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중에 잡념이 생깁니다.
[질문]
제가 항시 기도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저는 기도함에 있어서 깊이가 깊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번은 그 원인이 뭘까 생각을 해봤는데 기도 중에 머리 속에 잡념 때문에 깊이 들어가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잡념을 없애달라고 기도도 해봤는데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혼문제를 두고도 깊이 기도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직 제 짝을 못 만났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목사님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답변]
기도에 왕도(王道)가 없다.
대분의 신자들이 고민하는 사안일 것입니다. 그것도 기도에 관한 설교와 성경공부를 그렇게도 많이 했고 또 그대로 따르려고 시도했는데도 별로 개선이 안 되니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그럼 우리가 기도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며 정작 문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이 됩니다.
기도에 관한 신자의 가장 큰 오류는 효과적으로 기도를 잘할 수 있는 어떤 비결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도 잘하는 비결은 따로 없습니다. 지금껏 나름대로 기도의 비법이라고 믿고 따라 해봤지만 신통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까닭입니다.
신앙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자 바라는 것 중에는 아무래도 문제와 환난에서의 구출이 우선일 것입니다. 또 그런 현실적 사안을 두고 기도한다고 결코 나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것만 혹은 최우선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잘못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를 어려움을 위한 어려움을 겪게 하지는 않습니다. 설령 고난을 허락해도 그 가운데 반드시 당신만의 뜻과 계획이 있을 뿐 아니라 때가 되면 당신만의 방식으로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십니다. 그분은 신자가 어려우면 함께 안타까워하시고 하루 빨리 고난을 이기고 빠져나오길 신자보다 더 간절히 원하십니다. 당연히 신자는 자신의 어떤 문제라도 그분께 아뢸 수 있고 또 아뢰어야 합니다.
흔히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매번 하나님의 뜻을 완벽히 알아서 그에 적합한 기도를 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자신의 평생 소명을 구체적으로 확정지어서 실현하고 있는 신자가 그 일을 위한 기도를 하거나, 자기가 현재 처한 위치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주님의 일에 쓰임 받기를 헌신하는 기도를 한다면 모를까 말입니다.
예수님마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의 마음이 동하는 대로 간절히 기도한 후에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당신 뜻대로 따르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신자에게서 가장 보고 싶은 모습은 앞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인도하든 전적으로 헌신하고 순종하는지 여부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어떤 계획도 진정으로 그분의 선하심 안에서 이뤄지고 또 그분의 뜻과 영광도 함께 드러나길 간절히 바란다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개인적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응답 받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약4:3)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질적 양적으로 축소해서 기도합니다. 최소로 응답해주셔도 감사하겠다는 겸손한 뜻도 있겠지만 실상은 자신이 하나님께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제시하는 것은 아닐까요? 자칫 아주 비겁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또 겸손을 가장한 영적 교만일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무엇이든, 때로는 무리한 요구도 할 수 있듯이 하나님은 신자가 담대하고도 떳떳하게 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꼭 필요한 것이라면 천금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자신의 욕심과 필요의 경계선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에, 잘 몰라서 하는 무리한 요구는 잘못이 아님, 일단 기도부터 하고 봐야 합니다.
기도에 구태여 특별한 방식이 따로 없습니다. 아빠에게 이야기하듯 하면 됩니다. 때로 무리한 요구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이든 털어놓아야 합니다. 영어 단어를 잘 외우는 비결이 따로 없이 그냥 무조건 외워야 하듯이 기도도 일단 무릎부터 꿇고 봐야 합니다.
물론 주님이 기도해야만 하는 내용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계속 잡념이 생기는 우리 수준으로는 그대로 따라 하기도 사실 벅찹니다. 영적 연단과 훈련을 많이 겪으면서 기도를 꾸준히 하다보면 그 경지에 이를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도한다고 금방 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도에 왕도가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기도하라.
