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기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1)

조회 수 2286 추천 수 8 2012.05.04 00: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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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기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1)


[질문]


서원기도와 관련된 문제로 절실하게 상담을 요청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왔고, 10대 후반 시기인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가장 열정적으로 교회활동도 열심히 하며, 신앙의 나무를 잘 키워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고3이 된 1999년 1월 1일, 대학입시를 위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새해 첫날을 하나님께 먼저 기도로 나아가면 좋지 않겠느냐고 어머니가 제안하셔서, 참 의미 있겠기에 금식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집회를 통해 은혜를 받고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제게 잘 맞는 대학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요. 그래서 다음 해, 2000년 1월1일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가장 처음으로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제가 그 때 꼭 다시 오겠습니다." 라고 서원했습니다. 어머니께도 다시 같이 오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생각하며 만만치 않았던 고3 과정을 견디어내고 나름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고, 대학에 합격하는 과정 가운데 놀라운 경험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1년 전 기도를 기억하며 2000년 1월 1일 기도원에 가려는데 어머니께서 가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이유인즉 외가 쪽 어머니 형제들이 지방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 함께 모이기 쉽지 않은데, 새해 첫날에 오랜만에 외삼촌댁에 다 모인다는 겁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기에 외삼촌댁에 갈 거라고 하셨습니다. 나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순간 너무 화가 많이 났습니다. “하나님께 새해 첫날 가장 먼저 이곳에 다시 오겠다고 기도드렸으니 오늘만큼은 꼭 내 말대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격앙된 어조로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오히려 더 크게 화를 내며 난 외삼촌댁에 갈 것이니까 너 혼자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너무나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외삼촌댁에 지금 가게 되면 하나님과 나름의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것이고, 안 가자니 새해 첫날부터 어머니와의 관계 가운에 화평이 깨지는 것 같고, 저 혼자 가자니 당시 생각에는 온전한 약속을 못 지킨 것 같아서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외삼촌댁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고 그 때부터 마음의 평안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늦게라도 그 다음해 2001년 1월 1일 기도원에 가서 대성통곡하며 회개의 기도를 진심으로 드렸고 그 이후로도 이 문제로 마음이 찝찝할 때마다 몇 차례 기도를 더 드리러 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 마음은 회복이 되지 않았고, 그 때 부터 지금까지 약 12년 동안 늘 나름의 죄책감과 후회함, 그리고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다는 느낌, 저를 도우시지 않고 때마다 제 앞길을 자꾸 막으실 것 같은 느낌, 평생 저주 받은 듯한 느낌이 제 삶과 마음,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저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제 삶은 무너져 내렸고, 자신감은 상실됐으며,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마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되지만 사람과의 약속은 부득이한 경우, 때론 못 지킬 수도 있는 융통성이 발휘되어지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인 일종의 서원기도는 꼭 지켜져야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됐기에 마치 암 선고 받은 시한부 환자처럼 항상 무섭고 절망스러웠습니다.

이 문제를 당시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직접 상담 받아 봤지만 단순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괜찮으니까 개의치 말라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답변은 제게 어떤 위로와 평안함도 주지 못했고,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부정적 감정을 떨쳐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지...어떻게 해서 괜찮다는 것인지...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 해주시지 않아 궁금증과 불안감만 더 커져 갔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참고 지내다가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간 중간, 다른 목사님에게라도 온라인으로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 때는 이미 마음의 어둠이 짙어서 답변을 듣는 다해도 회복이 안 될 것 같았고, 우울증이 있었기에 의욕도 거의 상실한 상태라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상담을 받아보라는 마음이 자꾸 생겨서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흘러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상담을 요청해 봅니다.

제가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3가지입니다.

질문1) 제가 고3때 드렸던 그 기도가 성경적으로 서원기도가 맞는 것인지..아니면 서원기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인지요...?

