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힘조차 없는가?

조회 수 641 추천 수 14 2009.11.10 19: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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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힘조차 없는가?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었느냐."(신4:32,33)


피아노 뚜껑에 손가락이 잘린 아이

오야마 레이지라는 일본인 크리스찬이 이런 간증을 했다. 아들 쇼오지가 아주 어렸을 때에 피아노에서 장난치고 놀다가 뚜껑에 새끼손가락이 끼어버렸다. 완전히 잘려 나가지 않고 겨우 1미리미터 정도 두께의 피부만 남고 나머지 부분은 덜렁거리며 가까스로 달려 있었다.  

급히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이정도면 차라리 잘라 내는 것이 좋은데 부모님 마음이 아플 테니까 집에 돌아가 하루 정도 마음에 정리 하고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봉합 수술 하려면 뼈와 혈관과 신경끼리 하나씩 일일이 이어야 하는데 손가락이 너무 가늘어 도저히 그렇게 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양 쪽만 엉성하게 바늘로 기워 부치고 붕대를 감고는 집으로 돌아 왔다.

엄마 아빠는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며 아이의 새끼손가락을 위로 향해 들고 간절히 기도했다. 놀랍게도 다음 날 아침 시커멓게 죽어가든 손가락에 붉은 빛이 돌기 시작했다.  병원에 데려 갔더니  붕대를 풀어 본 의사가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봉합 수술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손가락은 붙었고 그 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이 일이 일어난 후 35년이 흐르면서 아들의 새끼 손가락만 바라보면 절로 감사가 넘쳤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그 때의 은혜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번에도 틀림없이 지키고 인도해 주실 것에 대한 추호의 의심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여러분은 이처럼 하나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아 두고두고 회상이 되는 신앙 상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는가? 그래서 어려울 때마다 그것만 바라보거나 그 일을 생각만 해도 모든 의심과 불만을 물리치고 하나님 사랑을 다시 확신하고 힘을 낼 수 있는가?

아무리 어린이의 체질상 상처가 빨리 아물게 마련이고 하나님이 인체에 부어주신 생명력이 오묘하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밤새 손가락을 하늘을 향해 들고 기도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해야만 하고 또 그렇게 하면 자동적으로 기적적인 치유가 따른다는 뜻은 아니다.

말하자면 손을 드는 것이 더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특별한 기도의 형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진심과 간절함을 나타내는 표시도 아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향해 두 손을 드는 것은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강도가 흉기를 갖다 대며 하는 첫 마디는 "꼼짝 말고 손들어"다. 양 팔을 들어 허공을 향해 드는 것은 자신의 모든 방어 수단을  포기하고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신자가 손을 하늘을 향해 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한다는 의미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린다는 뜻이다.

모세의 이상한 전투 지휘  

성경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진군하던 중 아말렉 족속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총사령관 격인 모세는 부사령관 여호수아더러 전투를 지휘하게 하고 자신은 산 위로 올라가 있으면서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워털루 전쟁 때의 나폴레옹처럼 높은 산 위에서 전황을 한 눈에 보아가며 지휘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쳐 올리려고 그랬던 것이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들리라 내가 아말렉을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출17:10-15)

이스라엘은 400년 간 노예 살이 만 했던 터라 전쟁 경험이 전무한 오합지졸이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아도 이스라엘은 철기 문명이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한참 동안 블레셋 족속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가 블레셋은 이미 금속 무기를 갖고 있었고 대장간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지금 죽창, 몽둥이, 돌멩이 같은 것들만 들고서 맨몸으로 아말렉을 상대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거기다 정식 전투라고는 400년이 넘도록 처음 하는 셈이다. 지금으로 치면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나라가 미국에게 덤벼든 꼴이다. 현실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했다.

따라서 총사령관 모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활짝 벌리는 것뿐이었다. 그는 산 위에서 하루 종일 하나님께 매어 달리며 기도했고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은 산 밑에서 여호수아가 승리를 쟁취했다.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 모세가 팔을 벌리는 동안 함께 하셨던 것이다. 모세는 사실 자기 두 팔이 아니라 하나님의 깃발을 그분이 계신 곳을 향해 높이 쳐들었던 것이다.


당신의 영적 기념물은?

신자의 삶은 매 순간이 하늘을 향해 손을 활짝 들어 오리는 것이어야 한다. 복을 더 많이 달라고 손을 더 넓고도 높게 벌리라는 것이 아니다. 또 성경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듯이 하루 24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구할 것이 많아 하루 종일 손을 들라는 것도 아니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고 자신을 완전히 죽여 그분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을 알현하려 나가던 에스더처럼 하나님이 죽으라고 하면 죽을 준비까지 되어 있어야 한다.  