질문자님의 고민처럼 어쨌든 열심히 기도하려 하는데 자꾸 잡념이 드니까 당혹됩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에 관해 공부해서 쌓은 신앙적 지식이 잡념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잡념을 없애달라고 미리 기도해도 잠간뿐이지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흔히들 사단의 방해라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 정도로는 사단의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거의가 잘 먹고 잘 사는 제목뿐인데 사단도 구태여 훼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성령님이 그런 기도를 못하도록 방해를 놓는지 모릅니다. 물론 원칙적으로 성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자체를 사단이 싫어하니까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쉽게 굽어짐을 사단은 잘 아니까 어쩌면 그런 기도를 더 많이 하라고 부추길 수도 있습니다.
사악한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게 해달라는 기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이웃과 성도의 아픔을 그치게 해달라고, 이 땅에 죄악이 관영하는 것이 안타까워 고쳐 달라고, 사단에 미혹된 영혼들이 너무 불쌍해서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는 기도라면 사단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집중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아니 그런 기도를 할만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신자라면 어떤 방해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기도가 제대로 맥이 안 잡히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표현한 대로입니다. 기도자 스스로도 자기가 간구하는 내용의 맥을 못 잡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모르고 그저 막연하게 기도만 하니까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는 또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내용이 그리 갈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어떤 필요를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예컨대 말기 암에 걸렸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진심으로 오래 동안 절실하고도 끈질기게 기도할 것 아닙니까? 또 그런 기도에 성경적 방법이나 하나님의 뜻을 구태여 따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구체적 기도가 어떤 것인지 질문자께서 이왕에 제기하신 결혼에 관한 기도를 예로 삼아 살펴봅시다. 먼저 믿음이 좋은 신부를 만나 빨리 결혼해야겠다는 정도의 막연한 소망만 있다면 기도는 그냥 한 문장으로 끝입니다. "믿음이 좋은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배필을 하루 속히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더 이상 기도할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꾸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울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기도 자체는 간절해질 수 없습니다.
반면에 결혼과 배우자에 대해 평소에 자신이 소망하고 있던 내용들이 많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배우자를 만나 어떤 가정을 어떻게 꾸려 나갈지 평소에 꿈꾸고 계획했다면 기도의 내용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또 기도해가면서 그 소망을 더 소중히 키워 나갈 것입니다. 아내는 자신의 여러 결점을 보완해주는 진짜 돕는 배필이 되고, 자신도 아내에게 끝까지 온전한 사랑을 베풀며, 자녀는 하나님의 기뻐하는 모습으로 키우며, 자기 가정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또 세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면 당연히 기도가 깊어질 것입니다. 중도에 잡념이 생길 틈도 없어질 것입니다.
말하자면 깊은 기도란 거창하고 심오한 것이 아니라 바로 평소 스스로 구체적으로 소망 내지 계획한 것들을 그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깊이 하려하기 보다는 소망을 깊이 가꾸면 자연히 기도도 깊어질 것입니다. 강조하건대 자기 뜻을 세밀히 세우고 그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꾸만 교회에선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라고 가르치는데 이는 조금 잘못된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전에 하나님 뜻을 알고 기도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정작 그분의 뜻은 기도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그것도 막연하게 당신의 뜻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한다고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자기 계획을 갖고 기도하다 보면 기도 중에 혹은 응답되어 가는 과정 중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기도란 자기 뜻을 갖고 나와서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나가는 작업입니다.
