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4:9) 하나님도 두려워하는 일이 있다.

조회 수 1040 추천 수 42 2010.02.10 19: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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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두려워하는 일이 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4:9)


우주 만물을 만드시고 인생만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도 두려운 일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그것도 두 번, 세 번 강조할 만큼 크게 두려워하는 일이 말입니다. 바로 본문에서 그렇다고 실토(?)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긴 해도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인지라 바로 그분의 고백입니다.

물론 그분께서 두려워할 일이 있을 리는 만무합니다. 우주 만물을 당신께서 만드시고 통치하고 있는데, 다른 말로 말씀 한 마디로 그 모두를 만들었기에 말씀 한 마디로 전부 없애버릴 수도 있기에, 그분을 두렵게 만들 대상이라곤 전 우주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딱 하나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당신 되심을 잊어버릴까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 애타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심정을 역으로 표현한 말씀이 다음 장에 나옵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5:29) 항상 기억하라는 것이 바로 당신의 당신다움을 잊을까 염려된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당신이 주는 복을 영원히 받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당신이 진짜로 염려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큰일을 잊어버려서 복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당신을 항상 기억하면 자손들까지 영원히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까지 주시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만사를 주관하시되 오직 당신 백성의 궁극적 유익을 위해서만 행하십니다. 신자가 그분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를 그분의 은혜와 권능 안에 온전히 잠기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분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아 누릴 수 있는 것이 믿음이 하는 역할입니다. 또 그러려면 무엇보다 그분의 크심과 지금까지 자기를 어떻게 사랑해주셨는지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아 본 자만이 사랑의 귀함을 알기에 더 많은 사랑 받기를 소원하고 갈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의지하여 근신하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온 신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대한 염려는 완전히 제거 되었습니다. 사단의 흑암의 권세는 완전히 정복되었습니다. 사망도 부활로 극복되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그분의 사랑을 주위에 드러내는 삶만, 그것도 당신의 능력에 힘입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러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그분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이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마음 대신에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면, 역으로 따지면 두려워하는 마음은 사단이 심어준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신자로 하나님의 크심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단은 신자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무시로, 사방에서 훼방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문제로 두려워한 것이 아니고, 신자가 사단의 방해로 두려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힐까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분이 사단을 두려워할 리는 없으며 사단이 자꾸 신자를 데리고 농락할까 염려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의 크심을 제발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 뜻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믿음이 떨어지거나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분을 향한 근본적인 믿음이 없어지거나 약해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과거에나 현재나 미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문제는 그들이 잠시 그분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관심의 초점이 순간적으로 그분 대신에 다른 곳에 가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시선을 현혹시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부 여건 밖에 없습니다. 사단이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겁을 주지는 않습니다.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이 약해졌는지 의심하게 되고, 형통이 오면 너무 나태해져 그분을 잊어버립니다. 차라리 고난 때는 그분의 능력은 의심해도 그분을 잊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최대 염려가 신자가 당신의 크심을 잊는 것이라면, 고난은 오히려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베푸신 그분의 고육지책입니다. 당신께서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당신께서 제거하신 차선책입니다.  

하나님이 오로지 신자가 당신을 잊을까만 염려한다는 것은 또 단적으로 말해 신자가 그분의 일을 하지 않고 있어도 당신께선 그리 문제 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자가 그분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열과 성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선 신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당신께서 주관하신다는 기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또 신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사실은 그 일에만 신경을 쓰느라 막상 당신의 크심을 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후자의 의미가 더, 아니 어쩌면 평생의 믿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함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일을 함에 그분의 크심을 잊고 인간적 수단에 의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컨대 찬양하면서 찬양에만, 예배드리면서 예배에만, 심지어 기도하면서도 기도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막상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에 대해선 찬양도, 예배도, 기도도 드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

찬양이나. 예배나, 기도나, 모든 포커스는 그분의 크심에 맞춰져야 합니다. 그 말은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나면 그분의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졌기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찬양, 예배, 기도드리는 잠시 그때뿐입니다. 아니 그 와중에도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기도할 때마저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그분의 크심을 쉽게 잊는지 모릅니다. 정말로 그분이 두려워한다고 누차 강조할 만하지 않습니까? 기도하고도 염려가 끊이지 않는다면 기도는 무용지물이거나 종교적 겉치레가 되어버립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평생토록 절대 잊지 않는데, 잊을 수도 없는데 반해 그분의 크심은 언제 어디서나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두려움으로 떨어지는 것이 신앙에 가장 큰 장애라는 것입니다.    

신자가 환경을 바라볼 때에 일시적으로 두려워지는 자연적 반응마저 잘못되었다고 탓하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오래 지속되게 두는 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크심을 잊는 것은 분명 사단의 궤계에 넘어가는 셈입니다.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품는 것은 죄로 이끌며 마귀가 틈탄 것이 되듯이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십자가에 승리하신 예수님을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사단이 신자를 더 농락할 수단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이 인생의 최후의 대적인 죽음에서마저 승리하신 것은 사단으로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무참히 패배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지 않습니까? 사단에게는 더 이상 승리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영원한 불 못에 빠지기만 기다리는 너무나 처량한 신세로 이천 년 전에 이미 전락했습니다. 그 때까지 사단은 정말로 숨을 죽이고 어두운 곳만 찾아다니며 혈과 육으로 신자의 눈을 가려서 속이는 짓밖에 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신자에게 두려운 마음이 잠시 들더라도 계속 두려워할 근거나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모든 지속되는 두려움은 실체가 아니라 사단이 심어준 거짓 두려움 즉, 전혀 속아 넘어갈 필요가 없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참 실체는 오직 하나님과 그 외아들 예수님뿐입니다. 또 신자로 사단의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진정한 실체와 교제할 수 있게 하시는 이도 참 실체의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뿐입니다. 두려움이 지속되거나, 되려는 순간 예수님의 거룩하고 능력 있는 이름만 의지하여서 당당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바꿔 말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이겨낼 자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잊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의 출발이자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장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끼리 서로 싸우고 다툴 때에 골목대장 곁에 붙은 자는 항상 안전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분이 바로 내 편인데 두려워할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1,32,37)

여러분은 지금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죄에 대한 심판이 두렵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책을 대신 다 지셨습니다. 특별히 겟세마네 동산의 피맺힌 기도를 통해 그에 따르는 두려움마저도 다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등한히 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분의 일은 그분께서 직접 완전하게 행하십니다.

혹시 기도나 말씀에 게을러졌습니까? 게을러졌기에 두렵다는 그 마음부터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그분의 크심만 바라보며 다시 기도하고 말씀 보기 시작하면 됩니다. 두려움을 핑계로 더 게을러지는 것은 사단에게 진짜 넘어간 증거이거나 가장 확실한 빌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정작 관심을 쏟아야 할 측면은 따로 있습니다. 그 모든 두려운 경우나 일에 하나님의 크심을 잊고 있다는 사실부터 가장 먼저 또 크게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바로 그것만 그분께서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신자가 그것 외에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다른 모든 것은 당신께서 얼마든지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하나님 그분을 두렵게 하는 한 가지 일을 제거했는데 그분이 다른 모든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2/1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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