역으로 이야기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본성이 쉬지 않고 우리를 자신의 힘과 계획과 감정과 이성에 내어 맡기도록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마치 용수철을 집어 당겼다 놓으면 "탱"하고 바로 제 자리로 돌아가듯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순식간에 우리의 옛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다. 구태여 노력하거나 심지어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거의 반자동이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없으면 그 자리가 계속해서 빈자리로 남아 있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드시 우리 아니면 세상 혹은 사단이 바로 쳐들어와 떡 하니 버티고 있으려 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옛 사람으로 돌아가며 자칫 사단에게 내어주는 우리 영혼의 좌소를 과연 어떻게 해야 잘 지킬 수 있는가? 물론 기도와 찬양과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경험 했듯이 그것만으로 부족할 때도 종종 있으니 탈이다. 너무 힘들어 기도마저 안 나올 때, 찬양을 부르려 해도 아예 목이 메일 때, 성경을 보아도 도저히 글들이 흐릿하고  눈에 안 들어 올 때가 있다. 그런데도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들기만 하면 되는가?

기도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분을 향해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을 때란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도 발 걸음을 떼어내기 힘들고 현재의 울타리가 너무 견고하고 높아 그 안에 꼼짝 못하고  갇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이지만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 재출발할 수 밖에 더 있겠는가?

과거의 실패로 되돌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원인을 따져 실패했던 장소에서 다시시작하려 든다.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고는 자기뿐이기 때문이다. 신자는 다르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던 곳으로 되돌아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영적인 기념물을 찾아내어야 한다.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들었기에 하나님이 베풀어준 완벽한 승리의 트로피를, 실제 가시적 형태로 남아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없다면 영혼에 새겨진 기억이라도, 다시 꺼내서 바라보아야 한다. 오야마가 자기 아들 쇼오지의 손가락만 바라 보고도 그 사건 후 35년 동안 어떤 어려움도 그 은혜를 베푸신 분에 대한 온전한 신뢰로 이겨 내었듯이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을 위해 디딘 첫 걸음은 진정 믿음의 행군이었다.  여전히 강물이 범람하고 있는 가운데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언약궤를 앞세우며 믿음으로 첫발을 강에 디뎠을 때에 그 강물은 멀리 물러갔고 모든 백성들이 안전하게 마른 땅을 건너갈 수 있었다. 아말렉 전쟁 때에 4백년이 넘도록 전쟁을 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하늘을 향해 팔을 뻗치자 하나님이 승리를 주었듯이, 이제 광야 40년의 심판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대들에게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다.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여져 있는 언약궤가 모세의 두 팔처럼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 때 여호수아는  "요단 가운데서 돌 열 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한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게"(수4:8)했다. 강물 속에서 건진 돌은 맨 땅의 돌과 그 모양부터 다르고 항상 물 때가 묻어 있어 표시가 난다. 자기들이 항상 유숙하는 곳, 즉 언제든  바라 볼 수 있는 곳에 승리의 트로피를 간직하게 했다.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영영한 기념"(수4:7)이 된 것이다. 또다시 자기들 앞에 강물이 범람하고 파도가 넘실거려 빠져 죽을 것 같은 위기가 닥치면 언제라도 그 돌을 바라보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 수 있는 힘이 나도록 말이다.  

지금 혹시라도 사랑하는 아들의 손가락이 잘려나갈 정도의 위기에 닥쳐 있는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하늘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데도 고개를 쳐들고 팔을 뻗칠 힘조차 없는가?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영적인 기념물을 꺼내어서 갈고 닦아 광채를 내어보라. 그럼 하늘을 향해 다시 팔을 뻗칠 힘이 반드시 생길 것이며 또 그럴 때에 또 다른 승리의 트로피를 하나님이 선사하실 것이다.

아마 그런 기념물이 단 하나도 없는 사람도 간혹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크게 기뻐하라. 지금 당신의 일생 중에 가장 큰 기쁨의 순간, 너무나 신비한 은혜가 밀어 닥치기 일복 직전이기 때문이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눈앞에 홍해가 가로 막혀 있을 때만 일어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완전히 땅에 엎드려라. 그 분께서 반드시 크고도 영영한 기념물을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것도 35년만 바라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의 남은 일생 중에 어떤 환난이 닥쳐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런 기념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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