무엇이든 자기 소원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 구체적으로 현실적 계획을 세워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 길을 인도하셔도 신자는 가만히 있는데 결코 미리부터 이리가라 저리가라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무엇보다 스스로 꿈꾸고 그대로 기도하는 것 자체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자기가 꿈을 꾸고 계획을 짠 진짜 최종 목적이 자기만의 욕심을 채우느냐 아니면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느냐에 따라 그 꿈이 헛된 것으로 끝나느냐 영광으로 결말지어지느냐 정해질 뿐입니다. 요컨대 평소 성경에 계시된 원리에 따라 구체적으로 꿈꾸던 내용을 기도해야만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더러 그러라고 수준 높은 지정의를 주신 위에 성령으로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소원을 형성하는 과정 중에 당신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이 자라고, 그분의 약속을 다시 온전히 붙들게 되며, 그분의 영광이 자신을 통해 드러나길 원하는 꿈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적 결혼과 가정에 대해 성경을 통해 배운 것을 자신의 소망으로 승화시키고 또 그 소망대로 이뤄지게 해달라고 담대하고도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는가?
기도가 맥이 잡히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기도하는 중에도, 심지어 구체적으로 기도하는데도 자신의 기도에 대해 크게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과연 이 기도가 응답이 될지 자꾸 의심이 드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기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여러 번 기도했는데 응답이 잘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혹시 이번에도 그러지 않나 염려가 되어 괜히 헛수고 할 것 같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진정어린 기도라면 응답하지 않고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모든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단지 응답의 때와 방식이 신자의 기대와 다르기 때문에 신자가 미처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때가 다르기에 끈질기게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소망을 잃지 않고 계속 키워가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끝까지 관철시키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 방식을 주의해서 세밀히 분별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응답하는 내용이 자신이 기도한 것과 다르기에 끈질기게 기도는 하되 자기 뜻을 그분 뜻에 맞추어 수정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그러려면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만나는 사람, 자신의 믿음과 영혼의 상태 등을 자신이 기도한 내용과 연결시켜서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도를 깊이 있게 하려 노력하기보다 기도한 후에 범사를 하나님 뜻에 맞추어 묵상하는 일을 더 깊이 있게 해야 합니다. 기도는 중언부언하지 않고 자기 소원하는 그대로 담대하게 아뢰기만 하면 됩니다. 정말 육신의 아버지처럼 평소 대화하듯이 하면 됩니다. 기도 후에 기도한 내용을 추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먼저 반드시 성경에 드러난 영적 진리에 부합하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만약 부합된다면 자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 응답을 이뤄나가실지 세밀히 살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의 정욕이 포함된 것을 안다면 과감히 그 소원하는 내용부터 하나님의 뜻에, 실제로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바꿔야 합니다. 양적으로 많이 요구하는 것보다는 말씀으로 수립, 점검, 수정, 완성되지 않는 기도야말로 자기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에 자신이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과연 이런 자질구레하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기도해도 되는지 괜히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자신의 믿음이 초라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주 잘못입니다. 지금껏 교회에서 고상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만 하라고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옳은 말이고 또 언젠가는 그런 기도까지 발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차 강조한 대로 우리는 그럴 정도 믿음이 안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일상적 대화를 나누길 가장 바라십니다. 또 범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아무리 작아 보이는 일도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아니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분이 아름답고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당연히 모든 일을 아뢸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사소한 문제를 기도하는 것에 괜히 자신이 없는 까닭은 자신의 정욕이 포함된 기도라는 것을 무의식중에라도 스스로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가능하다면 기도하기 전에, 혹은 후에라도 자신의 뜻과 계획을 지정의를 동원해 냉정하고도 합리적으로 분석해 봐야 합니다. 과연 이것이 내 자신만의 안락과 풍요를 채우려는 기도가 아닌지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인지를 말입니다. 예컨대 차가 멀쩡한데도 최고급차로 바꾸고 싶다면 분명 욕심입니다. 폐차 직전이 되었기에 중고 소형차라도 사야겠다면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기도일 것입니다. 너무 쉬운 예를 들었지만 솔직한 실상은 전자 같은 기도를 신자들이 너무 자주 하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새벽마다 소리 내어 골방에서 기도하라
기도에 맥이 안 잡히는 아주 간단하고도 실제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머리 속 생각으로만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도, 말하자면 생각의 맥을 잡아주는 길잡이가 있는데도, 계속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습니까? 속으로 하는 기도에는 그런 길잡이가 전혀 없는데다 구체적이고 간절하지 않기까지 하다면 1-2분도 지나지 않아 잡념이 들기 마련입니다.
