 뿌리내릴 수 없으리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배타적이고 유일한 십자가 복음의 보수 정통 진리를 전하되, 젊은 지식층이 이해하고 소통되도록 합리적인 변증의 방식으로 설교하고 가르쳐서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크게 부흥했습니다. 그리고 각 도시에 같은 방식의 지교회들을 설립했고 무엇보다 절대적 진리가 없어지고 모든 사람 자신이 바로 진리가 된 포스트 모던 시대에는 반드시 합리적으로 변증하는 전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요컨대 이성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여서 듣는 이로 이성적으로 진리임을 분별 확신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이성적인 변증만으로 한 죄인을 구원으로까지 이끌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성령이 간섭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합리적 변증을 통해서 수십 년간 견고한 진이 되어서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는 불신자들의 인본주의적인 고집, 선입관, 편견, 심지어 종교적 믿음을 조금씩 허물어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수 있는 좋은 땅으로 경작할 수는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오직 인간 이성만으로 잘못 판단하고 있는 사항들을 바로 잡아주려면 마찬가지로 이성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쉬지 말고 성령의 간섭을 기도로 간구하고 무엇보다 신자의 거룩하게 바뀐 삶을 보게 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면서 말입니다. 

 

처음 교회 출석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현실 고난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간관계 상처로 정서적 위로를 받으려고,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아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후의 심판에 대비하려고, 심지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등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령의 간섭으로 십자가 예수님을 인격적 개인적으로 만나서 새 사람으로 바뀌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체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자신을 그렇게 바꾸었는지 성경을 통해 정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온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니.”(행17:11,12) 특별히 이방의 경건한 자들이 성경을 공부해서 믿었다고 증언합니다. 유대인들처럼 구약적인, 민족, 관습, 문화, 여호와 신앙의 배경이 없는 이방인들이니까 더더욱 의심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깊이 연구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신자는 사실상 이방인의 처지임으로 이성을 반드시 사용해서 성경을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억지로 믿는 척 해봐야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성경이 정말로 참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밝혀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라고 확신한다면 어떻게 그저 그냥 쉬엄쉬엄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바울도 삼 년간 아라비아 사막에서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세상 모든 종교인 중에 기독교인만큼 자기 종교의 경전을 책장에 고이 모셔 놓고 있는 자들도 없을 것입니다. 작금의 기독교, 교회, 목회자, 신자들의 모든 문제는 사실상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또 그러니까 온전히 믿지 못하고, 또 온전히 믿지 못하니까, 온전히 살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기독교와 신자가 다시 부흥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영감으로 저작된 성경이라 은밀히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합니다. 제대로 분별하려면 성령의 조명(照明)을 기도로 간절히 구하여야 하고 그와 동시에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이성으로 최대한 영적 분별력과 지혜를 발동해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으면 맹신과 미신에 빠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기복주의, 율법도덕주의, 은사체험주의도 성경의 본질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기에 어떤 이단에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체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정확히 깨달아서 그 은혜와 권능 앞에 순전하게 엎드리게 인도해 주십니다. 

 

성경의 진리성과 역사성 등을 변증해야 할 책임은 신학자들이 감당해 줍니다. 신자는 성령의 조명으로 성경을 제대로 깨달아서 본인은 물론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진정한 감사와 경배와 찬양으로 넘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성경을 스스로 연구할 생각이 없으면 하나님도 더 신묘하고 엄청난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분은 변함없이 항상 그런 사랑을 베풀고 계시지만 신자가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5/12/2024)


모루두개

2024.05.16 17:05:27
*.230.44.2

좋은 서적과 스터디 성경이 아주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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