질문2) 그 당시, 제가 약속했던 (2000년 1월1일 '제일 먼저'라는 의미를 부여한)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늦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약속한 것을 지키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요..? 만약, 괜찮지 않다면 그 기도는 영영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끝나버려서 벌의 효력이 평생 남게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질문3) 그 밖에, 지금 제가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적인 구절이나 신학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성심껏 답변해 주시면 제가 두고두고 참고하며 회복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정말 찝찝한 마음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답변]

젊은 분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 된 모습이 오히려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음이 한없이 온유하고 착하시다보니 유달리 예민한 것 같습니다. 당시의 담임목사님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문제인데도 오래 동안 갈등하셨다니 말입니다. 훨씬 더 풍요롭고 활기차게 신앙생활 할 수 있고 또 한창 그래야만 하는 시기인데 고민이 지나쳐 큰 장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질문자님의 서원이 사소한 문제 같고 또 성격이 아주 섬세한 측면은 있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이 마찬가지로 어떤 방식과 내용이었든 한두 번의 서원을 하곤 온전히 이행하지 못해 항상 죄책감과 부담감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 성경적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고질병을 달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내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질문자님의 경우는 서원기도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또 본인이 기어이 서원 기도였다는 마음의 부담감을 지울 수 없다고 해도 완전히 실현했기에 더 이상 죄책감을 가질 필요나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말하자면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께 서원을 너무 쉽게 하고는, 사실은 서원이라고 할 것까지 없는데도, 나중에 후회 갈등 염려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서원을 온전히 이행한 까닭?

문제를 간단하게 접근해봅시다. 서원한 내용은 하나님이 그해 대학입시에 합격시켜 주면 다음 해의, 정월초하루에, 같은 장소에서, 감사기도 하겠다는(네 가지 내용임) 것이었습니다. 비록 일 년이 지났지만 분명 새해 첫날에 같은 장소에서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그럼 서원한 내용 중에 일단 75%는 달성했습니다. 서원 내용 넷 중에 셋을 수행했으니 말입니다.    

그럼 못 지킨 것은 오직 하나 바로 그 다음 해가 아니라 일 년이 지나 그랬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약속한 날짜인 합격 직후의 새해 첫날에 비록 기도원에 올라가지는 못했어도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만 봐도 감사 기도는 분명 드렸을 것입니다. 그럼 지키지 못한 25% 중의 절반인 12.5%는 달성한 셈입니다. 그러나 일 년 후에 몇 번이나 통곡 회개하며 감사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그 나머지 절반마저도 다 수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내용은 물론 영적 문제를 수치로 비중을 매겨 해석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조금이라도 안 지켰으면 전부를 안 지킨 것이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올바른 신앙자세입니다. 그러나 질문자님이 너무 예민한 것 같아서 조금 냉정하고 논리적이 될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한 번 따져본 것입니다.

본 주제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기독교 신앙은 실은 아주 정확하고도 분석적인 지성이 많이 요구됩니다. 그런데도 그런 측면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그럴 양이면 아주 나쁜 신앙이라고 매도하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처음 믿게 되는 근거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도 일방적 은혜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나 일단 믿고 난 후에는 자기 믿는바 내용을 스스로 정확히 깨달아야만 할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차분히 납득이 되게끔, 그가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지만,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신앙을 수치로 따질 수 없기에 약속한 날짜를 어겼다는 사항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해도 문제가 전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서원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 해결하는 규정도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신지라 당신의 자녀들이 제 때에 제대로 서원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혹 누구든지 무심중에 입으로 맹세를 발하여 악을 하리라 하든지 선을 하리라 하면 그 사람의 무심중에 맹세를 발하여 말한 것이 어떠한 일이든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그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범과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레5:4-6)

구약시대에는 인간끼리 한 맹세라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기에 모든 맹세가 다 하나님께 행한 것입니다. 본문은 맹세한 내용마저 잊고 있다가 나중에 깨달은 것을 뜻하지만 결국 그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따로 속죄제를 드리면 그 범과한 과실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께서 몇 번이나 통곡하며 회개한 것이 바로 그런 속죄제를 그것도 여러 번이나 드린 것에 해당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수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5:14-16)