소리를 내서 기도하면 여러 유익이 있습니다. 자연히 잡념이 끼어들 틈이 거의 없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찰나에 불과해도 먼저 생각하고 또 그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중에 기도할 내용이 저절로 맥이 잡힙니다. 또 소리 내어 기도한 내용이 자기 귀를 통해 머리에 재입력되므로 쉽게 기억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라도 신앙적으로 잘못된 기도라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우칠 수 있게 됩니다.
반드시 발성(發聲)으로 기도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큰소리로 울부짖을수록 좋은 기도라는 뜻도 아닙니다. 갈급하고 간절할수록 자연히 울부짖게 됩니다. 이미 말한 대로 “빨리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는 아무리 소리 내어도 한 문장이면 기도가 끝입니다. 그렇다고 신앙적 수식어를 동원해 의미 없는 말로만 길게 늘여서 기도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여도 되지만 요체는 기도할 주제를 본인이 확실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하원칙(六何原則)에 정확히 부합될 것까지는 없지만 최소한 자기 소원이든 계획이든 구체적으로 정리는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부부싸움을 해서 잘못했습니다."라고만 회개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연유로 싸움하여 어떻게 결말났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토설해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결혼도 배우자와 가정에 대한 구체적 꿈을 그리고 그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미스코리아 같은 미모에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에 가문과 학벌도 좋아야 한다는 식으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과 형편에 가장 부합되는 배우자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평소부터 믿음으로 그려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하니까 신자들은 자꾸 능력의 최대치만 기대합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지금 바로 몽땅 벌주어 죽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그분의 더 광대하고 자비로운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못할 일이 없다면 신자 또한 못 아뢸 것이 없어야 합니다. 미주알고주알 모든 사정을 대화하듯이 간구해야 합니다.
마땅히 소원과 계획 뿐 아니라, 자신의 죄와 허물과 상처와 억울함과 눌림도 토설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 시기, 질투, 저주까지도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미움도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심령의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온갖 더럽고 추한 찌끼들을 걸러내어서 하나님의 새로이 깨끗케 해주시는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정말로 완전히 벌거벗고 모든 것을 비워서 그분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나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주님 앞에 토해 내어야 합니다.
때로는 울음으로, 한숨으로만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 춤추며 그분과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소리 높여 울부짖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저 “주님!”이라고 불러 놓고는 더 이상 기도가 나오지 않고 완전히 탈진해서 쓰러져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그분과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하면서 단 한 치의 꾸밈없이 진솔하게 친밀한 둘 만의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깊숙한 기도를 하기 위해선 먼저 그런 여건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시간과 장소를 따로 떼어내어야 합니다. 기도의 골방이 있어야 합니다. 새벽의 자기 방안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먼저 성경 말씀을 보며 묵상한 후에, 즉 그분의 성품과 뜻과 약속과 섭리에 대한 영적 진리를 먼저 깨닫고 그런 확신의 바탕에서 소리 내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일대일로 만나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가능한 소리 내어서(입술로만 중얼거리더라도 구체적이고 명확한 문장으로) 기도하는 습성을 반드시 들여야 합니다.
지금껏 말한 것을 한 마디로 줄이면 "깊이 기도하는 방법"을 찾기 이전에 먼저 "쉬지 말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왕도가 없기에 무엇이든 기도하고 싶은 대로 기도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것도 가능한 소리를 내어서 하되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를 만나도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매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소망과 계획을 그분의 뜻에 비교해보는 습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성경공부나 묵상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 중에 성령의 미세한 음성을 들으려 자신을 비우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어떤 방식으로 알게 되었든 그분의 뜻에 자기 기도를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정말로 구체적이고도 진솔한 기도를 꾸준히 하고 있는 신자라면 그분의 뜻을 아는 자기만의 방식도 스스로 터득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결혼
마지막으로 기도에서 살펴볼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가 기도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기도하고는 그냥 그것으로 그치는 것입니다. 기도 따로, 생활 따로입니다. 기도했으니 하나님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고는 그 후에 전개되어 가는 과정을 전혀 추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기도한 그대로 응답이 되지 않으면 응답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도깨비 방망이 뚝딱 식으로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렸지만 실제 전투는 신자가 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위해 기도했으면 그런 신부를 찾으러 나서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뜻과 능력대로 행하는 교만도 아닙니다. 돕는 배필을 하나님이 직접 눈앞에 데려온 예는 이브의 경우뿐입니다.
성경에 또 다른 이상적 결혼이었던 이삭과 리브가의 경우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아들의 배우자가 될 구체적 조건을 미리 정하고 기도한 후에 종에게 온갖 선물을 지니고선 멀리 신부를 찾으러 보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신부감에 대한 기도를 아주 구체적으로 하였고 기도한 그대로 순적하게 만났습니다. 한마디로 기도한 후에 가만히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도한 그대로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신부 감에 대한 구체적 기도를 했다면 젊은 미혼 여자를 만날 때마다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일부러 그런 여자가 있을 만한 곳만 찾아 나설 것까지는 없어도 교회, 직장, 친지 소개 등의 기회가 닿는 대로 만나서 유심히 관찰하고 또 자기가 기도한 내용과 비교 점검해 봐야 합니다. 특별히 그 관계를 처음 맺게 된 과정에서부터 뭔가 예사롭지 않거나 기도한 내용과 어느 정도 부합된다면 관계를 잘 이어가되 계속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자기 목표를 아주 크게 잡아서 기도만 하면 일등 신부를 만나게 해주신다고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기도한 것과 들어맞지 않는 신부를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계속 기도하면서 모든 관계를 하나님 중심으로 분별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꿈꾸는 배우자와 가정을 위해서 자신부터 그렇게 준비되어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신자가 이런 측면은 거의 무시하고 아예 무지합니다. 자기에게 꼭 맞는 신부만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꼭 맞는 신랑이 되게 해달라고는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내 요구만 가지고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는 양적으로 과하게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정욕으로 쓰려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결혼을 위해선 더더욱 아주 구체적으로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식이 우리 기도한 대로와 다를 때도 많기에 끝까지 인내하며 자신의 뜻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해 놓고는 신부가 마술처럼 '뿅'하고 나타나기만 기다려선 안 됩니다. 기도한대로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행동해야 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기부터 준비를 온전히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등 신부를 구하려면 자기도 일등 신랑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혼자금, 집, 직장의 문제를 떠나서 정말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영적 지도자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온전한 신앙적 자세와 분별력을 평소부터 훈련하여 갖추어야 합니다.
남자가 능력이 있어야 좋은 신부감을 만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베푸실 은혜를 받을 만한 준비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시험과 환난만 감당할 수 있는 한도까지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한도까지만 주시는 법입니다.
때로는 바보 온달 같은 신랑에게 평강 공주를 붙여줄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아무리 기도해도 아주 특별한 예외에 불과합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자기가 기도하는 대로 자기부터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막연하게 결혼 빨리 하게 해주세요라고만 기도하면 표현이 이상하지만 하나님도 막연해집니다.
앞으로 배우자와 결혼을 통해 베푸실 하나님의 놀랍고도 풍성한 은혜와 권세에 대해서 진정과 열정을 갖고 기대해야 합니다. 또 그 소망을 구체적으로 아름답게 키워가며 자신부터 그에 맞추어 준비해 나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도 그런 기도에 딱 들어맞는 신부감을 찾으러 나설 것입니다. 아니 미리부터 예비해 놓으신 그런 신부를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8/11/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