심지어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예물을 원래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인간적 필요로 오용(誤用)했을 경우도 따로 속건제를 드리면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날로 비유하자면 헌금을 얼마 드리기로 약정 내지 서원했다가 그 일부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할지라도 뉘우치고 그와 같은 혹은 사죄의 뜻으로 더 많은 헌금을 진심으로 바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선 세리 삭개오가 혹시 범죄 한 것이 있다 해도 네 배를 갚으면서 그 죄를 회개함으로써 예수님께 용서 받았지 않습니까?(눅19:8) 헌금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도 만약 베드로가 추궁할 때에 이실직고하면서 회개하고 속인 액수를 다시 다 바쳤다면 결코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사함을 받았을 것입니다.(행5:8)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서원의 진실성과 성실히 수행하려는 노력이지, 서원의 즉시 이행 여부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완벽하게 이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 완벽하지 않기에 때로는 전부 혹은 일부를 지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런 잘못을 나중에라도 제대로 뉘우친다면 하나님은 결코 탓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비는데 용서하지 않을 부모는 한 명도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부모의 자격이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신자가 진심으로 회개하는데도 용서하지 않는다면 신자더러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다른 말로 당신과 같은 신적 존재가 되라는 뜻이 됩니다. 타락한 후의 모든 인간은, 심지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죄의 본성이 살아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은 맹세는 물론 하나님께 한 서원은 반드시 지키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그 계명의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신23:21) 더디하지 말라, 더디면 죄가 된다고 합니다. 분명히 반드시 지키라고 강조한 것은 맞지만 조금은 지체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말하자면 “즉시 갚아라. 즉시 갚지 않으면 죄라”고 말한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질문자께선 대학에 입학한 해의 첫날에 분명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시간적으로는 조금도 지체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장소만 달랐습니다. 또 그 일로는 그 후 계속 회개 기도했고, 그 다음 해 첫날을 비롯해 몇 번이나 그 장소에 가서 속건제를 충분히 드렸습니다. 성경적으로도 서원을 온전히 이행한 것이기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율법 해석

구약의 율법들은 예수님이 온전히 재해석 하고 또 실제로 당신께서 실천해 본을 보이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율법을 수여한 의미와 목적은 그대로, 아니 오히려 더 엄격하게 보존하되 그 실천하는 방법에선 상당한 융통성을 허용했습니다. 모든 구약 계명은 문자적으로 실행하기 보다는 예수님이 해석 적용한 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6:23,24)

주님이 이 말씀을 할 당시는 성전제사를 염두에 둔 것이며, 또 제단에 드리는 예물이라면 하나님이 율법으로 명령하셨거나 서원한 것 둘 중 하나입니다. 명령은 하나님이 내린 것이기에 신자가 스스로 다짐하는 서원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서원은 물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잠시 보류하더라도 형제와 화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예물을 제단에 드린다는 것은 예배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예배 보는 중에라도 형제의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예배를 중지하고 찾아가서 화해하라고 합니다. 질문자님의 경우 외가 쪽 친척이 아마도 일 년에 겨우 설날에 한 번 모임을 가지는데 불참한다면 상당한 원망을 들을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아니고 감사 기도하는 문제로 그랬다면 예수님 보시기엔 오히려 야단을 맞을 일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속으로 그날 이미 감사 기도를 드렸지 않습니까? 거기다 기도란 특정 장소, 특정 시점에, 특정 방식으로만 해야 한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겠다고 서원했다면 가능한 지키는 것이 좋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면 일단 기도를 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하게 행할 일 즉, 형제와 화목하는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또 그 친척 중에 혹시 불신자라도 있었다면 자신의 서원보다 일 년에 겨우 한 번 만나는 그분께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과연 하나님은 어느 쪽을 더 잘하는 일로 보시겠습니까?

기도란 신자의 영이 하나님의 영과 교통하는 것, 다른 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이뤄지는 초자연적인 일입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이 특정한 시공간을 제한해서 기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인 것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언제 어디서나 아무리 작은 일에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실은 구약에서부터 예수님과 같은 맥락에서 율법을 해석, 적용했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일부 좋은 것을 남겨두자 사무엘이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고 야단쳤습니다. 종교적 형식과 규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 일이 있기 전에도 비슷한 잘못을 범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드니”(삼상13:8,9)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와 화목제를 왕이 주도했습니다. 사울은 사람이 흩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율법의 규정까지 어겼지만 정해진 시간만은 꼭 지켜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일부 형식에 억매여 큰 의미를 놓친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명의 의미와 목적을 따지지 않고 그 형식만 중시하자 급기야 하나님이 어떤 한탄을 하셨습니까?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다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10) 심령의 중심을 바쳐야지 외적 형식만 채워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질문자님은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서원했고, 또 그대로 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했으며, 나아가 진심으로 그 서원을 이행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서원한 내용 중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특정한 시간만 못 지킨 것을 가지고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번민 갈등 절망한다면, 그것도 이미 여러 차례 회개의 제사를 드려놓고도 그렇다면 형식에 묶였던 유대인들의 잘못과 동일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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